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준 선물
김명숙
“여보 미안해.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당신 이제 자유야.”
자고 있는 남편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대답을 한다.
“알았어.”
표현에 인색한 뚝배기 같은 경상도 남자. 만약 자고 있지 않았다면 좀 더 좋은 말로 ‘그래. 당신 그런 생각을 하다니 대단해.’ 라든가, 아니면 ‘멋진 깨달음이네. 고마워.’ 등등의 말로 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한마디. ‘알았어.’ 무심한 사람. 그러나 어쩌랴 내 남편인 걸.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그 귀에 대고 말했다.
“어젯밤 당신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으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고민 많이 했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래서 이제 당신에 대한 나의 높은 기준을 내려 놓으려고. 내가 원하는 당신이 아닌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요. 그동안 힘들었죠? 미안해요. 당신 힘들게 해서.”
“잘 생각했어. 선물로 터키 갔다 와.”
선물이라고? 그것도 터키를 다녀오라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환청을 들었나?
“뭐라고요? 선물로 터키를 다녀오라니 무슨 말이에요?”
“못 들었음 말고.”
그동안 나는 결혼생활 20년 동안 줄기차게 포기하지 않고, 하나됨을 원한다며 남편에게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내 뜻에 맞게 바꿔주기만을 요구했다.
“당신이 바뀌지 않아 힘들어요. 20년을 같이 사는데 어쩜 그리 한결같아요?”
바가지 긁기 시작하려는데 남편이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
“당신, 이제 나에 대한 높은 기준을 내려놓는 것이 어때?”
순간 아들의 방황에 당황하며 고민하고 아파하다가 얻은 깨달음이 생각났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해주자고 아픈 마음 부여잡고 어렵게 결정을 하고 자유롭게 풀어주었을 때 아들은 자신의 길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을 했다.
남편도 그걸 요구하는 것이다. 남편에 대해 요구하는 내 요구가 남편을 옭아매고 있는 기준이라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기준을 놓아버리면 남편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살아가며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남편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 벼랑 끝에서 아무것도 잡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 같은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오늘 글로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 요구는 내 기준에 맞게 남편을 개조시키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유를 선언한다. 마음으로 먼저 외친다. ‘여보 당신 이제 자유예요~’ 남편에게 자유를 선언하니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왜 내 맘이 이렇게 가볍지?’ 남편이 그랬었다.
“상대를 용서해주고 받아주는 것은 결국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거야.”
내 마음이 이렇게 가볍고 기쁜 것은 그래서겠지. 물론 당사자인 남편은 얼마나 기뻤으면 나에게 그 큰 선물을 주었을까? 터키 단기선교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녀오는 12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하며 혼자서 4살과 5살인 셋째와 넷째를 돌보아야 하고, 그에 따른 빨래와 식사준비와 돌봄을 해내야만 한다.
그런데 다녀오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반응을 보일까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하나됨을 위하여’란 미명하에 잘못된 관점을 포기하지 못하고 잡고 있던 나도 불쌍하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남편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 감사하다. 머리로만 하던 고민을 글로 풀어내어 정리를 하니 이런 깨달음과 선물이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