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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안고 갔단다, 우즈베키스탄에 갔단다 <나의 결혼원정기> 우즈벡 가다 | ||
[필름 2.0 2005-07-18 21:10] | ||
결혼도 원정 가야 하는 시대다. 나이도 많고, 재산도 없고, 3D 업종인 농사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의 결혼원정기>는 그 서글픈 현실을 유쾌하게 담기 위해 우즈베키스탄까지 날아갔다. 숨 막히는 열사의 땅에서의 땀 내음을 전한다. 날씨 얘기부터 꺼내는 건 진부하지만, 차마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살갗을 홀랑 벗겨버릴 기세의 따가운 햇살이 오후 8시를 넘겨서야 간신히 기울었다. 그제서야 한숨 돌릴까 했더니, 이번에는 북적이는 체온으로 뜨겁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에 위치한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 줄여서 '압둘카심 사원'이라 부르는 작은 공간은 보조 출연자들과 주연배우, 스탭들과 취재진, 통역까지 합쳐 1백여 명이 넘는 인파들이 점령한 상태다. 하늘은 뚫려 있지만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였고, 옥상 위는 뜨거운 열을 내뿜는 조명들이 에워싸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아쉽다. 그러나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탓하는 건 이방인 뿐이다. 타쉬켄트에서 한달 넘게 머무르며 현지인이 다 된 감독과 스탭들은 새삼 날씨를 거론하지 않는다. “지난 주엔 50도까지 올라갔어요. 이번 주는 40도 안팎이니 이만하면 서늘한 편이죠.” 한 제작진의 귀띔에서 알 수 있듯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표정이다. 그 날의 촬영분은 영화 핵심 장면 중 하나인 데다 많은 인원이 동원된 군중 신이라 여느 때보다 제작진의 손길이 바쁘다. 그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있다. 주연배우 정재영과 유준상, 그리고 수애. 어찌나 촌스럽게들 변했는지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어디 있나요
정재영은 그 사이 몸이 많이 불었다. 더덕더덕 군살이 붙은 노총각의 몸을 만들기 위해 밤마다 술을 먹고 자는 게 일이란다. 늘어난 신체 사이즈보다 한 치수 더 큰 듯 헐렁거리는 양복은 참 오묘하게 촌스러운 갈색이다. ‘예천군민 체육대회’ 글자가 선명한 가방을 옆구리에 메고 놓지 않는 품새는 영락없는 농촌 총각. 유준상은 양배추 인형 같은 머리 모양이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데뷔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던 단정한 스타일을 무너뜨린 이 솜씨는, 영화 속 배경인 충남 예천 ‘머리나라 미용실’에서 만진 것이라고. 둘은 서른여덟 먹도록 부모님과 함께 사는 농촌 총각 만택(정재영)과 희철(유준상)로 분한다. 그나마 희철은 건들건들 작업에라도 능하지만 만택은 연애 한번 변변히 못해 본 소심남. 주변머리는 우즈베키스탄까지 와서도 마찬가지라 만택은 통역관 라라(수애)를 마음에 품고서도 속 시원히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한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건만 셋의 속내는 갈래갈래다. 새까맣게 탄 두 남자 속에서 그나마 수애의 안색이 화사하다. 긴 리허설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되자 현장은 더 부산해진다. “고리까! 고리까!” 하객들은 신랑 신부를 향해 술잔을 치켜들며 낯선 단어를 외친다. 결혼식장에서는 ‘키스해’라는 부추김의 의미로 쓰이지만 본래 ‘고리까’는 우즈베키스탄어로 ‘맵다’는 뜻. 입맞춤이든 사랑이든 남들처럼 마냥 달콤할 수만은 없는 노총각들의 매캐한 현실이 우연처럼 ‘고리까’라는 외침과 겹쳐진다. 스테디 캠이 날렵하게 하객들 사이를 누비며 혼례식장의 활기를 담는다. 신랑과 신부가 못이기는 척 가볍게 입을 맞춘다. 내 님은 어디 있나요
낯설음은 영화 속 작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결혼식장 테이블 위에 올려진 타이어 모양의 리보슈카(밀빵)나 우리 눈에는 어딘가 어색한 여인들의 화장법, 팝송 같으면서도 독특한 리듬을 가진 음악 등등 현지 공기 아래에서 느껴질 수 있는 작은 차이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만들어낸다. 촬영이 진행된 사원 바깥으로 나가면 우즈베키스탄은 도착 전의 기대를 더욱 더 비껴간다. 대우 현지공장이 있는 덕에 시내에는 대우 자동차가 종류별로 가득해 오히려 낯설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섞여 있고, 적당히 현대화돼 있지만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충분히 개발되지 못한 낡은 도시의 모습도 혼재돼 있다. 너도나도 해외 로케이션을 떠나는 요즘 한국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나의 결혼원정기>는 우즈베키스탄만의 이국성을 담고자 노력한다. 타시켄트의 시장과 거리 등 일상적 공간부터 압둘카심 사원와 같은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낯선 나라의 뜨거운 공기가 카메라에 담긴다. 원정의 끝은 어디인가요
변변한 장비도 시설도 없는 터라 거의 모든 촬영 장비를 한국에서 날라오고 1주일 단위로 필름통을 다시 공수해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사람들이 그 불편을 채워준다. “우리 영화에 잠깐 나오는 단역 중에 눈빛이 장난이 아니길래 물어봤더니 연기 경력이 50년이라더라. 현지 스탭 중에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출신이 절반 이상일 정도다.”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정재영이 감탄할 정도로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많다. 한국으로 치면 영화진흥위원회쯤에 해당할 우즈베키스탄 필름에서 파견된 현지 프로듀서와 스탭들은 실력으로 언어의 장벽 따윈 간단히 뛰어넘는다. 하루 9시간으로 정해진 노동 시간을 무시하고 14시간씩 일하는 한국인들을 따라 묵묵히 일하는 순한(?) 성품이다. 덕분에 촬영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뜨거운 7월의 햇살마저 “지금이 가장 빛이 좋을 때”라는 이유로 감내한다. 그 좋은 빛 아래에서, 이토록 낯선 땅에서, 어수룩한 주인공들은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어느새 “이렇게 따뜻하고 잠재력이 큰 나라인 줄 몰랐다. 우즈베키스탄 여자들과 결혼하는 일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유준상의 전언처럼, 여기 머무르다 보면 그들을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의 여인들은 실제로도 참 어여쁘다. 시오카(슛), 오케이, 조용히! 3개 국어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면서, 이틀 내내 자정을 넘기도록 촬영은 이어졌다. 새벽 4시면 해가 떠오르는 우즈베키스탄의 밤은 짧다. 밤 장면을 찍는 날이면 밤샘은 예사다. 이렇게 7월이 끝날 때까지 촬영을 마치면 원정 떠난 노총각들도, 촬영팀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가을, 11월이면 핑크빛 꿈을 안고 떠난 결혼 원정대의 결과를 알 수 있다. 사진 김춘호 기자 사랑할 줄 모르는 이들의 사랑법
황병국 감독 인터뷰
TV에서 방영한 인간극장 ‘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친구가 보여 줬다. 보자마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싶더라. 친구에게 술을 사면서 아이템을 넘기라고 꼬드겼다. 2002년 4월 우즈베키스탄 결혼 원정대와 함께 와서 3주간 머물면서 그들의 모습을 비디오 10시간 분량으로 담았다. 처음엔 결혼 원정대에 참가한 4,5명의 노총각이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벌어지는 소동으로 생각했는데, 정리하다 보니 죽마고우 노총각 2명의 버디 무비로 바뀌게 됐다. 실제 인물의 모습과 경험담을 반영한 건가. 그때 만난 노총각들의 캐릭터를 일부 가져왔다. 나 자신도 결혼을 안 했고. 주인공들이 서른여덟로 설정돼 있는데, 3년여 준비를 거쳐서 촬영을 시작하게 되니 어느새 나도 그 나이가 돼 있더라(웃음). 배우들 캐스팅에는 만족하는가. 만택 역에는 처음부터 정재영은 염두에 두고 썼다. 실제로 농촌에는 정재영처럼 멀쩡하게 생긴 사람도 많다(웃음). 유준상은 영화사의 추천을 받고 만났는데, 희철의 모습을 갖고 있고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더라. 예천에서 함께 개구리 잡아 먹고 놀면서 많이 친해졌다. 나이도 서로 비슷하고. 왜 하필 우즈베키스탄인가. 그저 결혼 원정대의 얘기라면 필리핀이든 연변이든 상관 없을 거다. 이국적이고 생소한 모습을 원했다. 두 남자가 한국 사회의 언더그라운드이듯, 그들이 가는 곳도 알려지지 않은 공간, 언더그라운드였으면 했다. 젊은 관객을 끌어당기기에 소재가 다소 칙칙하다. 소재 자체의 위험성도 있고. 안다. 농민들이야말로 FTA 비준을 몸으로 막아낸 사람들인데 외국에서 신부를 사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국제 결혼 중 70~80%는 결국 이혼하기도 하고, 한국에 시집와 맞고 살다가 도망치는 여자도 많다. 그런 문제들을 간과할 순 없겠지만 영화에선 개인을 그리고 싶었다. 하루에 세 명의 여자와 맞선을 보고 결혼하는 농촌 총각들에게 사랑이 어디 있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랑해본 적 없어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이들의 삶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다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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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그래서 저렇게 맞춤옷처럼 어울리는 거구나. ;ㅁ;
감독님 멋쟁이!!!! ;ㅁ;
'나의 결혼원정기' 너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