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섬김의 축복을 받은 지파 - YouTube
창 49: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오늘은 잇사갈에게 주어진 축복을 섬김의 축복을 받은 지파라는 제목으로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지난번 이런 것을 보여 드렸죠? (야곱의 아들들과 축복의 순서)
오늘 여섯 번째로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잇사갈은 야곱의 아들들의 순서로는 몇 번째 아들입니까? 아홉 번째 아들입니다.
열 번째 아들인 스불론은 다섯 번째로 축복을 받았고요.
아홉 번째 아들인 잇사갈은 여섯 번째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잇사갈은 야곱의 네명의 부인가운데 어떤 사람의 아들이었습니까?
야곱의 의도와 달리 야곱의 첫 번째 부인이 된 레아의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
전체로는 아홉 번 째 아들이고요. 그러면서 축복은 여섯 번째로 받았습니다.
잇사갈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좀 특이합니다.
값을 주고 샀다 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입니다. 무엇을 주고 샀다고요?
값을 주고 샀다. 무슨 말입니까? 잇사갈의 출생과 관련된 어떤 일이 있는 듯 보이지 않습니까?
어느날 레아의 큰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서 집으로 와서 엄마 레아에게 줍니다.
홥환채가 무엇일까요?
이곳에 나오는 합환채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두다임입니다
지중해성 기후에 자라는 희귀한 다년생 야생초로 사랑과 채소가 합해진 식물 이름이라 합니다.
그 이름의 의미대로 성경 야곱시대에도 합환채는 사랑을 받고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명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사랑의 사과라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식물을 누가 얻었다고 합니까?
르우벤이 그런 것을 알고 캐 왔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것을 본 라헬이 눈에 불이 켜진 것입니다.
그래서 날 달라고 했겠죠?
그러니 언니 레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창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네가 내 남편도 빼앗고 이제는 아들이 구해온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하죠
그러니 라헬이 무슨 말을 합니까?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누구라고요? 잇사갈이다.
그래서 잇사갈의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돈 주고 샀다 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합환채 주고 그 댓가로 남편과 동침을 하였는데 잇사갈이 태어 났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잇사갈에게 야곱은 어떤 축복의 말을 합니까?
다시 보겠습니다.
창 39: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무슨 말씀일까요?
축복의 말씀 중에 두 종류의 짐승이 나옵니다.
하나는 양이고요. 다른 하나는 나귀입니다.
그런데 잇사갈을 무엇으로 비유하였습니까? 나귀로 그것도 어디에 굻어 앉은 나귀로요?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나귀
이 정도면 이해가 될 만 합니까?
성경에서 양은 누구를 상징 합니까? 첫 번째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요.
두 번째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나귀는 어떤 짐승입니까?
사람이 타고 다니는 짐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짐을 나를 때도 나귀를 이용하였죠.
그럼 교회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 한다면 어떻게 부여하면 되겠습니까?
섬기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성경에 나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번에 살펴본 유다의 축복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창 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말씀 가운데 십자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말씀 마다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 지길 소망합니다.
포도즙에 빨리로다 라는 말씀에 의미는 십자가와 관련이 있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전에 나귀가 쓰여진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마 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슨 장면인지 다 아시죠?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고난을 받으시고 왕으로 취임하시기 위하여 지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광경입니다.
무엇을 타시고 입성하셨습니까? 나귀
짐승 가운데 가장 복 받은 짐승이 이 나귀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나귀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그런 축복을 했습니까?
야곱이 자기의 아홉 번째 아들인 잇사갈에게 그런 축복을 합니다.
섬기는 자에 대한 축복이 귀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으로 왕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태워 드린 그런 봉사를 하기를 원하십니까?
야곱의 축복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창 39: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무엇사이에 꿇어 앉은 나귀라고 합니까?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았다는 표현은 무슨 표현처럼 보입니까?
예수님을 태워 드리기 위하여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양의 우리라고 합니다.
오늘날 양의 우리는 어딥니까?
삼양 목장에 가보고 싶어서 부지런히 갔는데 오후 다섯시였습니다.
오후 여섯시가 되면 출입을 통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안도의 숨을 쉬고 가까이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들어갈 수 없나 하고 있는데 영업용 택시가 오더니 몇 번 들락날락 하니까 문이 열렸습니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근데 너무 추워서 산에 오를 수가 없어서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 왔습니다.
양의 목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양들이 있다.
안식일 학교를 무슨 목장이라 합니까? 영혼의 목장. 우리 교회를 양우리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그 양우리에 무엇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까? 섬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 성도님들 교회에서 양들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나귀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 섬김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무엇을 시켜도요 감사함으로 섬길 수 있는 양의 우리 사이에 끊어 앉은 건장한 나귀들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그 광경은 주님 오시는 날 주님을 모시고 하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우리 모두 한 마리의 주님을 태우는 나귀들로서 양 우리 가운데 있을 때에는 양들을 섬기고 주님 오시는 날엔 주님을 태워 하늘 예루살렘으로 다 들어가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잇사갈은 돈 주고 샀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돈 주고 싼 존재 들입니까?
성경은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누구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 존재들이라고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잇사갈은 무슨 댓가로 태어 난 아들이라 했습니까?
합환채를 댓가로 주고 산 남편에 의하여 태어난 아들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무슨 댓가로 태어난 사람들입니까?
합환채가 진짜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효험이 있는 합환채가 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예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십자가가 새겨진 사람들을 멸하실 수가 없습니다. 아멘입니까?
사탄은 그 마음에 십자가가 새겨진 사람들을 미혹할 수가 없습니다. 아멘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서 사랑의 합환채를 만들어 주시어서 우리 가슴에 새겨 주시고 돌아 가시고 지금도 우리 가슴에 십자가를 생각나도록 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드리고 계십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바라보게 되길 바랍니다.
십자가는 우리 마음에 있는 모든 악들을 제거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증언의 말씀 중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너무 좋은 말씀이라서 다 올립니다.
치료봉사 85 “그분께서는 약점과 불행과 죄의 사슬에 매여 있는 포로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죄책감은 생명의 샘을 망쳐 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그대의 죄를 제거해 주겠다. 내가 그대에게 평안을 주겠다. 나는 나의 피로써 그대를 샀다. 그대는 나의 것이다. 나의 은혜가 그대의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그대의 죄책감을 제거해 줄 것이다.” 유혹이 그대를 엄습할 때, 근심과 걱정이 그대를 둘러쌀 때, 좌절당하고 낙심되어 절망상태에 빠지고자 할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움이 그분께서 임재하시는 밝은 빛에 의하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죄가 그대의 심령을 지배하려고 싸우고 양심을 무겁게 할 때, 구주를 바라보라. 그분의 은혜는 죄를 정복하기에 넉넉하다. 불안으로 떨릴 때,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가라. 그대 앞에 놓여 있는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를 당신의 가족으로 입적(入籍)시키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의 능력은 그대의 연약함을 도와 줄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한 걸음씩 인도하실 것이다. 그대의 손을 그분의 손에 쥐어주라. 그리하여 그분께서 그대를 인도하게 하라.
그리스도께서 멀리 떠나 계신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라. 그분께서는 언제나 가까이 계신다. 사랑스러운 그분께서는 그대 주위에 계신다. 그분께서 그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시는 분으로 알고 그분을 찾아라. 그분께서는 그대가 당신의 옷자락을 만지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교통을 통하여 당신과 동행하기를 바라신다”
무엇으로 우릴 사셨다고 합니까? 나의 피로 그대를 샀다.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내어 놓고 그분을 구하기만 하면 그분의 능력이 우리를 도와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이죠.
사람은 싸놓고도 무릅니다.
식기 새척기를 팔았습니다.
30만원 이상 주고 싼 것 같은데 몇 번 쓰지도 않고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해서 당근에 10만원에 내어 놓았습니다.
한 분이 연락이 와서 팔았습니다. 만원 깍아 달라 해서 깍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말하기를 수저통이 없다고 하면서 더 빼 달라고 합니다,
아니면 반품하겠다고 해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라헬로 그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라헬이 그날 물렀다면 누가 태어나지 못할 뻔 했습니까? 잇사갈이
그런데 라헬이 무르지 않아서 잇사갈이 태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무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사람의 힘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뇌가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무슨 말씀입니까? 무르고 싶다는 말씀이죠? 그날 무르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의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합니다.
그 기도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합환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잇사갈의 축복을 통하여 두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는 섬기는 나귀의 직분에 대하여 말씀드렸고요.
다른 하나는 값으로 싼 바된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에게 주신 나귀의 직분을 감사하면서 충성되어 섬기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피로 주고 싸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지 않게 되길 소망합니다.
무엇이든 내 생각대로 하지 마시고요.
창세기 49장 잇사갈에게 주신 축복 그 다음 말씀은 이런 말씀을 줍니다.
창 49: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고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쉰다는 표현은 안식일과 관련하여 기록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토지는 우리가 들어갈 신천신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고요,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라는 말씀은 섬김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고요
“압제 아래에서 섬기”는 표현은 우리 마음에 기록된 말씀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여 섬김에 대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해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다음에 개인적으로 함께 나누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안식일에 하늘나라를 맛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의 줄에 강권함을 이기지 못하여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섬기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충성하시는 삶으로 사셨다가 우리 믿음의 조상들 함께 일어나는 그 아침에 우리 주님을 다 뵙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