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승당(制勝堂) 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한산도에 있는 조선시대 충무공 이순신 관련 사당.
이순신(李舜臣)의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지은 사당이다. 1593년(선조 26년) 창건되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1932년에 건립된 충무사 자리에 1975~6년에 재건하였다.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당포해전(唐浦海戰)을 승리한 뒤, 왜적과 세 번째로 접전하여 적을 섬멸시키고 해상권을 장악하는 동시에 적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여 적의 사기와 전의(戰意)에 큰 타격을 준 곳이다. 이것이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으로 행주대첩·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꼽힌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진(陣)을 친 이후 늘 이 집에 기거하면서 휘하 참모들과 작전계획을 협의하였던 곳이며 집무실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운주당(運籌堂) 터다. 운주당이란 이순신이 가는 곳마다 기거하던 곳을 편의상 부르는 명칭이었는데, 1740년(영조 16) 통제사 조경(趙儆)이 이 옛터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우고 제승당이라 이름하면서 비롯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해 충무사(영당)·유허비·기념비·한산정(閑山亭)·수루·대첩문(大捷門) 등이 있다. 충무사는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인데 본래의 작은 사당은 헐렸으며, 현 사당은 1976년 10월에 중건 한 건물이다. 유허비는 1597년에 소실된 제승당을 1739년,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제승당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세웠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충무공의 전적을 그린 5폭의 해전도와 현자총통, 지자총통,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제승당과 함께 충무사를 이루는 한산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으로, 사정과 표적과의 거리는 145m이다. 수루는 적의 동정을 염탐하던 망루로서 고증에 의하여 현위치에 건립하였다. 대첩문은 1976년 정화사업계획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충무사와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입구에 있다.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통영항(統營港)
통영(統營)이란 삼도수군통제사가 있는 군영인 통제영(統制營)을 일컫는 말이었다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년)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새로 만들어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이를 겸임케 한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또는 약칭 통제영, 통영이라 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오늘날의 통영(한때 충무라고도 불림)이란 지명인 이렇게 유래된 것이다
▲한산도 거북등대
제승당 입구 바다 암초 위에 세워져 있으며, 1963년 12월에 세운 것으로 한산대첩지가 이곳임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이순신이 세계 최초로 만든 거북선을 기념하고 한산만으로 들어오는 배들이 항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연 암초 위에 이 거북등대를 세웠다.
▲제승당(制勝堂)
제승당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년)으로부터 한양으로 압송되던해인 선조 30년(1597년)까지 3년 8개월 동안 거처 하면서 작전을 의논하고 훈련을 하며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통제사였던 「원균」의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였고 당시 불타버린 운주당을 영조 15년(1739년) 통제사 조경이 다시 세우면서 이름을 제승당(制勝堂)이라고 하였다
▲수루(戍樓)
이 수루는 일종의 망루로서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곳에 자주 올라 왜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우국충정의 시를 읊기도 하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을 연결, 봉화·고동·연 등을 이용하여 남해안의 적동태를 파악하였다.
이 건물은 1976년 정화사업 때 한산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현위치에 고증을 통해 신축한 것이다.
▲제승당 유허비
제승당 유허비는 제승당을 다시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당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李舜臣)이 작전지휘본부로 사용한 운주당이 있던 곳이다. 운주당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졌는데, 제승당은 1739년 통제사 조경(趙儆)이 다시 지은 것이다.
3개의 비석 중 왼쪽 비석은 1739년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세운 것이다. 오른쪽 비석은 그곳이 전에 있던 비석을 묻은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이 비석은 이순신의 후손이자 제198대 통제사를 지낸 이규석(李奎奭)이 세웠다. 가운데 비석은 오른쪽 비석의 뒷면을 한글로 풀어 새겨 놓은 것이다.
▲내삼문
▲충무사(忠武祠)
내삼문을 지나서 유허비가 있는 공간을 지나면 맨 안쪽으로 위치한 충무사가 나온다. 이 시당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이며, 원래 조그만 사당을 헐고 1976년 10월 본 사당을 건립하였고, 매년 2회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이 영정은 1978년 정형모 화백의 그림을 봉인한 것이다.
▲한산정(閑山亭)
한산정은 이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약 145m 정도로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이곳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충무공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활터를 만들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이곳에서 활쏘기 내기를 하고, 내기에 진 편에서 떡과 막걸리를 내어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러한 기록에서 활쏘기 훈련에 흥미를 높이는 동시에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고자 한 이충무공의 지혜를 볼 수 있다. 한산정에서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병사들은 대부분 경상, 전라, 충청 출신으로 선조 27년(1594)에 이충무공의 건의로 무과특별시험에서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럭 높이 떳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한산도가(閑山島歌)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