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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고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 |
미국 내 노력도 영국 못지않다. 우선 가정에서부터 비판적 사고를 기르려 한다. 코헨은 “미국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어떻게든 질문을 많이 하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모든 교육기관도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실제로 1995년 캘리포니아 내 68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이 중 89%가 “교육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 기르기”라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여서 비판적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별도의 시험도 마련돼 있다. ETS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교육평가기관인 ACT가 실시하는 ‘대학학력평가시험(CAAP)’은 전체 6개 분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비판적 사고가 별도 과목으로 포함돼 있다. 또 창의력·탐구력 및 비판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문기관 등이 미 전역에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디애나주 와바시 컬리지에 설치된 ‘인문학 탐구센터(CILA)’다. 미시건대·노틀담대 등 49개 대학이 참여한 이 기관에서는 효과적인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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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걱정한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이를 수용하고 격려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돕는 게 좋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한국의 초·중·고교 수업시간은 조용하다. 교사는 진도 나가기 바쁘고, 학생은 입을 다문 채 받아 적기만 한다. 50분짜리 수업시간을 쪼개 학생에게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토론수업을 하는 교사도 있다. 하지만 전국 1만1000개 초·중·고의 40만 교원이 그런 노력을 하기란 어렵다. 한 반에 40명이 넘는 과밀학급, 짧은 수업시간(45~50분), 꽉 짜인 수업진도가 토론수업을 막는다. 매년 80명 이상을 미국 대학에 보내는 대원외고도 토론수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대학생이 돼도 토론에 약하다. 토론수업을 실험 중인 학교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짚어 봤다.
서울 수유초등 6학년 8반 학생들이 14일 박완서의 책 『자전거 도둑』을 주제로 모의재판을 하고 있다. 이 반 학생들은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토론수업을 한다. [조문규 기자] | |
김영정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글로벌 미래 인재는 남과는 다른 창의력이 중요한 경쟁력의 포인트”라며 “비판 의식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안은 대입 앞에선 힘을 못 쓴다. 2년 전 대학들이 논술 시험 비중을 높이자 초등학교까지 논술 바람이 불었다. 시험에 상관없이 표현력과 창의력, 비판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입 논술이 시들해지자 학교 논술수업도 관심이 적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서울 중·고교생 토론대회’를 열었다. 토론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서울 송곡고 나영주 교사는 “토론수업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을 키워 주는 출발점”이라며 “초등학교부터 표현력을 키워 줘야 대학생이 되면 영어로도 비판적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김동원 교육과정기획과장은 “수능 과목을 줄이고 학교장이 교과과정을 자율로 운영할 수 있게 되면 토론 중심 수업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진·임현욱 기자
“잠깐. 지금 내용은 좋지만 아래를 쳐다보고 말하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어.”(김경주 교수)
일본 도쿄 인근의 도카이(東海)대 국제학과 신입생들이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은 토론식 수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 |
김 교수의 지적에 학생은 즉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4대 종교의 발상지는 모두 아시아다. 그만큼 아시아는 비슷한 것 같지만 국가별 특징이 있고 문화적 차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로 상대방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면서 대화를 확대해야 협력의 분야도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학생은 의견 발표를 할수록 자신의 주장을 더욱 분명히 제시하면서 “그동안 아시아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많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했다.
13일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도카이(東海)대 1호관 A동 402호 강의실. 약 40명의 학생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 토론은 이 학교 교양학부 국제학과의 김경주, 다카하시 유조(高橋祐三), 다카하시 히로아키(高橋宏明) 등 세 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국제 관계의 기초를 토론 방식으로 배우는 이 세미나 과목은 평소엔 한반도·중국·동남아 등 지역별로 구분해 별도 강의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 날은 세 교수가 ‘합동 세미나’를 열어 학생들에게 더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학생 수가 셋째로 많은 이 학교는 물론 다른 대학에서도 학부 1년생 과목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였다.
이날 세 명의 교수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능력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선 비공개적으로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인 ‘네마와시(根回し)문화’가 뿌리 깊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다카하시 유조 교수는 “건설적인 비판 능력 없이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학부 1년차에 비판적인 토론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대학생이 스스로의 지식과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는 생각을 명확히 밝혀야 하고, 논리와 논거를 갖고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설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배우는 아니지만 부끄러워 말고, 표정·몸짓도 확실하게 해야 설득력도 높아진다”고 가르쳤다.
이들 교수는 “이런 교육을 위해선 교수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카하시 히로아키 교수는 “일본에선 우선 말해도 될지 주변의 눈치를 본 뒤 남들이 말하면 입을 열기 시작한다”며 “중·고에선 수험 공부 때문에 어려웠지만 대학 교육은 비판적 사고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에게도 토론식 수업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세미나 방식 교육은 평가 절차가 복잡하고 상당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이날 원활한 토론을 위해 학생들을 총 6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책상도 토론에 필요한 구조로 만들었다. 그런 뒤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학생들이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포스트잇을 붙이도록 했다.
학생들은 “고교에서는 이런 토론식 수업을 해보지 못했다”며 “대학에서는 한 가지만 볼 게 아니라 폭넓은 지식을 갖고 판단력을 길러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는 일본 등 동아시아 학생들도 많이 유학을 가거나 외국인 기업에 들어가므로 비판적 주장이 필요해졌다”며 “발표와 토론을 거쳐 스피치 콘테스트까지 시킬 계획이지만 교수도 인내심을 갖고 학생들이 미숙하지만 결론을 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프랑스 신문의 교육 기사에는 지난해부터 부쩍 ‘핀란드식’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면적인 교육 개혁에 착수했고, 그자비에 다르코스 교육장관은 그 모델을 핀란드로 잡았기 때문이다. 다르코스 장관은 2007년 핀란드에서 교육 현장을 둘러본 뒤 “적은 교사와 적은 수업시간으로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교육을 한다”며 감탄했다. 핀란드 초·중교의 연간 평균 수업시간은 5713시간으로 프랑스(7750시간)보다 훨씬 적다.
프랑스 정부와 교육계가 주목하는 핀란드식 교육의 핵심은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다. 『핀란드 교육, 성공의 놀라운 비밀』을 지은 폴 로베르 교장은 “성공의 첫 열쇠는 학생 개개인을 교육의 중요한 주체로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사가 주체가 돼서 학생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가도록 교사가 도와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로베르에 따르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수준에 맞는 수업을 정하고, 이를 자신이 세운 계획표에 따라 진행한다. 각자 공부하고 와서 학교 수업시간에 서로 토론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언론도 ‘교사 없는 교실’에 주목하고 있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들처럼 개인 의견을 제시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 모범답안을 갖고 하는 수업과 달리 학생 각자의 새로운 생각과 논리를 중시하는 것이다. ‘생각을 키우는 교육’의 본질이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꼭 나오지 않아도 된다. 개인 공부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교사와 상의한 뒤 집에서 공부하면 된다. 수업은 고교 3년간 75단위를 들어야 하는데, 이 중 수학 등 45단위는 필수고 나머지는 학생이 선택한다. 역사를 좋아하면 관련 과목을 더 신청하면 된다. 학업을 끝냈는지 여부도 학생 본인이 다른 학생과의 토론 등을 통해 스스로 평가한다. 다만 핀란드 정부는 지나친 자율이 자칫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해 학교마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 방향과 학업 성취도 등을 조언하는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 놓았다. ‘자가 진단’ 방식으로 졸업하는 학생은 95%에 이른다. 2년 만에 졸업하기도 하지만, 1년 더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 외국에서 1년간 외국어 등을 공부하는 경우다.
외국의 교육 시스템을 체험한 학생들은 대부분 “핀란드식이 더 낫다”고 말한다. 프랑스 비시에서 1년간 유학한 핀란드 학생 니카 사볼리아넨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수업은 너무 규율이 많고 교사와의 관계가 멀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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