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筏橋)에 가다(제4악장)
최 화 웅
이번 탐방에서 소설 태백산맥 ‘제2부 민중의 불꽃’의 첫 배경인 율어면(栗於面) 해방구를 놓친 게 못내 아쉽다. 그것은 나주에서 기다리는 스테파노와 율리안나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유서 깊은 남도여관에서 긴 벌교의 밤을 지내고 염상진, 하대치, 안창민이 꿈꾸었던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주릿재를 기어이 오르리라. 해방구 율어와 태백산맥 문학비는 다시 찾을 벌교를 위해 마중물로 남겼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 14연대의 국방군들이 제주출동을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끝에 벌교를 장악한다. 당시 여순사건의 원인을 단순한 좌익반군의 폭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미군정의 주도로 강행된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과 4.3제주항쟁에 촛점을 맞추는 시각이 있다. 그런 다양한 견해는 하나의 역사공간에서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밝혀야할 과제다.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도 남로당 계열의 지역좌익세력인 염상진, 하대치, 안창민은 반군과 합세하여 벌교에 인민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반군의 벌교장악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만다. 그들은 군경에 의해 사흘 만에 진압되고 조계산으로 퇴각한다. 대신 그들은 율어면을 차지하고 독자적인 농지개혁을 실시하여 해방구를 만들고 한동안 빨치산의 거점으로 삼는다.
나주로 떠나는 길에 2005년 7월에 새로 지은 벌교성당을 순례했다. 1957년 광주대교구 현 헤롤드 주교님 때 설립된 벌교성당은 보성 벌교와 율어, 순천 낙안과 고흥 일부지역을 사목구역으로 200여 명의 수계신자들이 지자체 행정구역을 뛰어넘는 지역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성당문이 열려 있었다. 주보성인으로 성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당에서 공수해 온 모자상이 우리를 반겼다. 높은 천정과 두꺼운 벽면에는 유럽풍의 스테인드 글레스를 통해 천상의 빛이 온 몸에 쏟아져 내렸다. 나는 제대까지 이끌려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했다. 근심 걱정 하지 않는 가난한 마음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벌교성당에서 하느님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전주에서 수업을 끝낸 율리안나가 나주로 내려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나주에서 일하는 스테파노는 며칠 전부터 영산포구의 홍어거리에 일찌감치 저녁을 예약했다고 알리며 우리를 기다렸다. 율스부부와의 만남은 지난해 늦가을 동학군 유적지 답사 때 눈 내리던 지난겨울 한옥마을에서 만난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마음이 맑고 고운 율스부부는 우리 삼형제의 막내다. 주말부부의 아파트에서 모카포트로 향기 가득한 에스프레스를 뽑아 마시며 한껏 정을 나누었다. 영산강바람이 흑산도 홍어의 짙은 향을 온 포구에 흩날리는 5월의 밤에 영산포를 밝힌 등대불빛이 우리를 감쌌다.
나주는 고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도록 전국의 몇 안 되는 큰 지방행정단위 목(牧)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예부터 전라도에는 전주와 나주에만 목이 있었다. 그 만큼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이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도시였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전라도라는 지명도 전주의 ‘전’자와 나주의 ‘나’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아우르는 지역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곳 어른들은 나주를 역사 깊은 천년고도(千年古都), 나주목(羅州牧)이라고 일러준다. 남다른 ‘천년 목사골’, 나주의 역사와 향기는 그윽했다.
창문을 열고 금성산 능선을 타고 내리는 싱그러운 아침공기가 폐부 깊숙이 찔렀다. 살림꾼 스테파노표 샌드위치와 에스프레스로 아침을 챙긴 우리는 나주성당 순례에 나섰다. 나주성당은 순교자기념성당으로 거룩한 믿음과 굳은 신앙의 전통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3,500여 평의 널찍한 부지를 끼고 다소곳한 언덕 위에 세워진 나주성당은 마루 바닥이 주는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기해박해 때 순교한 이춘화 베드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강영원 바오로, 유치성 안드레아, 유문보 바오로의 묘원에 참배의 발길이 이어지고, 초대 사제 헤롤드 헨리(1909~1976) 대주교님의 기념관과 까리따스 수녀원 본원이 수줍은 듯 옛 모습을 지켰다.
돌아오는 길에는 영산강 고대문화유적지 반남 복암리일대의 옹기고분군과 지난해 11월 문을 연 국립나주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삼국시대 나주 반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산강 유역의 고분군을 통한 고대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복암리 고분전시관과 마한문화 유적을 발굴 전시하고 있는 국립나주박물관은 나주의 역사저력을 보여주었다. 살아 있는 1,200여 점의 우리의 고대유물과 고분의 발굴로부터 유물의 보존처리과정을 체험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복암리 고분군과 나주국립박물관의 관람은 끝났다. 그늘에서 시원한 들바람을 쏘이며 스테파노가 정성스레 싸준 수박과 간식을 풀어 놓으며 잠자는 네비양를 슬슬 깨웠다. 부산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현재 시각이 오후 2시 30분, 네비가 일러주는 주행거리는 280Km, 소요시간은 3시간으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이다. 옹관에 잠자는 백제인은 대영박물관에서 본 고대 이짚트인의 미라와는 달랐다. 그는 우리의 과거이자 우리의 미래였다.
끝으로 이 자리에서 밝혀둘 게 하나 있다. 엘사라는 이름에 관해서다. 엘사는 나의 배우자 엘리사벳의 새로운 애칭이다. 30여 년 전 세례를 받으면서 얻은 세례명이 너무 길다 싶어 제 나름 엘리라고 줄여 불러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엘리가 너무 흔하고 많았다. 그러든 중 피정 때 내려온 사비노실비아부부가 함께 지내는 동안 지어준 애칭이다. 4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배우자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흡족하다. 더구나 시드니에 있는 손녀딸 리아가 겨울왕국을 본 뒤 푹 빠진 퀸 엘사라서 더욱 좋았다. 이 글을 통해 사비노실비아부부께 감사를 전하며 이 기쁜 소식을 리아에게 카톡으로 날렸다. 이달에 지공을 맞는 엘사에게 새 애칭은 더 없는 선물이 되었다.
첫댓글 오늘 병원 다녀오셨다면서 또 늦은 시간에 글을 올리셨네요.
무리하시면 안되실텐데 걱정이네요..
주무셔야 할 시간에 쉬시지 않는다고 엘사형님 걱정이시던데..
이제 벌교여행기를 마무리하셨으니 몸 돌보기에 전심해주세요.
그래야 벌교여행 마중물로 남기고 오신 것들을 만나러 가실수 있지요~
저희도 함께요.^^♥
몸이 불편하심에도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려주시는 그리움님, 감사합니다..^^*
국장님 덕분에 벌교의 또다른 면을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 하시길 기도 중에 기억합니다.
불편하신 몸이시면서 열정으로 글 올리
심 존경합니다.그러나 넘 무리하시면
아니됩니다."태백산맥"을통해 벌교여행 마무리하셨기에 이제부턴 건강챙기기
하시길 기도드립니다."God with you!"
선생님 글에 저희 부부가 등장하다니 영광입니다.
이제 좀 휴식이 필요한 듯 합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셔서인지 어딜 가든
항상 수첩에 메모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 아무나 되겠습니까?
평화로운 나날 되시길 기도드려요. ^^*
더운 여름에 영육간 시원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움님의 긴 글을 읽으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걱정을 합니다
이리 긴 글을 쓰자면 참 힘이드실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리움님, 여행도, 글쓰기도 무리하지 마소서!
가보고 싶엇던 벌교여행을 덕분에 제대로 한 것 같습니다.
배꽃이 아름답게 핀 나주들판도 그려보면서 저도 언젠가는....
투석 잘~~받으시고 빨리 회복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