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월영대의 모습으로 1920년대로 추정되는 사진입니다. 월영대는 아래에 나오는 사진과 같이 신라 말기 해운 최치원이 대(臺)를 쌓고 해변을 소요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입니다. 대에 최치원이 직접 적어 놓은 화강암 비석으로 높이 2.1미터, 폭 35센티미터인데 아래 사진을 보면 월영대가 아주 크게 보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현재와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선 중기 문신 퇴계 이황이 신라 말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향학을 설치해 제자들을 가르쳤던 월영대를 찾아 남긴 한시를 남겼습니다.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있는 푸른 바닷가에(老樹奇巖碧海堧 노수기암벽해연)
고운(孤雲)의 노닌 자취 모두 연기가 되었구나(孤雲遊跡總成烟 고운유적총성연)
지금은 오직 높은 대(臺) 뜬 달만이 남아(只今唯有高臺月 지금유유고대월)
머물며 얻었던 그 정신(精神) 내게 전해 주누나(留得精神向我傳 유득정신향아전)
월영대에서 달빛을 보는 것을 보여주는데 현재는 사방이 꽉 막혀 달빛조차 보기 힘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치원의 자는 고운(孤雲)과 해운(海雲)이었으며 고려 현종 때 문묘에 배향되어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습니다. 현재 마산에는 최지원과 관계되는 것이 많은데 산복도로라고 불리는 도로가 고운로(孤雲路)이며 월영동,해운동은 최치원의 영향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월영대는 시민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담장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100여년전의 월영대가 더 정감이 가는 것은 담장이 아닌 개방성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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