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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외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
들뢰즈와 가타리, 최명관, 민음사, 1994(원 1972) 608쪽.
Deleuze et Guattari,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Minuit, 1972, p. 494.
제1장 욕망하는 기계들 Les machines désirantes 7- [몸의 기능] [의식의 역량]
1 욕망하는 생산(La production désirantes, 7-15, 15-. [자연-생산]
2. 기관들 없는 신체(Le corps sans organes- 15-22 (25-) [자연-산업] <등록>
3. 주체와 향유(Le sujet et la jouissance - 22-29 [사회-자연] <소비>
4. 유물론의 정신의학Psychiatrie matérialiste- (29-43, 번 43-)
표면이라는 현실에서 생명체가 산다는 것은 먹고 자고 싸고 노동한다. 그 작업하는 현실태의 작용(반작용)은 기계이다. 토지 위에서든, 제도(참주제) 위에서든, 자본(제국) 위에서든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생산하면서 산다. 자본-소비-재자본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삶의 과정에서 기계들은 우선 토지에서 기계들의 메카니즘에서, 소비의 과정에서 자기에 필요한 것을 잘라서 걷어 올린다(절단 채취), 그리고 활동에 필요한 것들이 한 기계이외에 다른 기계들과 연관에서 생산되고 소비되기에 연결 또는 연쇄를 가지지 않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기계들이 항상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접관계의 연결이 제국의 제도 속에도 죽 있어왔다. 이는 위계질서인 국가에서 행정조직, 관료조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런 조직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부분은 토지에서든 기계 산업에서든 때로는 연결을 때로는 단절 만들면서도 현실적 평면을 매번 갱신하면서도 개인들은 자기만의 활동상에서 보면 떨어져 나온 독신기계와 같다. 그런데 자본 제국에서는 그런 개인들을 탈 제도화(탈 규준화)에 의한 연결을 허용해서는 잉여가 없다. 이 연결의 모든 개인에게 재영토화 하듯이 연결될 경우에 잉여의 극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제국은 잘 알고 있다. 제국은 기계들뿐만이 아니라, 잉여의 확실한 착취를 위하여 기계의 미세한 부분들까지도 재영토화를 강화하려고 한다. 자주, 자치가 없는 개체가 무엇이 될 것인가? 제국의 부속, 체제의 노예인가? 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일까? (56SMC)
5. 기계들 61. Les machines - 43,
[여기서 욕망하는 기계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을 의미(sens)한다. 그 노동하는 기계로서 인간은 은유가 아니다. 첫째 자연적 삶에서 일 자체가 생존의 분절로 이루어지고, 산업사회에서 노동분업의 계열에서 이탈이 있고, 그리고 소비와 생산의 복합에서 노동자는 시대에 밀려나는 찌꺼기를 남긴다. 그러나 찌꺼기가 또한 새로운 생산의 기초로서 재생산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될 것이다. 찌꺼기의 새로운 생산, 욕망의 새로운 발생이 있다.] - [욕망하는 생산은 흐름으로서 실재성이다. 이 흐름의 생산인 기계들은 사회체에 소속하는 속성으로 여기고, 속성들이 결합하는 양식에서 기계의 양태들이 나온다. 개체 즉 개인은 양태의 하나이다. (42LMBB)]
1.5.0. 욕망하는 기계들은 기계들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 Les machines désirantes sont des machines, sans métaphore 43
- [이 절의 제목으로 적당하다.]
- [첫째 양식은 연결적 양식이다. 절단(단절)은 한편으로 접속이고 다른 한편 이질의 층위이다. 심층과 표면은 단절되어 있으나 접속이다. 심층의 흐름위에 표면의 상태(표시)가 생성된다. (42LMB)]
1.5.1. 절단의 첫째 양태: 흐름과 채취 - Premier mode de coupure : flux et prélèvement
욕망하는 기계들이 모든 은유와 독립적으로 참으로 기계인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욕망하는 기계는 절단들의 체계(un système de coupures)로서 정의된다.실재성과 현실로서 간주된 절단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절단들은 고려된 성격에 따라 다양한 차원들 속에서 조작된다[실행된다]. 모든 기계는, 첫째로, 연속적인 물질적 흐름(hylè, ὕλη 질료)과 연관이 있으며, 이 흐름에서 기계는 자른다(trancher). (43) [신체의 흐름에서 채취된 부분대상이 절단인 셈이다.] 43.
항문은 똥을 자른다. 입은 젖의 흐름을 자르고, 공기의 흐름과 소리의 흐름을 자른다.좆은 오줌의 흐름을 자르지만 또한 정액의 흐름도 자른다. (44)
절단들(les coupures)은 연합적인 흐름(le flux) 위에서 채취들(prélèvements, 선취들, 추출들)을 한다. (44)
졸랭(Jaulin, 1928-1996)이 입문식(l’initiation)에서 사용된 냄새 맡는 담배들(les Boulettes)과 그 가루를 서술 할 때, 그는 다음을 보여준다. 이 담배들은 “이론적으로 유일한 기원만을 갖는 무한한 연속”에서 걷어낸 추출물 일체처럼, 매년의 생산물들이며, 우주의 경계에 까지 펼쳐져 있는 담배이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기계 전체는 기계의 기계이다. 기계는 흐름을 생산한다고 여기는 다른 기계에 연결되어 있는 만큼에서만 흐름의 절단을 생산한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기계는 자기 차례가 되어 실재상으로 절단이다. 그러나 기계는, 이상적으로 생산하는,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무한히 연속적인 흐름을 생산하는, 셋째 기계와 연관해서만 기계일 뿐이다. (44)
그렇기 때문에 횡단적 연결 또는 초한계적 연결들의 극한에서, 부분적 대상들과 연속적 흐름, 즉 절단과 연결은 하나로(un un)로 뒤섞여진다. 도처에 흐름-절단들이 있으며, 거기서 욕망이 솟아나고, 또한 흐름-절단들은 욕망의 생산성이며, 생산하는 활동과 생산물을 접목시키는 생산성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부분대상에 대한 그녀의 심오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이 관점에서 흐름의 연구를 무시하고, 이 연구를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선언한 것은 아주 이상하다. 따라서 그녀는 이 모든 연결(connexions)을 짧게 순환(courte-circuite)시켰다.)(44)
Connecticut(코네티컷), Connect(연결하라)-I(나는)-cut(자른다)라고 꼬마 조이(Joey)가 소리친다. 베텔하임(Bruno Bettelheim, 1903-1990)은 어린이의 목록(la tableau)를 만드는데, 그 애는 발동기들, 선들, 전등들, 기화기들, 프러펠러들, 핸들들을 갖춘 기계에다가 자기를 연결시키면서 만이 살고, 먹고, 배설하고 잔다. (45)
심지어 외디푸스적 또는 전 외디푸스적 인과관계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베틀하임도 이 인과관계가 그 아이의 생산성 또는 활동의 자율적 측면들에 대응함으로써만 개입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나서 비생산적 울적함 또는 절대적 후퇴의 태도를 규정한다고 해도 말이다. 따라서 우선 “생명의 총체적 경험에 대한 자율적 반응이 있고, 어머니는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항상 동일한 문제로 되돌아온다. 어떻게욕망의 생산 과정이, 어떻게어린애의 욕망하는 기계가, 기계-어린이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무한히 빈 것 속에 돌기 시작하였는가? 어떻게과정이 목표로 변형되었는가? 또는 어떻게 조숙한 중단으로 또는 무서운 악화로 희생[물]이 되었는가? (45)
그러나 이 기계는 욕망, 즉 욕망의 지위(position)로 남아있고, 이 지위는, 베텔하임의 치료과정을 따라 조이가 거친 편집증적 기계, 기적을 행하는 기계, 독신기계 들의 연속에서, 기원의 억제와 억제의 회귀를 통하여 자기 역사를 추구한다.(45) [자기 이야기(역사)는 개인의 개체성을 생성 발전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1.5.2. [절단의] 둘째 양태: 연쇄 또는 규준, 그리고 이탈
- Deuxième mode : chaîne ou code, et détachement 46
[흐름위에 부분대상들은 연결되고, 연결에는 규준이 있으며, 규준들에 따라 계열들이 있을 수 있다. 계열들은 사이의 결합은 이접적으로 보일 수 있다.(42LMB)]
모든 기계는, 둘째로, 그 속에 저장되어 기계로 작동되어야 하는 일종의 규준(code)을 포함하고 있다. 이 규준은 기계가 신체의 어느 영역에 등록되고 전달되는가 하는 것과 떨어질 수 없고, 각 영역이 다른 영역들과 연관에서 등록되었는가 하는 것과도 떨어질 수 없다. (46)
[여기서] 모든 종류의 기능적인(fonctionnelles)문제들이 제기된다. 어느 흐름을 절단하는가? 어디서 절단하는가? 어떻게 또 어떤 양태로? 다른 생산자들 또는 반생산자들에게 어느 자리를(동생의 자리를) 남겨둘 것인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입으로 싸고, 먹은 음식물과 더불어 질식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도처에 등록들, 정보들, 전달들이 지금까지의 연결들의 모양과는 다른 바둑판 모양의 이접들을 형성한다. 기의들의 연쇄들로 또는 하나의 연쇄로 감고 있는 무의식[내재의식]의 규준[코드]에 대해 풍부한 영역을 발견한 것은, 그리고 분석을 변형시킨 것은, 라깡(Lacan)에 기인한다(이 관점에서 기초적 원문은 도둑맞은 편지이다). 그러나 그 영역은 영역의 다양체 덕분에 얼마나 낯선지, 하나의연쇄 또는 욕망하는 하나의규준에 대해 전혀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46)
그러나 이 영역은 영역의 다양성 덕분에 얼마나 이상한지, 하나의 연쇄 또는 하나의 욕망하는 규준으로 전혀 말할 수 없다. 이 연쇄들은 기호들(signes)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소위 시니피앙이며, 그러나 그 기호들 자체는 시니피앙이 아니다. 규준은 언어(langage)라기보다, 은어(jargon) 즉 열려있고 다의적인 형성체를 닮았다. 기호들은 규준에 있어서 어떤 성질의 것이며, 기호의 토대들과 무관한 어떤 것이다. 기호들은 아무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고, 모든 단계에서 또는 모든 연결들(connexions)에서 일하고 있다. (46)
이 연쇄에 알맞은 이접들(les disjonctions)은 아직 어떠한 배제(exclusion)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 배제들은 억제자들과 압력자들의 놀이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이들[억제와 압력]은 후원[지지]를 규정하러 와서 특별한 개인적 주체를 고정하러 온다.
각 연쇄는 다른 연쇄들의 조각들을 사로잡고서, 마치 난초의 코드(le code)는 말벌의 모습(la figure)으로부터 “끌어오는(tirer)” 것처럼, 각 연쇄는 단편들로부터 잉여가치를 끌어낸다. 이는 규준의 잉여가치 현상이다. (47) [파브르, 벩송, 들뢰즈에 이르는 난초-말벌 예시는 이접들의 중요한 예시일 것이다.]
이것[잉여가치 현상]은 추첨에서 제비뽑기의 체계와 같은 것인데, 그 추첨은 부분적으로 서로 의존하는 예측불가능한(aléatoire) 현상들을 형성하는데, 마르코프(Markoff, 1856-1922)의 [개연성 연구의] 연쇄와 가깝다.
[현상들의 등록들과 전달들], 이것들은 이접적 대종합이 영속적으로 가치 지기함에 따라 서로서로 교차한다(se croiser).만일 거기에 어떤 글쓰기(une écriture)가 있다면, 실재적인 것(le Reel)을 그대로(à même) 글쓰기 한 것이다. 그것은 낯설게도 다의적이며, 선형적인 일대일 대응적이 아니며, 논술을 넘어서며 논술적이 결코 아닌 글쓰기이다.즉 그것은 수동적 종합들의 “실재적 비조직화”의 영역 전체이다. 여기서 기표(le Signifiant)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을 헛되이 찾는다.또 그 영역은 연쇄들을 기호들로 끊임없이 구성하고 분해하는데, 이 기호들은 기표들이기 위한 아무런 소명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욕망을 생산한다는 것, 그러한 것은, 게(ça)가 스스로 기계가 된다는 의미에서, 기호의 유일한 소명(vocation)이다. (47)
이 연쇄들은 끊임없이 모든 방향에서 이탈(détachement, 해탈)의 자리(siège)이며, 도처에서 분열[자]들(schizes, schizos ? 오타)이 있다. [자리는 첫째의 위치(position)와 동격일 것이다. (수학적 논리에서)분열은 (기계에서)분화(dissociation)와 동격일 것이다.] 이 분열[자]들은 [연쇄자체들에서 ou] 그 자체로서 가치 있고, 특히 채워져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것이 기계의 둘째 성격이며, 즉 절단-채취와 혼동되어서 안 되는 절단-이탈이다. 전자는 연속적 흐름과 관계하며, 부분적 대상에 귀착한다. 후자는 이질적 연쇄에 관한 것으로 날아다니는 덩어리 또는 벽돌처럼 이탈 가능한 선분들에 의해 즉 움직일 수 있는 저장물에 의해 진행한다. (47)
조금 전에 우리가 분열증자는 욕망의 탈규준화한 흐름들의 극한에서 생긴다고 말했다면, 분열증자는 사회적 규준들을 이해해야 했으리라. 이 사회적 규준들이란 전제적 시니피앙(Signifiant)이 모든 연쇄를 부수고, 이들을 하나의 선(線)으로 만들고, 기호와 의미를 양립 대응시키고(bi-univocise), 벽돌들을 그 수만큼 움직이지 못하는 요소들로서 만들어 중국제국의 벽을 쌓는데 사용한다. 그러나 분열자는 언제나 이 벽돌을 이탈시키고, 뜯어내고, 이들을 모든 방향으로 날라서, 욕망의 규준인 새로운 다의성을 발견하려 한다.(48)
모나코프(Monakow, 1853-1930)는 신경분리이탈(diaschisis)과 신경분산(diaspasis)을 말했다. .. 벽돌들은 등록의 절차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하는 기계들의 본질적 부품들이다. 즉 혼성하는(composantes) 부분들이기도 하고 동시에 해체작업(décomposition)의 생산물이기도 하다. 이 부분들과 생산물들은 신경체례라는 큰 시간생산기계에 연관하여, 그런 저런 찰나에만 공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음악상자”[오르골]의 전형인 ‘멜로디가 나오는 기계’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모나코프와 무르그(Mourgue, 1886-1950)의 저서에 비길데 없는 특성을 이루는 것, 즉 그 책이 영감을 받은 잭슨주의(jacksonisme)의 전체를 무한히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은 벽돌이론이며 벽돌들의 이탈과 조각화의 이론이다. (48) ,
1.5.3. [절단의] 셋째 양태: 주체와 잔여물 - Troisième mode : sujet et résidu 48
[이탈된 계열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전제적(참주적)이다. 그러나 하나로 질서있는 직선이 아니라 여럿을 연합하는 양식으로 연접적 모습의 양태가, 한 예로, 개인의 몸일 것이다.]
욕망하는 기계의 셋째 절단은 꼬리-절단(coupure-reste) 또는 잔여(résidu)이며, 이절단은 기계 옆에 주체(sujet)를, 즉 기계에 인접한 조각(pièce)을 생산한다.(48) ... 기계 옆에 있는 몫(une part)이며, ... 분유하고 있는[나누어 가지는] 몫 그 자체이다.(49)
또한 이 주체는 자신이 통과하는 상태들을 소비하고, 이 상태들로부터 태어나며, 항상 마치 부분들로 이루어진 몫처럼, 이런 상태들로부터 결과로 나온다. (49) [대상화 된 자아=주체, 피상적이기에 부분으로 할당된 몫이라고 한 것이다.]
라깡(Lacan)에게 어원적인 놀이(jeu)라기보다 기계적인 놀이를, 즉, parere –procurer(획득하다), separare–séparer(분리하다), separere–s’engendrer soi-même(스스로를 생산하다)를 전개하게 허락하는 것은 그러한 놀이의 강도적 성격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결코 전체를 만들 지 못한다. “부분은 전적으로 홀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주체가 자기 부분화(partition)로부터 자기 출산(parturition)으로 진행한다‥…이런 이유로 주체는 여기서 자기에 관한 것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시민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상태를 얻을 수 있다. 각각의 삶에서, 아무 것도 거기에[이 상태에] 이르는 열망을 더 이상 흩뜨리지 못한다. 부분(pars)이 되기 위하여, 주체는 자기의 이익의 대부분을 기꺼이 희생한다.”(라깡) 다른 두 절단(첫째, 둘째)도, 주체적 절단도 결여를 지시하지(désigner) 않으나, 반대로 몫(part)으로서 주체에 속하는 부분(partie), 즉 나머지로서 주체에 귀속하는 수입(revenu)을 지시한다 (여기에 다시 한번, 외디푸스의 모델이 얼마나 나쁜 모델인지! 알 수 있다.) 이 절단들은 분석의 사실[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들 자체로서 종합들이다. 예로서 어린이의 트림에서 젖이 되올라옴을 생각해보자. (49)
욕망하는 기계는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하는] 세 양태에 따라 자르고 잘려진 기계이다. 첫째 양태[양식]는 연결적 종합에 속하며, 리비도(libido)를 채취[걷어올림]의 에너지로서 동원한다. 둘째, 이접적 종합에 속하며, 누멘(Numen)을 이탈의 에너지로서 동원한다. 세 번째, 연접적 종합에 속하며, 관능(Voluptas)을 잔여의 에너지로 동원한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욕망하는 생산의 진행은 동시적으로 생산의 생산, 등록의 생산, 소비의 생산이다. 채취하다, 이탈하다 나머지로 남다라는 것, 이것은 생산하다 이며 욕망의 실재적 조작을 효과하다이다. (49-50) [생산, 등록, 소비] - [cf, 의미논리: 지칭(이것 저것 과거 현재), 표명(나, 너, 미래), 기호(그러므로 함축)와 관계.] (42LMB) (옮3:29, 56SLF)
(7:05, 56SMC)
* 인명록
1834 잭슨(Johann Hughlings Jackson, 1834-1911) 영국 신경생리학자.
1853 모나코프(Constantin von Monakov, 1853-1930) 러시아 출신, 신경과 의사, 신경병리학자, 정신과 의사.
1856 마르코프(Andreï Andreïevitch Markov, 1856-1922) R2. 러시아 수학자. 우연적 함수(fonctions aléatoires)들에 관한 연구는 관계의 전형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processus ou chaînes de Markov, 1907) - 개연성(probabilité) 연구.
1882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1882-1960)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심리학자, 어린이 심리학, 정신분석학자. 어린이 정신분석학(The Psychoanalysis of Children 1923)
1886 무르그(Raoul Mourgue, 1886-1950), 프랑스 의학박사. 생물철학연구자. 벩송의 제자. 그는 본능에게 중대한 자리를 부여했고 생명과 영혼현상들 사이 연관을 연구했다. 의학 박사학위: Etude-critique sur l’Evolution des Idées relatives à la nature des Hallucinations vraies., 1919
1901 라깡(Jacques Lacan, 1901-1981) 프랑스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자.
1903 베틀하임(Bruno Bettelheim, 1903-1990), 교육학자. 오스트리아출신 미국 심리치료사. 유태인이 아닌 것 같고, 프로이트 학파와 친한 것도 아닌 것 같다. The Empty Fortress, 1967)(La Forteresse vide: L'Autisme infantile et la Naissance du soi)
1928 졸랭(Robert Jaulin, 1928-1996) 프랑스 인류학자, 인종학. 베네주에라와 콜롬비아에서 인디언들과 살았다. 1960년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는 불복종(l’insoumission)의 선언에 참여했다. La Mort Sara, 1967, La Décivilisation, 1974), L’Univers des totalitarismes (1995).
jacksonisme: 본질적으로 신경체계에 위계적 질서가 있다는 서술. 중첩되어 있는 여러 기능적 수준들의 계열이 있다. 가장 의지적에서 가장 자동적인 것까지 여러 단계들이 있다. 잭슨(Jackson, 1834-1911)이 고안해 냈고, 실행한 이는 에(H. Ey)와 루아르(J. Rouar)이다.
(7:32, 56S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