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전쟁터를 종횡무진 누비며 수많은 특종과 현장감 있는 기사로 전쟁의 참상과 이면을 세상에 알렸고 여기자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고(故) 마거릿 히긴스. 정부가 그녀에게 외교훈장 흥인장(2등급)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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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당시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맨 왼쪽)가 휴식 중인 군인들을 취재하고 있다. /보훈처 제공
6·25전쟁 6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30일 "히긴스의 희생과 용기, 한·미동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외교훈장을 수여키로 했다"면서 "그의 딸과 손자를 한국으로 초청, 훈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1일 방한하는 히긴스의 딸 린다 밴더블릭(51) 박사는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에서 상담 및 심리학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그녀의 아들 오스틴(20)은 기업체 홍보분야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1920년 홍콩에서 태어난 히긴스는 1942년 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가 됐다. 유럽에서 종군기자생활을 한 그는 6·25 전쟁이 터졌을 때 도쿄 특파원이었다. 전쟁발발 불과 이틀 후인 6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히긴스는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한국 피란민들 틈에 섞여 나룻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한강을 건넜다.
전쟁기간 중 그는 수많은 특종과 현장기사를 송고했다. 맥아더가 한국 전선을 시찰한 뒤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 지상군 투입을 건의할 계획이란 내용도 처음 보도했다. 1950년 8월 23일자 기사에선 경남 통영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한국 해병대에 대해 "그들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고 썼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말은 여기서 시작됐다. 인천상륙작전 때는 미 해병대와 함께 상륙작전에 뛰어들어 생생한 전장 모습을 전달했다.
히긴스는 6개월간 6·25전쟁 경험을 토대로 1951년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했고, 그해 히긴스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 신문기자단은 그를 '올해의 여성'으로 뽑았다. 히긴스는 미 전역을 돌며 "한국을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24년 기자생활 동안 한국과 베트남, 콩고 등 주로 전쟁터를 뛰어다녔던 그는 취재 중 얻은 열대풍토병으로 1966년 1월 3일 사망했다. 그는 종군기자 업적을 인정받아 미 워싱턴DC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