시넥틱스적 글쓰기
수필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일구성과 복합구성이 그것이다. 하나의 제재에 관한 이야기를 선조적으로 전개시켜 나아가는 짜임을 단일구성이라고 하고, 여러 개의 제재를 엮어서 병렬적으로 전개시켜 나아가는 짜임을 복합구성이라 한다. 단일 구성은 대상의 특징을 집약시켜 강력한 인상을 주고 주제의 선명성은 높일 수 있으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으며, 복합 구성은 둘 이상의 제재를 하나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와 신선한 통찰력을 드러낼 수 있으나 자칫하면 통일성을 상실하기 쉽다.
복합 구성이라는 정태적인 개념을 글쓰기 방법이라는 역동적인 개념으로 진전시킨 것이 신재기의 ‘하이브리드 글쓰기’(수필의 형식과 미학, 서정시학, 2012)이다. 혼합이라는 뜻을 지닌 하이브리드는 “이질적인 두 개의 실체나 개념을 결합하여 상승효과를 얻거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글쓰기는 “이질적인 화소를 같은 텍스트 공간에 무순서로 배치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글쓰기는 시넥틱스synectics라고 하는 사유 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넥틱스의 어원은 서로 다르고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를 합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여기에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창조에 이르고 숨겨진 진실을 통찰해내는 발상법이 생겨났다. 서로 다른 것을 함께 연계시켜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통찰에 이르고자 하는 것을 시넥틱스라 한다. 고든W.J.Gordon은 이 발상법으로 창의력 개발 교수법을 정립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유 방식과 원리를 수필 창작에 활용하는 것을 ‘하이브리드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이 글쓰기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유추에 의해 연결시켜 하나의 통일된 텍스트로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기발한 상상력과 사고력을 요구한다.
‘시넥틱스적 글쓰기’도 이질적인 제재들을 유추에 의해 동질적인 것으로 결부시킨다는 데서 하이브리드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질적인 제재들을 하나로 결부시키는 방법과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까지 한걸음 더 나아가는 방법이 시넥틱스적 글쓰기이다. 즉, 시넥틱스적 글쓰기는 이질적인 제재들을 은유나 환유의 원리에 의해 하나의 텍스트로 조직하는 창작 윈리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은유와 환유는 단순히 수사학의 하나가 아니라 언어 작용의 원리를 이르는 개념이다.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언어의 두 양상과 실어증의 두 유형」(문학 속의 언어학, 문학과 지성사, 1989)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작용의 원리인 ‘연합적 관계와 통합적 관계’를 ‘선택과 결합’이라는 언술 성립의 원리로 진전시켰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두 축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선택기능은 유사성의 원리인 은유, 결합기능은 인접성의 원리인 환유에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언술 성립 원리를 수필 창작 원리로 활용한 것이 시넥틱스적 글쓰기이다. 이질적인 제재들을 은유나 환유의 원리에 의해 조직하여 하나의 텍스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통찰과 인식에 이르는 창조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
권동진의 <서리 맞은 무>(복코의 반란, 수필미학사, 2015)는 시넥틱스 발상에 의한 수필 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 가지 제재, ‘직장 동료 K양 이야기’, ‘점심 반찬으로 나온 무 이야기’, ‘화자의 부부 이야기’를 하나로 연계시켜 놓았다. 작가는 이 세 가지 제재에서 ‘성숙’이라는 주제를 기발하게 뽑아낸다. 서리를 맞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그윽한 맛이 스미는 무, 실연이라는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K양, 신혼시절에는 대립각을 세우며 숱한 갈등을 빚다가 이제는 무던하게 살아가는 화자 부부의 삶은 시련의 시간을 겪은 다음에 얻는 성숙함이다. ‘시련의 시간을 반드시 겪어야만 비로소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주제는 시넥틱스를 통해 그 설득력과 진정성을 더욱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시넥틱스에 의한 글쓰기의 묘미와 장점이 이런 데서 발휘된다.
<서리 맞은 무>는 은유와 환유에 의한 무의식적 창작 원리의 작동이 일궈낸 작품의 하나다. 이 작품에서 ‘K양-무-화자’, ‘실연-서리-갈등’, ‘결혼-그윽한 맛-무단한 삶’은 연합적 관계에 의한 선택이며 유사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은유에 의한 연결이다. K양은 실연의 아픔을 겪고서 성숙하고, 무는 서리를 맞고서 그윽한 맛을 내는 성숙에 이르고, 화자는 신혼시절의 부부 갈등을 거치고서야 원만한 부부로 성숙한다는 것은 통합적 관계에 의한 결합이며 인접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환유에 의한 연결이다. 이러한 두 축의 사고 구조가 씨줄과 날줄로 작동하여 한 편의 수필을 완성시키고 주제 표현의 효과를 높인다.
김숙현의 <호사와 궁상>(1차 글쓰기, 2015)도 시넥틱스적 글쓰기라는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개의 이질적인 제재를 하나로 결부시켰다. 가족여행을 위한 호텔과 친정어머니의 병실이 하나의 텍스트에 선택되어 있다. 병실과 호텔은 유사성의 원리인 은유 또는 연합 관계에 의해 하나의 텍스트 속에 선택되었다. 병실은 아픈 친정어머니가 머물 공간이고, 호텔은 여행을 간 가족들이 머물 공간으로, 성격은 대립적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그 기능은 유사성을 지닌다. 며칠간 임시로 머물 공간인 것이다. 한편, 계약 단계에서의 호방함은 놀라울 만큼이나 비싼 비용으로 궁색해지고, 화려한 시설을 기대했다가 호텔 바닥에 자야 하거나 간병을 위한 소파 겸용 침대에서 자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호사스러움에서 궁상스러움으로의 반복적 전락이 인접성의 원리인 환유 또는 통합관계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 사항> 구조주의 언어학(소쉬르)의 연합 관계와 통합 관계
첫댓글 교수님, 귀한 글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지요? ^^*
수필을 쓴다고 책도 사고 끄적여도 보았읍니다만 공부하는 자세는 아니었나 봅니다.
오늘 새삼보고 느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