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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앙망하라
이사야 40:27~31
찬송가 354장(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오늘 본문 말씀은 불신앙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노예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어 그들을 고토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증거한 후에도 여전히 불신앙과 좌절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의 백성들을 설득하며 그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삶의 여러 고단함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며 용기를 내어 인생 길을 당당하게 맞서 싸워 전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큰 교훈과 격려를 주며 승리하는 삶을 위한 복된 지침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신앙적 지침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적 침체와 삶의 문제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27절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불평섞인 말이 나와 있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내 길’은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생 길을 말합니다. ‘송사’는 인생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문제들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인데도 자기의 인생길에 대하여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고 우리의 고민과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평은 사실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인생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그들을 복된 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이 고민하며 해결하기 원하는 문제들을 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알되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렇게 원망 불평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안에 하나님을 제한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일개 우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잡신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나님을 무력하고 무능한 하나님, 자기 삶에 아무런 힘도 구사하지 못하는 하나님, 저 구만리 장천 위에 계시면서 자기 백성들의 삶에 대하여서는 일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하나님으로 오혀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무지요 오해와 편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렇게 강하게 하나님을 제대로 알라고 요청합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를 그 백성들에게 바르게 알기를 강청합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하나님의 참된 존재와 본성은 먼저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 때에도 함께하신 하나님이시요 출애굽할 때 모세와 함께하시어 애굽 왕 바로의 군대를 물리치신 강력한 그 하나님이시며,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변함없는 하나님이시요 앞으로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그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지금은 그런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아니계시다는 오해와 불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믿는 하나님은 사도들과 함께하신 그 능력의 하나님이시요 초대 교회 시대에 역사하셨던 그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일점 일획이 변함없이 영원하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변덕스럽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하나님이시고 언약을 하셨다가도 이유 없이 취소하거나 변경하거나 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요 자기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입니다. 말라기 3:6 말씀에 이르기를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리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그 성품 덕분에 우리를 향하신 그의 구원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 불변성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가집시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그의 입술과 손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모든 지상의 동물들과 초목들과 곤충들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사람들을 다 하나님께서 그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지으셨고 그가 그 모든 것을 다 기르시고 먹이십니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세우는 나라들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십니다. 그가 원하는 자를 왕으로 세우기도 하시고 그가 미워하시면 얼마든지 아무리 강력한 왕일지라도 순식간에 폐하기도 하십니다.
이렇듯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실진대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있을까요? 느부갓네살도 하루 아침에 미치게도 하고 그 큰 도성 바벨론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파사의 군대에 의하여 순식간에 함락되게 하는 일이 하나님으로서는 너무나 쉬운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한 임금의 마음을 주장하시어 포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고토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라는 조서를 내리는 일도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후일에 페르시아의 창설자 키루스 왕 곧 성경에서 예고하신 바 고레스에 의하여 실제로 그렇게 유대인 해방령이 선포되어 고토로 유대인 포로들이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으니, 이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음을 믿고 아무리 크고 험한 문제라도 그에게 아뢰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적 능력이 우리 삶에 역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신 분이며 능력과 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28절 말씀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6일 동안에 다 창조하셨는데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일하심을 즐거워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일하실 때에 증거하기를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하면서 늘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에게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자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십니다. 명철이 모자라고 지혜가 부족해서 해결하지 못할 난제는 없습니다. 우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시다가 너무 힘들어서 난 못하겠다고 하고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때로는 시간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를 기다리시기도 하시지만, 무능해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결코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분별력이 날카로우시고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계시고 그것을 풀어가야 하는 방법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으로서 하지 못하실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와 같이 크고 위대하시며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지혜로우시고 피곤하지 않으시고 지치지 아니하시며 위대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신 자들이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힘과 지혜를 깊이 알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뚜렷이 잘 안다면 우리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고 아무리 악한 원수를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음을 알기에 조금도 주저없이 우리 문제를 하나님께 척척 내놓고 담대히 맡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다니엘서 11:32 말씀에 이르기를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아는 만큼 우리들은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각종 문제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아는 데 힘을 힘씁시다. 호세아 6:6 말씀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알아가며 순종함으로 알아갑시다. 그의 계명과 진리를 사랑하며 즐거워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갑시다. 그리할 때에 우리들은 아는 일에 점점 진보하고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들은 이런 저런 세상 환난이 우리를 흔들거나, 재물과 세상 권세가 우리를 유혹하거나, 이단 사이비와 마귀 시험이 우리를 미혹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분명한 지식으로 인하여 결코 요동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날마다 자라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인간의 무력함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지혜 중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무능함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에 이르기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년도 피곤하게 되고 장정도 넘어질 수 있고 아예 쓰러져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계속 무리하면 결국은 쓰러집니다. 병이 생깁니다. 정신적인 피로로 인하여 결국은 무너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지혜도 한계가 있고 경험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경험이 전혀 감당하지 못하는 뜻밖의 일들도 세상에는 많이 일어납니다. 코로나 사태도 그러하고 기후 재앙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 금요일 2.3.미국의 북동부 해안 주인 뉴햄프셔에 돌풍이 불어서 무려 –77도의 한파가 불어닥쳤다고 합니다. 미국의 동부지역은 대서양에 접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춥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북극의 중심이 내려온 수준입니다. 이런 기후에 오분만 노출되면 그냥 동상 걸리는 것입니다. 눈이 2미터씩 내리는 것이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도 한계가 있고 인간의 힘도 한계가 있고 인간의 경험도 한계가 있고 인간 공동체인 사회와 국가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바로 지극히 지혜롭고 결코 지치지 않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겠습니다.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대신에 영원하신 하나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결코 피곤하지 않으시고 지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자원으로 삼고자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나님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앙망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우러러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단어를 살펴보면, ‘콰봐’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견고한 기대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세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심판과 고난의 시절에도 주의 백성들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계속하여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사야 26:8 말씀에서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25 이하에서도 이르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고난 중에도 원망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억하시고 도와주시고 이 환난을 변하여 유익하게 해주시고 자기 영혼을 온전히 다듬어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냥 두지 못합니다.
이사야 49:23 말씀에는 이르기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고, 시편 37:9 말씀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편 37:9,10)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막아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평탄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의 축복을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갈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이요”
독수리 중에 루펠 대머리 독수리는 산소가 지극히 희박한 비행기가 다니는 고도 만 미터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영적으로 지극히 높은 시야를 갖게 됩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안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생각의 폭과 경험을 넓혀줍니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은 데 올라가서 멀리까지 내려다 보는 시야를 갖게 해줍니다.
야곱의 열한째 아들 요셉이 그러합니다. 요셉이 아버지 품안에 있을 때에는 자기 옷과 밥그릇만 챙겼지만, 아버지 품을 강제로 떠나 이방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앙망하며 살았더니 나중에는 온 세상을 품고 기근에 빠진 온 세상을 구휼하며, 양식을 구하러 온 자기 아버지의 형제들을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가문을 통하여 이루어가실 놀라운 비전을 발견하고 그 형제들을 봉양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습니까? 독수리처럼 높은 데 오르는 축복은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달음박질하는 힘을 주십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역경이나 환난을 당해도 이겨내는 힘을 얻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추진력을 얻습니다. 그러한 일을 만나더라도 지치지 않고 잘 해결해냅니다. 옛날에는 문제만 만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소진되곤 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맡기고 기도하니 문제들을 주님께서 풀어주시면서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우리어주십니다.
또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걸어갈 때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걸어간다는 것은 삶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때에도 늘 주님을 앙망하므로 성령께서 동행해주고 평강을 주십니다. 삶의 기쁨과 자유를 주십니다. 그래서 피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앙망합시다.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려고 몸부림치지 맙시다. 하나님을 우리 자원으로 삼고 그에게 우리 믿음의 추를 두고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인내하며 그가 일하실 것을 기도로써 기다립시다. 그리할진대 지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고 우리를 즐겨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을 다 동원하여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낙심하거나 염려하거나 하나님께서 나를 몰라라 하신다고 원망하는 자가 하나도 없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기다립시다. 환난 중에라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립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수리같이 우리를 높이 올려주실 것이요 달음박질을 힘차게 해주실 것이요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