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적에게 / 오헨리
이 열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젊은 독자들이 지루해 하는 것을 양해하
고 기하학의 이야기를 조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이 원을 그리는 한쪽에서 인간은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자연의 것은
둥글고 인공적인 것은 각이 져 있다. 눈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원을 그리며 헤매게 된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인간
은 직각을 이루는 도로나 건물 때문에 자연을 잃은 채 걸으면 걸을수록 본
래 있었던 장소에서 멀어진다.
어렸을 때의 둥글고 귀여운 눈동자는 순진무구함의 상징이지만, 바람둥이
의 가느다란 눈은 명확히 자연의 둥그스름함이 침범당한 것을 나타내고 있
다. 그리고 수평으로 다문 입술은 교활함의 상징이다. 그에 비해 키스를 위
해 둥글게 오므린 입술에 순수한 열정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미는 자연의 완전한 모습이며 둥글다는 것은 미의 특징이다. 보름달, 매
혹적인 황금공, 장려한 사원의 굴뚝, 결혼반지, 서커스의 무대. 웨이터를
부르는 벨소리, 그리고 술을 ' 돌려 마시는 ' 것을 보라.
한편 직선에는 자연의 비뚤어짐이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비너스가 몸
에 두른 천이 형태를 바꾸어 ' 똑바른 앞치마 ' 가 된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직선을 따라 움직이고 급격한 모퉁이를 돌게 되면 성질까지 변하
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인공적인 것보다 순응성이 있는 자연은 보다 엄격한
규칙에 적응하려고 차례로 약간 기묘한 것을 낳게 된다. 예를 들면, 품평회
용의 국화, 메틸 알콜의 위스키, 공화당 지지의 미주리주 의원, 양배추 그
라탕 (요리 이름), 그리고 뉴욕인 등이다.
자연은 대도시 속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쉽다. 원인은 기하학이지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도시의 도로나 건축물의 직선, 각이 진 법률이나 사회
의 관습, 우회하는 일이 없는 포장도로, 엄격함과 융통성이 없는 규칙, 게
다가 오락이나 스포츠의 규칙까지 자연의 곡선을 냉담히 조소한다.
대도시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왔다. 이
러한 대도시에 흘러 들어온, 어떤 켄터키주의 두 가족간의 복수극을 이야기
하려면 이 수학적인 전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숙명적인 싸움의 원수는 퍼웰가와 하크네스가로서 시초는 켄버랜드 산
이었다. 복수극의 첫번째 희생물은 빌 하크네스가 기르던 사냥개였다. 하크
네스가는 퍼웰가의 가장을 살해해 이 슬픈 손실에 대한 앙갚음을 했는데,
퍼웰가의 보복도 재빨랐다. 그들은 소총을 준비하고 빌 하크네스의 애견을
이용해 그를 꾀어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를 먼 나라로 보내 버렸다.
숙명적인 싸움은 40년간 화려하게 지속되었다. 하크네스가의 사람들은 밭
에서 일을 하다가 사살되거나 방에 있다가 창으로 쏜 총에 맞았다. 교회에
서의 귀가길이나 자고 있을 때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결투를 해서 사살된
적도 있다. 맨 정신이든 술에 취해 있든 혼자 있든 가족이 모여 있든, 응전
태세가 갖추어져 있든 없든 습격을 당했던 것이다. 퍼웰가도 이와 마찬가지
로 가계의 가지들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결국 이 전정에 의해 쌍방의 집에 남은 생존자는 각각 1명씩이 되었다.
여기서 칼 하크네스는, 이 이상 싸움을 계속하면 40년 간이나 싸워온 역사
에 종말이 오므로 당사자로서는 재미없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사
람이 줄어 버린 켄버랜드에서 사라져 숙적 퍼웰가의 마지막 사람이 쌤의 복
수의 손에서 숨어 버렸다.
1년 후 쌤 퍼웰은 불구대천의 숙적이 뉴욕 시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았다. 쌤은 커다란 솥을 뒤집어 그 속의 검댕을 떼내어 긴 부츠를 닦았다.
검게 물들인 스판의 기성복에 칼라가 달린 하얀 셔츠를 입고 여행 가방에
속옷 등을 챙겼다.
그리고 벽에서 소총을 꺼냈으나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았
다. 켄버랜드에서는 이 풍습이 어울리고 그럴 듯하지만 뉴욕의 브로드웨이
에 늘어선 마천루 사이에서 다람쥐를 쫓는 듯한 이런 모습이 허용될 리가
없다. 그때 선반에 노인 구식이긴 하지만 믿을만한 콜트총이, 대도시에서의
모험과 복수에는 자신이 가장68Hnl州>l{콜트 총과 가죽 칼집에 든 사냥용 나이프를 쌤
은 여행 가방에 넣었다.
노새를 타고 역을 향해 가면서 퍼웰가의 마지막 남자는 안장 위에서 고향
을 뒤돌아 보았다. 히말라야 산목의 숲속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퍼
웰가의 묘표들이 눈에 들어왔다.
쌤 퍼웰은 그날 밤 뉴욕에 도착했다. 아직 자유로운 자연의 원 속에서 돌
아다니던 습관 때문에, 그는 대도시의 무정하고 영악한 무수한 암흑 속에
버티고 서서 이제까지 몇 백만 명을 그렇게 해왔듯이 그를 각이 진 인공의
틀에 끼워맞추려 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마차 한 대가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는 쌤을 주웠다. --바람에 날아온 낙
엽 속에서 쌤이 나무열매를 주웠듯이-- 그리고 쌤의 부츠와 여행 가방에 어
울리는 호텔로 인도했다.
다음날 아침, 퍼웰가 최후의 생존자는 하크네스가의 마지막 생존자를 감
추고 있는 시내로 들어갔다. 콜트 총을 웃옷 밑에 숨겨 가느다란 가죽벨트
로 고정시키고, 사냥용 나이프를 목 뒤의 칼라에서 반인치 아래에 매달았
다.
칼 하크네스가 시내의 어딘가에서 급행 짐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칼을 죽이러 왔다는 것 ...... 이것만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보도로 나가는 쌤의 눈은 충혈됐고 가슴에는 증오의 불이 타올랐다.
번화가의 소란스러움에 이끌려 쌤은 그쪽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나 로
렐시에서처럼 칼이 조끼와 채찍을 들고 셔츠 차림새로 거리로 나오는 게 아
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칼은 나타나지 않았
다. 칼은 문이나 창가에서 자신을 쏘려고 기다리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렇
게 쌤은 생각하고 한동안 문이나 창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점심 때쯤, 쥐와 노는 것에 지친 대도시는 갑작스레 사정없이 쌤을 거세
게 붙잡았다.
쌤 퍼웰은 2개의 간선도로가 직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사방
을 둘러보니 세계는 그 원 궤도에서 벗어나 수준기와 자로 테두리를 잘라
각을 이룬 평면으로 변해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틀에 맞춰져 순서대
로 정해진 구역 안에서 기계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생활의 근본 토대는
세제곱근이며 존재의 척도는 면적이었다. 사람들은 똑바로 열을 이루고 흐
르듯이 나갔고 쌤은 그 굉장한 소음에 망연자실했다.
쌤은 돌로 된 건물의 직각을 이룬 모퉁이에 기댔다. 사람들의 얼굴이 몇
천 갠가 그의 앞을 지나쳐 갔고, 그 중 하나가 우연히 그에게로 향해졌다.
갑자기 쌤은 자신이 죽어서 유령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모
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공포에 시달렸고 동시에 도시의 고독에 휩
싸였다.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뚱뚱한 한 남자가 빠져나와 2, 3 피트 정도의 장소
에 서서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쌤은 그 남자 곁에 다가가 소음에 지지
않게 남자의 귓가에서 외쳤다.
" 란킨즈 씨네 돼지는 모두 우리 돼지보다 살이 쪘었어. 근데 그쪽 나무
열매가 우리보다 훨씬 많아서 말야....."
뚱뚱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 장소를 떠났지만 놀란 것을 감추기
위해서 군밤을 샀다.
쌤은 위스키로 목을 축이고 싶어졌다. 거리 저편에서는 자재문으로 사람
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빛나는 술집 내부와 장식이 엿보였
다. 복수의 귀신이 된 쌤은 거리를 건너서 술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여기
서도 익숙한 원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쌤은 문의 둥근 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잡이는 없고 손은 직
사각형의 놋쇠판과 잡으려고 해도 바늘머리만크의 것도 달려 있지 않은 떡
갈나무판 위를 허무하게 미끄러질 뿐이었다.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비탄에 젖어 쌤은 문에서 떠나 계단에 앉았다.
경비원의 방망이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 산책이라도 하는게 어때 " 하고 경관이 말했다.
" 꽤 오래 전부터 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잖아. "
다음 길 모퉁이에서 삐익 하는 기적소리가 들렸다. 돌아다 보니 증기자동
차에 가득 쌓인 땅콩 너머로 검은 눈썹의 무섭게 생긴 남자가 그를 노려보
고 있었다.
그는 놀라서 거리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무척 큰 소방차가 노새가 끌지도
않는데 소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그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위
의 모든 것이 그에게 상냥한 말 따위는 이런 곳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
닫게 했다. 노면전차의 운전사가 쓸데없이 자주 벨을 울리며 지나갔다. 옥
색 블라우스를 입은 덩치 큰 여성이 쌤의 등을 팔꿈치로 쳤다. 신문팔이 소
년은 생각에 잠긴 체하며 쌤에게 바나나 껍질을 던지고 투덜거렸다.
"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본 사람 있으면 못 본 걸로 해줘
! "
한편 쌤의 숙적 칼 하크네스는 하루 일을 마치고 뻔뻔스러운 건축가가 면
도칼을 세워놓은 듯한 건물의 날카로운 모퉁이를 막 돌아서고 있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인파 속의 3야드 전방에 있는 그의 숙적 일가의 마지
막 생존자를 발견했다.
칼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순간 망설였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것이
다. 그러나 쌤 퍼웰의 날카로운 눈은 이미 칼을 발견하였다.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통행인의 물결 속에 파도가 일며 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여, 칼 아냐 ! 너를 만나서 정말 반갑다. 진짜야. "
그리고 브로드웨이와 23번지의 길 모퉁이에서 켄버랜드의 숙적들은 악수
를 나누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