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기찻길 1번지 - 이상옥, 현대문예 2016 구시월호 88호 275-277p
“순천 가는 열차 몇 시에 있어요?” 부랴부랴 보온병에 녹차를 붓고 효천역을 향한다. 에어컨이 시원한 객차에는 승객이 별로 없다. 역을 벗어나 조금 가니 키 큰 소나무 숲 사이를 기차가 달린다. “야! 광주 인근에도 이런 기찻길이 있네?” 뜻밖의 아름다운 경치에 눈동자가 즐겁다.
숲을 지나자 가뭄에 비쩍 마른 옥수수가 보이고 다랑논에 벼들이 땡볕에 지쳤는지 때깔이 좋지 않다. 철길과 들길이 나란히 있는 길을 소를 실은 화물차가 한참을 기차와 내기하며 달린다.
산봉우리가 앵무새를 닮았다는 앵남역을 지나 기차는 이산 저산 사이를 곡예 하듯 구물거린다. 야트막한 산비탈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복숭아가 종이고깔을 쓰고 반긴다. 큰 당산나무에 플라스틱 의자를 그네처럼 매달아 할머니가 손자의 등을 밀어 주는 모습이 아름답게 스친다.
화순을 지나니 배롱나무꽃이 장관을 이룬다. 정자문화가 발달한 담양 명옥헌에 가면 휘늘어진 백일홍이 군락을 이루는데 그 꽃 색깔이 짙은 입술연지색이어서 정원에는 심지 않는다 한다.
“오메, 무궁화도 많이 피었네.”
능주를 향하는 기차는 무궁화, 나팔꽃, 봉숭아꽃, 쑥부쟁이, 금계꽃이 피어 있는 마을을 지나며 속력을 낸다. 능주 팔경의 하나인 영벽정이 보인다. 그 푸른 강물에 솔 산이 녹아 물결에 굼실댄다.
“야! 여기가 어디야? 경치 정말 끝내주네” 반대편에 앉은 젊은 여행객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정암 조광조의 귀양 살던 집과 적려유허비(謫廬遺墟碑)가 멀리 보인다.
이양을 지나 산줄기를 넘으면 쌍봉사가 있다. 영벽정, 한천, 송석정을 지나며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낭만이 없는 사람이다. 지나는 역마다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똑같은 역사가 있다. 철마는 석탄차, 화목차, 디젤차, 전동차, 고속열차로 바뀌었지만 승객이 타고 내리는 역사는 세월을 초월하고 사는 것 같다.
드들강 상류인 지석천과 동무하며 달리는 화순의 기찻길은 남도에서 자연미가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다. 시인 고은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놀라운 일이 여기 있다.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은 다만 석양머리 적막강산이다. 그런데 유홍준이 성큼성큼 그곳에 가면 몇 천 년 동안 잠든 보물들이 깨어 나 찬란한 잔치를 베풀기 시작하며 그 사물은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 피운다.”라고 했다.
순천 가는 기찻길을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고, 남도 기찻길 1번지를 전국에 널리 알렸으면 싶다.
춘양과 입교를 지나니 크고 작은 골짜기, 아름다운 정자와 농가 마을을 뒤로 넓은 들이 펼쳐진다.
기찻길 차창 풍광이 한마디로 행복하다. 기차가 마을을 지나면 집안이 훤히 보인다. 세 칸집, 기역자집, 날개집, 벽돌집, 슬레이트집, 까대기집, 오두막도 보이고 마당 멀리 뒷간이 있는 집, 흙으로 쌓은 토담이 있고 흙 사이에 돌을 넣은 죽담도 있다. 어떤 집은 오줌장군으로 썼던 나무통도 보이고 곰방메도 보이고 고무래, 갈퀴도 보인다.
기차가 달리니 밭이랑에서 기차를 쳐다보며 잠시 쉬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어느 밭에는 허수아비 대신 큰곰 인형을 세워 놓은 곳도 있다. 광곡천이 흐른다. 기차가 철교를 지나며 달그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재미있다.
다리 아래 물이 흐르니 구경거리가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두 아낙이 물속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 잡고 있다. 아마 다슬기나 우렁이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육자배기 땅 보성역에서 잠시 쉰 기차는 용문석으로 알려진 조성을 지나니 멀리 큰 바다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식량을 조달하였다는 득량만이다. 요새는 공룡 알 화석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득량만을 낀 예당 간척지 들녘이 꽤 넓다. 벌교를 거쳐 별량 역을 지나는데 엄청 많은 참새 떼가 하늘에서 연을 탄다. 오랜만에 보는 멋진 풍경이다. 빨간 석류가 주렁주렁 가을을 부른다.
어느덧 기차는 순천역에 이르렀다. 못내 아쉽기만 하여 다시 전라선 열차표를 샀다. 꿈결 속에 그리던 고향을 찾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섬진강과 지리산이 함께하는 전라선 기찻길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밀려오는 풍경에 심취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새우더라도 어디론가 끝없이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남도 기찻길 1번지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