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교실] ④ 수계식 의미- 잃어버린 계체의 재획득
지계-파계 최종판단은 스스로 하는 것
참회-결의 담긴 수계 아니면 의미없어
수계식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결의는 ‘계체(戒體)’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수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고, 이후 그 사람이 불교도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그런데 수계식을 통해 얻은 계체는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다. 계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계체의 힘이 약해질 수도 혹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수계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는 앞으로 불교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가슴 벅찬 결의를 하지만, 수계식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여러 가지 유혹 앞에서 그 결의는 눈 녹듯 서서히 사라져 간다.
재가불자의 불도(佛道) 실천법을 다루는 몇몇 경전들은, 수계 후 계체의 힘이 약해지거나 아예 잃어버릴 경우를 전제로 그 후의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12세기경에 아난다(Ananda)라는 스리랑카 스님이 빨리주석서에 근거해 지었다는『우빠사까자나랑까라(UpAsakajanAlaGkAra)』라는 문헌에 의하면, 계란 한 번의 결의로 완전한 실천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수계자의 긴장감이 느슨해짐에 따라 점차 그 힘을 잃고 더럽혀져 가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계가 더럽혀졌을 때 그 더러움을 정화하고 결의를 새롭게 하여 계의 실행에 힘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즉 결의의 반복을 통해 마침내 계의 완전한 실천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를 어기거나 혹은 계를 지킬 힘, 즉 계체를 아예 잃어 버렸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빠사까자나랑까라』에 의하면, 계를 어겼을 경우에는 우선 자신이 계를 어기게 된 불선법(不善法)을 제거하는 것을 통해 계를 정화해야 한다.
불선법이란 분노, 교만, 게으름, 질투, 탐욕, 어리석음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잘못된 법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음으로써 계를 어기게 된다고 한다. ‘저 사람보다 내가 훨씬 잘 났는데’라는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교만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남의 행복에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은 질투심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에 생겨난 불선법을 응시하고 이를 제거하는 노력을 통해 항상 계체를 유지해 가야 한다. 이 때 선우(善友)와의 교제나 설법의 청문 등이 이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즉 올바른 행을 실천하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스님들의 설법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고쳐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참회(懺悔)의 실천이다. 한 순간 불선법에 사로잡혀 잘못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이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 참회하고, 나아가 그 원인이 된 불선법을 제거함으로서 앞으로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다. 이 참회의 반복을 통해 언젠가는 계가 좋은 습관이 되어 몸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다.
이상이 가장 이상적인 계체 유지의 방법이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잠시 방심하면 어느 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로 살게 된다. 예전에 계를 받은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그 때 스스로 결의하며 마음에 심었던 맹세의 힘은 온데 간 데 없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다시 수계식을 받아야 한다.’이다.
그 이유는 완전히 잃어버린 계체는 수계식을 통해서만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계를 몇 번이고 다시 받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스스로 계체를 잃어버렸다고 판단된다면 몇 번이고 다시 받아야 한다. 단, 이것은 진정한 참회에 근거한 반복이어야 한다.
계는 오로지 본인의 자발적인 결의에 근거한 것이다. 지계도 파계도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며, 자신의 몸이나 입, 그리고 마음이 만들어 낸 상황이 지계인가 파계인가의 최종 판단도 본인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진정한 참회와 결의가 담긴 수계식이 아니라면,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진지한 자기 성찰에 기반을 둔 반복이야말로 그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은 새삼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日 도쿄대 연구원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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