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잠언 제 7 강 메시지_아산UBF
집을 세우는 자, 집을 허무는 자
말씀 / 잠언 14장, 15장
요절 / 잠언 14: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무느니라”
예수님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대화하시는 방식은 따라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를 안다고 자부하고 말하는데, 지혜를 안다고 말하는 그 어법과 자세가 타인을 기분상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를 배웠고 지혜를 알고 있고 지혜를 말한다고 해서 지혜롭지는 않은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지혜는 개인, 가정,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14장이 이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15장은 개인의 내적 성품에서부터 대인관계, 사회적 책임, 영적 성숙까지 포함하는 통합적인 지혜를 제시합니다.
14장은 지혜가 개인, 가정, 사회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어 실천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지혜로운 삶의 결과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어리석은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여기서 ‘여인’은 ‘남자’로 대체해도 됩니다. 혹은 ‘여인’은 ‘목자’로 ‘집’은 ‘센터’로 혹은 ‘캠퍼스’로 하여도 됩니다. 세상에는 세우는 일이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일도 있습니다. 건설이 있는가 하면 파괴도 있습니다. 모으는 일이 있는가 하면 흩어 놓는 일도 있습니다. 어떨 때 세우는가? 겸손할 때 세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세웁니다. 겸손하게 사랑할 때 세웁니다. 약속을 잘 지키고 성실하고 진실하고 충성할 때 세웁니다. 무너지는 일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파괴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왜 오만하여 처참하게 무너지게 할까요? 왜 듣지 않는 독선을 가져서 쌓은 것이 넘어지게 할까요? 왜 자기 영광을 구하여 얻은 것을 다 잃어버릴까요? 왜 살리려 하지 않고 사람을 얕잡아 보고 사람을 도구로 삼고자 하다가 떠나게 할까요? 그리스도를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법대로 생활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배웠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때 그리스도보다 자기 이름, 자기 유익에 집착하는 마음 중심을 품고 끌어안고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돋보이이고 자기 자아 실현하는 수단과 도구로 삼기를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남자는 자기 집을 세웁니다. 그리스도의 법대로 섬기는 목자는 자기가 맡은 캠퍼스를 세웁니다. 그리스도가 하신대로 따라 모욕을 참고 괴로움을 참으며 자기를 전적으로 죽이는 리더는 모임을 세우고 센터를 세우는 일에 쓰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그를 경멸하느니라" 정직하게 행하는 것, 패역하게 행하는 것 이것은 행동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과 행동은 일치합니다. ‘믿음은 좋은데 말은 좀 거칠다’ ‘믿음은 좋은데 행동에서 문제가 좀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도 문제가 있어서 말과 행동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손해볼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참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손해 보는 것을 실천하고 기다리는 것을 행하고 참는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그리스도의 법은 낮아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높아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바로, 눈 앞에서, 당장 말을 하고야 맙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합니다. 말할 때 그리스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언어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인내와 고난이 떠오르지도 않고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면 바로 말을 해야 하고 생각나는대로 일단 말을 먼저 해놓고 터뜨려놓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언어생활은 인격생활이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언어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옳은 말이라도 천천히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말을 참을 수도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학생이 없으면 장막방에 돈 쓸 일도 없습니다. 학생들이 있으니까 돈도 씁니다. 착하고 온순한 학생들만 있으면 목자들이 조금 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활달한 학생리더가 있으면 혹시 세상사람들과 어울려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지만, 그런 학생리더가 다른 학생들도 돌보고 후배들도 살피는 것입니다. ‘목자님 훌륭하세요’ 목자에게 잘하는 양들 중에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리더는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만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절부터 8절까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손해 나더라도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자기 영광, 자기 유익인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결정적인 때, 자기가 손해를 볼 수 있는 때 거짓을 말합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중심인격과 증언은 일치합니다. ‘저 사람은 왜 거짓말 하는가? 왜 말을 저렇게 하는가?’ 화 나시지요? 그 인격이 정상이라 보기 때문에 ‘문제있는 말’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의 인격이 문제가 있었구나’ 생각하면 화가 덜 나실 것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너는 어리석은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나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순간 성장은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는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 발생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지혜는 겸손을 향해 흘러가는 법입니다. 사람의 태도가 일생 학습하고 성장하게 하는가 하면, 태도가 20대의 문제를 30대에, 20대의 문제가 40대에, 20대의 문제가 50대, 60대에 나타나게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 영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싸웠다’고 기억합니다. 자기가 싸운 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했거나 마음을 상하게 했거나 치명적인 잘못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처 주었다’. ‘내가 마음 상하게 하였다’. ‘내가 잘 못 하였다’ 자기 인식이 희박한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기도 자기에게 속습니다. ‘나는 착한데 왜 그러지?’
9절부터 15절까지는 내면의 진실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심상히 여긴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가볍게 취급한다는 뜻입니다. 혼자 짓는 죄가 있고 사람에게 짓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이 있고 법에 어긋나는 죄가 있으며 도덕에 어긋나는 죄가 있는가 하면 양심에 걸리는 죄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 주변 사람에게 잘못을 거듭하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을 만나 정중한 척 할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하던 그 버릇이 결국 튀어 나와 좋은 기회를 놓칩니다. 가까운 사람, 주변의 대수롭지 않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의 이익을 챙겨주고 존중하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을 만날을 때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기회를 얻습니다. 나에게 큰 기회가 없어서 내가 큰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 죄 지으며 살면서도 심각성을 인식할 줄 모르고, 주변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며 살면서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으므로 정작 큰 일을 맡겨봐야 망칠 수밖고, 더 많은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할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각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의 깊이, 각 사람의 인간적인 경험, 각 사람의 내면의 고민은 고유한 것입니다. 나 말고 누가 알겠습니까? 남이 나를 잘 모르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잘 모른다고 여겨야 합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의 내면을 내가 파악했다며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선택이 쌓여서 망하고 흥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짓지 말고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말과 행위가 정직하면 때로 속상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길게 보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사는데 힘들고 어렵다 망하겠다 하지 말고 정직한 사람은 그 집이 함께 흥한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차이가 많습니다. 웃지만 웃는 것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누가 잘나간다고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망하는 것도 빨리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즐거운 일이 괴로움 되는 것도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보를 삼가느니라" 이익 중심인 사람은 얻은 이익으로 자족합니다. 자기 영광 구하는 사람은 누가 나를 알아주고 누가 나를 귀하다 해주는 것만 있으면 만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고 생명이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생명이 살아난 것으로 기뻐하며 생명 살아나는 비밀을 잘 배웁니다. 이익 중심인 사람은 쉽게 많은 이익을 준다하면 무슨 말이든 듣고, 자기 영광 중심, 성과 중심인 사람은 성과만 얻을 수 있다면 자기 영광을 거둘 수 있다면 이 말도 듣고 저말도 듣습니다.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16절부터 24절은 지혜가 영향을 주는 사회적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하나님 중심 경외심을 가진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 중심, 자기 영광 중심인 사람은 자기과신이 있습니다. 이 자기과신이 도덕적 문제, 법적 문제까지 일으킵니다. 이곳 저곳에서 고발하겠다, 고소하겠다 항의가 들어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감정을 함부로 노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목자로 살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미움의 대상이 될 때, 내가 나 중심, 이익 중심으로 살지 않았나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을 기업으로 받으려니와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자기 영광 구하고 자기 과신 속에 살면 열매도 없고 사람도 떠납니다. 성과, 명성, 영향력 가진 것을 영광으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 아는 것을 영광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청년의 때부터 하나님 영광을 구하여야 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영광 구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을 구한 사람은 승리 얻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그의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가난하면 주변사람들에게 부담주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자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그 사람의 천사가 하나님을 뵙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사랑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특히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돈이 있는 만큼 긍휼의 인격도 풍성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다만 어리석음이니라" 선을 추구하면 인자와 진리가 있지만, 악을 계획하면 잘못 가는 길입니다. 일을 하여야 수입이 있는 것이지 노동 없이 말만 해서는 이익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재물까지 있으면 이를 잘 사용하므로 더욱 영광이 됩니다.
25절부터 35절까지 우리 삶에서 실제적으로 가치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자는 속이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다른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사람, 자기 영향력을 키우려는 사람이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른 인생을 구원하는 일에 삶을 드리고 인생을 드린 사람은 그의 삶이 자녀들과 양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양들과 자녀들을 어려움에서 도울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생명력이 솟아나는 원천이 됩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리더십이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상처가 많고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부로 화내지 말고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익 중심, 자기 영광 중심인 사람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화 나는 법입니다. 빨리 유명해지고 싶어 서두르다가 패착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마음이 평안하지만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다른 성과 있는 사람을 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기심으로 괴롭다면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31-33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어리석은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대하는 것이 예수님을 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의 자발적 나눔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공산주의는 강제적, 법적으로 나누자는 경제시스템인데, 이렇게 하면 생산성이 악화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면서 자발적인 나눔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나눈 사람의 삶은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멸망에서 건져주십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지혜로운 신하는 왕의 은총을 받으나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공평과 정의가 있을 때 나라는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 나라가 시끄럽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전 군사정부처럼 국가권위로 다 눌러야 조용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이 집중되면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도 잘못한다 싶으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나라를 부강하게 합니다. 부정 부패로 발생하는 비용은 어떤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잘 못하면 ‘목자님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센터 위해서 중요한 것입니다. 지적 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14장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실제 삶과 왜 연결되는가? 배웠습니다. 개인의 지혜로운 선택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고 개인은 성장하게 합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으며 그런 국가는 평안과 번영을 얻습니다.
다음 잠언 15장의 핵심주제는 지혜로운 언어와 마음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장 1절부터 7절까지는 언어의 영향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말 할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잘 하면 관계가 회복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말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으면 성경을 잘 보면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대화한 내용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화법을 배워서 예수님을 전하는 목자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군사정부 시절의 대화법, 개인의 독단적 대화법을 고수하면 좋은 관계는 어렵습니다. 예수님 전하는 일도 애로가 많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나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였는지 궁극적으로 심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나는대로 말하지 말아야 하고 자기 중심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온순한 혀는 생명 나무라도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인간관계는 말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치유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말이 상처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옳은 말 하고 살리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되 슬기로운 자는 징계를 받으며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배가 있어도 악인의 소득에는 고통이 있느니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좋은 말, 살리는 말은 훈계를 잘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교육받지 않아 본성대로 사는 사람, 청년 시기에 자기 마음대로 하여 연단 없었던 사람,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습관대로 살아온 사람은 수준 높은 대화, 살리는 대화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고생하는 분들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고생을 거친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괴로움 주는 말,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12절까지는 예배와 영적인 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예배의 본질은 나의 존재와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열망 많은 사람들은 자기노력을 열심히 기울입니다. 그런 열망으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와 자기 열망 이루어달라 합니다. 인간적인 열망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한 예배와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들어주셔야 하나요? 100%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듣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자기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위하여 나를 드리는 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10-12절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거만한 자는 책망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스올은 죽은 자들이 거하는지하세계, 형벌과 공포가 있는 곳을 의미하고 아바돈은 바닥 없는 깊은 구덩이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한다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지 않으면서 자기 뜻과 야심을 이루고자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주셔서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런 징계조차 거부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입니다. 우리는 책망받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나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불완전함이 드러난 것에 대하여 책망이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국가도 독재자가 있는 곳에 예스맨만 있게 되고 독재자는 잘못을 시정할 일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개척목자도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우리센터에 저보다 연세가 많은 천사라 사모님이 오시고 서울에서 정누가 목자님이 오시는 것은 저에게 다행한 일입니다. 또 여러분들 중에서 저에게 ‘목자님, 잘못하시는 것입니다’ 이야기 하신 분들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대답한 것은 제가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며 말로만 하지 않고 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3절부터 17절은 지혜와 마음의 상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면과 외면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마음을 기쁨과 평안으로 유지되는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얼굴을 보며 자라고 양들은 목자의 넓은 가슴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저는 대전에서 보나목자님이 말씀공부 인도하는 것을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받아적으려 애썼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나목자님의 메시지를 일주일 내내 묵상하고 적용하며 소감을 썼습니다. 그것이 저의 목자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양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때 옆에서 뭘 그렇게 받아적냐고 하던 사람, 일생 빈손입니다. 부인이 ‘우리 남편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원망을 듣습니다. 한 번도 일을 벌려서 성공한 것 없고 열매맺은 것도 없습니다. 배울 것을 제대로 잘 배우는 사람이 이웃을 위하고 양들을 살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5-17절: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도 마음 아픈 일은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고 제자양성과 세계선교 위하여 사는데 뜻밖의 피해, 마음 아픈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배우고 동참하니 감사합니다. 내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고 나의 문제를 시정하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높여주시고 상을 주실 때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만 높이니 잘난 척 할 것 없으니 또한 감사합니다. 슬픈 일에도 감사하고 좋은 일에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니 시기할 것도 없고 싸울 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 이래서 은혜롭습니다.
18절부터 23절은 인간관계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밭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와 같으니라" 화내면 본인은 스트레스 털어버리고 후련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후유증, 후폭풍이 있습니다. 관계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보다 운동하고 일하고 움직여서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23절을 보십시오. 부모와 스승과 목자는 자기의 행복이나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식과 제자와 양의 행복과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도 경외심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 지혜로운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조언 할 사람을 보내주시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주시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조언과 전략을 무시하여 어리석은 길을 갑니다.
24절부터 33절까지는 삶의 방향과 그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24-2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아 아래에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악한 자의 꾀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선한 자의 말은 정결하니라" 삶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자기 영광,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위로 향한 생명 길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3D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뿌린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약하고 부족하여도 믿음으로 살고 경외심으로 산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고 자기에게 이익되는 것만 구한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도 지켜주시지도 않습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라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이익 중심인 사람들이 결국 망합니다. 이익 중심, 자기 영광 중심인 사람은 원칙을 벗어납니다. 이로 인하여 책임을 지는 날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마음중심의 추구하는 바를 올바로 하여서 올바른 말을 하고 올바른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들어주십니다.
30-33절을 보십시오. "눈의 빛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생명의 책망을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훈계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말, 자기를 높이는 소식을 전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긍휼을 나타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잘 듣고 잘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듣고 배우는 것은 괴로운 때도 있고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서 괴롭고 어려워도 잘 듣고 배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살리는 말, 생명을 전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15장 말씀은 주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좋은 말, 살리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말을 하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하고 추구하는 바가 하나님을 향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잘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잘 배우고 잘 들은 사람이 결국 관계를 좋게 하는 말, 지혜의 말, 생명이 살아나게 하는데 쓰여지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여서 청년의 때에 잘 듣고 잘 배우며 잘 연단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지혜의 말을 하고 살리는 말을 하여서 집을 세우고 캠퍼스를 세우고 세계선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역사에 동참하여 쓰임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복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산UBF
아산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