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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결혼식
제 딸의 결혼식이 지난 5월 7일이었으니까 벌써 두 달이 되어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진즉 이 글을 올릴려고 하였는데 제가 결혼식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거든요.
뭐 큰 일을 치루고 나면 많이 아파버리는 거 있잖아요.
꼭 몸이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냥 결혼식 후유증으로 마음이 무척 아팠던 것이죠.
모르겠어요. 그것이 딸 시집보낸 아빠의 마음일련지요.
아뭏든 그게 지금은 많이 해소가 되어 이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제 딸의 결혼식을 지난 5월 7일 우리 어린이집 잔듸밭 위에서
양가 가족과 신랑신부 친구들만 초대된 자리에서 셀프 결혼식으로 치뤘습니다.
제 딸 아이가 성년이 되어 결혼을 준비해야할 시기부터 전 제 딸의 결혼식은 우리 어린이집 잔디밭 위에서
가까운 형제들만 초대하여 치루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것은 가장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지금의 결혼식 문화가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알면 다 초대해 놓고 결혼식보다는 밥 먹는데 더 의미를 두는
결혼식장은 누가 결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도떼기 시장처럼 복잡하지요.
밥 먹는 뷔페식당은 어떤가요?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다니는 진풍경부터 제 식구를 찾을길이 없어 혼자 밥만 먹고 오는 그런 피로연장!
그게 일생일대에 한 두번 치루는 큰 행사의 모습이어야 할까요?
혹시 돈이 많아 호텔 전체를 빌러 치루는 결혼식이면 모르지만요.
결혼식이 행복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민폐를 끼치는 온상입니다.
또 결혼식 비용은 얼마나 많이 듭니까? 허례허식의 극치입니다.
저는 그런 예식장 결혼에 초대되어 갈 때마다 그런 결혼식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작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제가 20년동안 가꾸어 놓은 어린이집이 너무 아름답고 또 그 아름다운 잔디밭 위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식을 제 예쁜 딸에게 꼭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경어린이집 야외결혼식은 제가 수 년동안 꾸어온 꿈이었으니까요.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결혼 당사자인 제 딸을 비롯한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가족은 모두가 찬성하였습니다.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었던 얘 엄마도 흔쾌히 마음을 열어주어
우리 가정은 바로 제 딸의 결혼식 준비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제 신랑측 의견만 남았습니다.
어차피 결혼이란 생각이 다른 두 식구의 뜻을 하나로 모아가는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신랑될 남자친구에게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야할 거라고 저는 제 딸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지요.
생각이 다르면 왜 현경어린이집 야외결혼식이어야만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설득이 안되면 서로 가치관이 다른 만남으로 판단하여 결혼까지도 심각히 고려해보아야 한다며 은근히 압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가 1월 말 경이니까 우리가 결혼식 디데이로 잡았던 4월 말이나 5월 초에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는 결혼식장 예약 등 일반 결혼식장 결혼은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얘들이 살고 있는 천안에서 낭보가 날라왔습니다.
신랑이 될 남자 친구가 흔쾌히 동의를 하였고 그의 제주도 집에서까지 승락을 받아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심지어는 5월 7일로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상견례를 치루는 일, 그 곳에서 최종적인 결혼식 계획을 세우면 이제 꿈의 결혼식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바로 광주에서 상견례를 가졌습니다.
신랑의 아버지는 꽤 심성이 넉넉한 분이셨고 또 많은 부분이 우리와 생각이 같았습니다.
우리는 2017년 5월 7일 정오 현경어린이집 정원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기로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었네요.
당연히 양가 형제분들과 신랑신부 친구들만이 초청 대상이었고 결혼식장 데코레이션이나 식순
그리고 피로연 등 모든것을 우리 스스로 준비 하기로 하고 그 책임은 제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결혼식 총연출자가 된 것이죠.
저는 가장 먼저 결혼식의 이름을 '꿈의 결혼식'으로 정했습니다.
정말 제가 꿈의 결혼식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2월 중순 결혼 일정이 확정되고 제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어린이집 주변의 환경을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앞 텃밭을 유채밭으로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마치 어린이집 가까운 곳에 유채를 많이 심어 놓은 곳이 있어 그 곳의 유채 모종을 뽑아와 우리 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유채꽃은 겨울작물이라 4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유채가 제대로 성장을 하려면
추위가 물러가는 2월 말에서 늦어도 3월 초까지는 유채 모종 옮겨 심는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제가 유채꽃밭 조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면 얘 엄마는 어린이집 주변에 꽃양귀비 모종을 심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마치 함평 엑스포 공원에 꽃양귀비 모종이 많이 있어 그 것을 얻어다 어린이집 주변 곳곳에 옮겨 심은 것이죠.
5월 1일 딸은 직장까지 그만 두고 결혼식 준비를 위해 무안으로 내려왔습니다.
한 달정도의 신혼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약국에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 두고 다시 직장을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신랑될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1일(노동절), 3일(석가탄신일), 5일(어린이날), 6일(토요일) 쉬는 날이 많은 때야말로
결혼식 준비의 최적기라고 판단하여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어린이집 정원의 풀 뽑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드레스 고르는 일까지 결혼식 준비를 하였습니다.
딸이 무안으로 내려 오면서부터는 꿈의 결혼식 총연출은 그가 하도록 했구요.
모든 준비를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데 서로 각자의 생각이 달라 자칫 잘못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결혼 당사자인 딸이 총연출을 맡아야 한다는 우리 아들의 제안을 따른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말 뿐이었고 모든 것은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의 큰 목소리가 상황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5월 5일부터는 신랑될 친구와 그 여동생까지 합류하였습니다.
5일,6일 황금연휴는 결혼식장 데코레이션을 하는데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나무로 결혼 게이트를 만들고 광주 화홰 도매시장에서 꽃을 사와 꽃장식을 하고
원형 탁자와 의자를 빌려 오고 하늘에는 하얀 천으로 휘장을 만들어 펄럭이게 하고
꿈의 결혼식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호텔 결혼식처럼 결혼식장과 피로연장을 한 곳(원형탁자에서 결혼식도 보고 피로연도 하는)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먹는 것보다 결혼식을 더 중시하는 딸의 의견을 좇아 두 곳을 분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번 결혼식 준비과정에서 가장 힘들었고 준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피로연을 어떻게 준비 하느냐였습니다.
빵이나 떡 그리고 술이나 차는 얼마든지 준비를 할 수 있는데 메인메뉴인 점심식사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결혼식장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은 첫째 야외뷔페를 부르는 방법,
둘째 필요한 음식만 무안의 어느 식당에 전체를 맡기는 방법,
셋째는 우리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다들 결혼식장에 가서 뷔페음식 한번쯤 먹어봤을텐데 흡족하게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먹잘것 없이 값만 비싼 게 뷔페음식 아닌가요?
특히 갈비탕 한 그릇이나 낙지초무침 비빔밥 한 그릇씩 먹었으면 좋겠다는 제 딸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
일단 첫째 안인 뷔페음식은 가장 먼저 재외되었습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안을 두고 계속 고민해오다가 마지막 자체적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메인 메뉴는 생고기 비빔밥과 낙지초무침 비빔밥, 저의 강력한 주장이 관철되었죠.
결혼식 전날 모이기로 했던 시집간 누나,동생들,그리고 형수,제수씨들에게 음식준비를 하도록 하겠다는 저의 심뽀였습니다.
사실 결혼식 전날까지도 어떻게 당일 음식이 준비될지가 걱정이 되어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웨딩포토 사진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어 놓았습니다.
웨딩포토는 제주도에서 촬영을 하였는데 신랑 아버지께서 직접 찍어주셨습니다.
신랑 아버지는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고 있으신 분인데 셀프 결혼식의 진수를 보여주신거죠.
처음에는 프로 사진사도 아니고 또 뽀뽀를 하는 얘들의 사진까지도 직접 찍어야 하는 경우를 예상하여
극구 사양하였는데 셀프 결혼식이라는 아이들의 뜻을 받아드렸다네요.
2017년 5월 7일 꿈의 결혼식 날이 밝았습니다.
전 날 피로연 음식 문제로 잠을 설쳤던 기억과는 달리 결혼식 준비에 상기되어 있는 저의 모습입니다.
정말 꿈의 결혼식이 이루어지기는 할까요?
계절의 여왕 5월의 날씨는 너무나 쾌청하고 5월의 신부와 너무 어울리는 듯 보였습니다.
신부대기실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는 여느 결혼식과는 달리 우리 5월의 신부는 밖에서 얼굴 메이크업도 만지고
축하하러온 하객들을 직접 맞이하기도 하고 축하객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정말 행복한 모습이네요.
축의함 대신 방명록을 직접 작성하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비치해놓고 직접 현장에서 자기 사진을 찍어 글과 함께 방명록에 올리는 것이죠.
이 방명록 작성대는 연못 한켠에 만들어 놓은 스넥 빠와 함께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었는데
결혼식 총연출자인 우리 신부가 제안한 아이디어입니다.
스넥 빠에는 더치커피, 빵, 떡, 생맥주 등을 비치해 놓고 결혼식 전에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골 구석까지 달려온 하객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도록 하였습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식 식순은 요즘 흔히 유행하는 주례 없는 결혼식의 모습을 본땄는데 야외 결혼식인 만큼 약간 독특하게 연출을 하였습니다.
순서는 신랑입장, 신부입장, 신랑신부 맞절, 혼인서약, 성혼선언, 덕담 및 축사, 축가, 신부에게 축의금 전달, 퇴장
등으로 크게 정해 놓고 세부적으로는 보통 결혼식과는 조금 다르게 연출을 한 것이죠.
잔듸밭 야외 결혼식에 걸맞게 현악 4중주를 배치하였습니다.
흥겨운 분위기에 걸맞게 밴드를 배치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역시 결혼식 분위기는 현악 4중주가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신랑이 입장을 합니다.
보통 결혼식에서는 신랑 혼자 입장을 하는데 부모님과 함께 입장을 하는 것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신랑이 입장을 한 후 다시 뒤로 돌아와 신부가 입장하는 길 위에 꽃을 뿌려 꽃길을 만들어주는 이벤트입니다.
신랑이 신부의 앞길에 꽃길만 있게 해주겠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당연히 있었겠죠.
처음에는 신랑이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동시에 꽃을 뿌리며 입장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신랑 아버지께서 너무 어색하다고 하시는 바람에 신랑만이 다시 뒤돌아와 꽃을 뿌리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훨씬 빛이 나는 완전히 대박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신랑이 부모님과 함께 입장을 하였으니 신부도 당연히 부모님과 함께 입장을 하였죠.
제 딸은 신랑이 깔아 놓은 꽃길을 밟으며 저의 손을 꼭 잡고 입장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만 딸을 데리고 입장하는 과거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것이죠.
신랑신부가 혼인서약을 하는 순서입니다.
저는 이 결혼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혼인서약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순서는 심지어 축가나 주례사까지도 형식적이고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 혼인서약 만큼은 신랑신부 자기들의 진실이 담겨 있는 내용과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신랑신부가 따로따로
자기가 서약할 부분을 스스로 작성하고 함께 서약할 부분만 공동으로 상의하여 작성하여 낭독을 하도록 주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결혼식 전날 저녁 인터넷을 통해 부랴부랴 다운 받아 서약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결혼식 준비를 손수 스스로 하였음에도 아무리 내용이 같을지라도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는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옥에 티가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신랑 아버지께서 성혼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들이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이제 저의 차례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주례사를 대신한 덕담을 하는 순서입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틈틈히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해보고 또 메모까지도 하면서 나름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내용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에 둔 것은 제가 울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는 것이 안좋게 보이고 또 싫어서가 아니라 한번 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억억거리며 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에도 제 딸만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제 딸이 대학을 다닐 때 한 1년동안 캐나다에 어학연수차 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눈물 때문에 가끔씩 오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고 딸이 만들어 놓은 사이월드의 배경음악인 '다행이다'라는 노래만 들어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또 딸이 천안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광주에 내려와 올라가면 터미널로 데려다 준 적이 많았는데 차에서 내려 바리바리 무거운 짐을 싸들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만 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요.
그러니 그 눈물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어쩌고 저쩌고 딸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리고 이 꿈의 결혼식에 대서만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이 결혼식 이름을 꿈의 결혼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제가 20년동안 가꾸어 온 이 어린이집에서 제 딸 결혼식을 하는 것이 제가 꾸어온 꿈이었으니까,
꿈이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꾸는 것이다.
너희들도 매일 이 꿈 저 꿈 꿈을 꾸면서 살아라.
마지막으로 이 꿈의 결혼식에 동의해주신 신랑 부모님과 꿈과 같은 결혼식이기는 하지만
모든걸 우리가 직접 준비해야하는 힘든 결혼식인데 기꺼히 동참해준 얘 엄마와 집식구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요약하면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비교적 웃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눈물이 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 작전이 성공을 했네요.
신랑측 축사를 해주신 신랑의 작은아버지
저는 두 분의 형님이 계십니다.
사진의 앞 쪽에 두루마기를 입고 계신 분이 큰 형님이시고 양복을 입고 일어서시는 분이 작은 형님이십니다.
신부측 축사를 하는 순서에 제가 꼭 이 사진을 첨부시킨 것은 사진만 보면 알 수 없는 무슨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신부측 축사를 하실 분으로 신부측 큰아버지라고만 맨트를 하였기 때문에 서로 양보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작은 큰아버지께서 축사를 하시기로 정해져 있었지만 서로간에 양보하는 모습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고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였습니다.
신부 큰아버지의 축사하시는 모습
신랑 친구의 축사
신부 친구의 축사
신부의 동생이자 제 아들의 축가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하는 인사를 마치고 서로가 껴안는 모습
저는 제 딸을 어릴 때 이후 한 번도 안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려고 하였습니다.
북받치는 눈물을 꾹 참았습니다.
신랑과 신랑아버지가 포옹하는 모습
이제 마지막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시간이 다가왔네요.
축의금을 신부의 웨딩 드레스로 만든 복주머니에 넣는 시간인데 이 아이디어는 얘 엄마가 영화 '대부'에서 따온 것입니다.
신부에게 우리들의 온갖 복을 다 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신랑측, 신부측, 그리고 친구들의 축의금도 모두 그 복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 순서는 신랑의 부모님과도 상의한 것인데
그 날 들어온 모든 축의금은 신랑신부의 신혼여행비로 모두 주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부부의 힘찬 출발을 끝으로 꿈의 결혼식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고 걱정을 많이 했던 피로연 시간이 되엇습니다.
처음 결혼식 계획을 세울 때는 초청인원이 우리집 식구 50명, 신랑측 30명(신랑이 제주도가 집이라 이동이 불편한 관계로),
그리고 신랑신부 친구들 20명 이렇게 100명을 계획하였는데 중간에 신랑측이 20명에서 50명으로,
친구들이 20명에서 50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합계 150명으로 50%가 증가되는 계획으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수가 참여하여 준비한 음식이 부족할까 걱정을 하였는데
우리 큰 형수님들이 직접 반찬을 배식하는 등 알뜰한 식단을 운영하여 충분히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네요.
점심의 주 메뉴인 생고기 비빔밥과 낙지초무침 비빔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두들 만족하였다고 다들 이야기를 하였다네요.
특히 낙지초무침은 무안 지역의 향토 음식이기 때문에 거의 외지에서 찾아와 주신(제주도에서 오신 신랑측 하객)
하객들에게는 더 없이 귀중한 식단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신랑어머님께서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온 오메기떡이네요.
꿈의 결혼식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꿈을 꿀 수 없는 꿈의 결혼식은 영원히 막을 내렸습니다.
한 3~4개월 동안 저의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다 바치게 했던 꿈의 결혼식은 이제 영원히 제 곁을 떠났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저의 영원한 사랑 5월의 신부를 탄생시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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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수님 게이트라고 불렀던 결혼 게이트입니다.
이 예수님 게이트는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오랜동안 어린이집 잔듸밭 한 켠에 남아 있었네요.
꿈의 결혼식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이걸 철거하면 깊은 휴유증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철거하면서 했던 생각입니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신랑이 지나가는길에 어린이집에서 결혼식을 한다길래 멋지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음날 어린이집을 가보니 멋진천과 풍선이 있어서 들어가는길이 행복했답니다~~^^
아빠 기억력 진짜 좋으시네요 !! 결혼식 다시 한번 한 느낌이었어요 ㅋㅋ 혼인서약서는 인터넷이 아니고 지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너무 행복한 결혼식이었어요.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멋진결혼식이었네요^^ 정말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네요~ 이런생각을 다하시고 멋지시네요^^
와우 정말멋진 결혼식이네요..
글을보는저도 감동이네요 이렇게 딸을생각하는 아버지의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자녀분은 참행복하시겠어요^^
늦었지만축하드립니다
아침에 청소하다말고 댓글을 다네요^^
원장님은 정말 멋있는 아빠 참 따뜻한분 이신거같아요ㅋ
우리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 자녀가 결혼할때면 원장님과 같은 이런 마음일까
내가 결혼할때 우리아빠는 이런마음 이셨을까
이런생각에 울컥 하기도 하고
애들을 사랑해주시는 마음은 괜히 나오는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결혼식이라 정말정말 뜻 깊으실거 같아요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말 꿈같은 멋진 결혼식이였군요
오월의 푸르른 정원과 노란 유채꽃 새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와 신랑이 눈부시게 아름답네요
두목님과 딸이 포옹하는 사진에 왜 제가 울컥하는지~~~^^
늦었지만 결혼식 축하드려요
항상 아이들 생각만하시는 두목님 손주보시면 얼마나 예뻐하실지 상상이가요~~~ㅎㅎ
요즘 글이 뜸하셔서 무슨일인가 궁굼했는데 이쁜딸 사위에게 뺏기고 허전하셨군요^^
두목님 힘내시고 우리 현경친구들과 재미난 여름캠프로 더위를 날려보내시게요!!!
내가 카페를 이리 안들어 왔었나~~지금 봤네요~~참 멋지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지요~~
그 싱그럽던 5월이 어느새 가고 여름의 한가운데에 와 있네요~~묘하고 아리숭한 상실감에
시달릴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론 안정된 편안함이 스밀수도 있겠네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기분좋은 일들이 불쑥불쑥 생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