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위하여: 안중근 토마스 >
조선인 수감자 안중근 선생은 오늘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선생은 아침저녁으로 자신이 믿는 신(神)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을 하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대 일본제국의 최고 권위자인 이토 공(公)을 살해했으니,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4개월가량 간수로서 지켜본 바로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재판장에서 들은 그의 변론과 관련된 기도일지도 모른다.
선생은 이토 공을 살해한 이유를 15가지나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열두 번째 이유는
나에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되었다.
“열두 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조선이 아니라 동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내 나라뿐 아니라 더 큰 세상을 염려하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그가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그가 줄곧 쓰고 있는 《동양평화론》이란 글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독일 상트 오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난 그에게 빌렘 신부가 왔음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선생은 환하게 웃었다. 아니, 빛났다.
어제 빌렘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용서받았다던 선생은
그 이후로 얼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마당에 죄를 용서받았다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빌렘 신부와 만남이 그에게 큰 의미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은 그가 믿는 신, 예수가 인류를 위해 수난당하고 죽임당한 사건을
묵상하는 시기라고 했다.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
그토록 나약한 신을 믿는다는 것 역시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으며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했다.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들으며 빌렘 신부에게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애틋하게 맞이했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마치 부모와 자식의 만남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말로 무언가 예식을 치렀다.
빌렘 신부가 무어라 말하면 선생이 응답하는 식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한 온기와 빛이 어리는 듯하더니,
신부가 선생의 입에 무언가를 넣어 주었다.
그러자 선생은 어제보다 더 큰 빛에 둘러싸였다.
저것이 선생이 말하는 평화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표정,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말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일까?
선생이 믿는 신을 믿으면 나도 저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선생은 이 평화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것인가?
서희정 마리아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