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양교육전공 3차 원주현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불확실성’으로 피운 촛불 하나, 그리고-
직관경험담을 쓰기에 앞서 홍영일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기가 시작할 당시의 저는 합리와 직관의 개념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합리적 삶에 염증을 느끼고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학기 초 MBTI 성격분석에서 합리와 직관의 비율이 53% 대 47%로 드러난 것처럼 말이죠. 어떤 길이 더 합리적인가- 고민하며 살던 제가 주어진 틀과 선택지 밖의 세상에 눈을 뜨던 중에 교수님의 수업을 접하게 된 건 행운이었습니다.
1년쯤 전부터 제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아. 하자-라고 생각하고 그냥 하면 되는 거더라.” 합리와 직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나의 단어로 표현한 가장 정확한 합리와 직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무언가 시작하는데 큰 용기와 생각들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명분이 필요했고 이 선택이 동반하게 될 결과부터 예상하지 않으면 불안했죠. 합리적인 시간들을 거치고 나면 대부분의 선택은 'Do nothing.' 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끌리는 도전적인 것들은 항상 무질서하고 불안했으며, 시간적, 금전적인 낭비는 합리적인 사고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지내던 20대 중반 끝자락에서 알 수 없는 회의감에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라는 질문을 달고 살던 중에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죠. 학창시절부터 근 10년을 돌아보니, 둘러싼 상황들만 바뀐 채 스스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겁니다. 중학교시절 방송부, 고등학교시절 댄스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머뭇대다가 여러 핑계로 기회를 놓아버렸던 그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였습니다. 뭐든(정말 사소한 뭐든) 뛰어들지 못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을 가장 후회하고 있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습니다.
이 계기로 직관으로 돌아서는 데는 준비할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합리처럼 재고 따지는 과정 없이 ‘그냥’ 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저의 직관생활은 몸을 움직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같이 킥복싱을 배워보겠냐고 물었어요. 제안을 듣자 평소와 다름없이 킥복싱 영상을 찾아보고 상담을 받고, 필요한 금액이나 이득을 따져보다가, 때려치우고 생각했습니다. ‘아 됐고, 한 번 해보지 뭐!’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체육관에서 뛰고, 기술들을 배워서 발등에 멍이 들게 샌드백을 치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습니다. 처음으로 땀 흘리는 게 즐겁다고 느꼈습니다. 다음 달 적금이나 시간적인 여유를 미리 걱정하고 고민했다면 놓쳤을 시간이었죠.
킥복싱을 배우던 동안 부족한 유연성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두 달 동안 자전거를 타고 새벽요가를 다니던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 다닐 때나 여유가 있으니 했던 거지- 라고 생각해왔는데 찾아보니 퇴근 후 다닐만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퇴근하면 약속도 많을 테고 빠지게 되다가 해이해지면 어떡하지, 고민했어야 할 시간은 직관으로 아낄 수 있었고. 킥복싱 뒤 한 달은 요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요가 수업의 한 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근력이 많이 부족한 걸 느끼고 이번엔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3때부터 헬스장을 몇 번 등록해보았고,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등록할 때 굳은 의지가 한 달을 넘지 못했기에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없다고 다짐했던 게 헬스장이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에 그냥 상담만 받아볼까 싶어서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갔고, 10분 만에 6개월분을 결제했습니다. 영업스킬에 현혹된 것도, 충동에 가까운 순간적인 의욕도 아닌 ‘직관’이었습니다.
상 담 받으면서 느낀 대로 다른 헬스장과는 다르게 제대로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고, 마침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한 달 만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죠. 스스로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1년 넘게 꾸준한 운동을 하게 만든 불씨 같은 직관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자 합리보다 직관의 힘을 더 믿게 되는 계기도 되었죠.
정말, ‘그냥’ 하면 되는 거더라구요.
스스로의 판단을 믿기 시작하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절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그 날’ 하루를 있게 한 것도 직관이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3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소한 계기로 출근길에 부동산 어플을 켰고, 독립을 꿈꾸던 2년 동안 보았던 수십 개의 매물 중에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조건의 매물을 발견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바로 연락을 했죠. 그 날 점심시간에 부동산을 방문해서 직접 집을 보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내게 독립의 기회가 올까? 이미 저보다 먼저 집을 보고 계약 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집을 보고 두 시간 뒤인 오후 3시에 가계약금을 넣었습니다. 인생 첫 독립을 단 반나절 만에 결정지었죠. 모아놓은 전세금도 없었고, 부동산 계약은 해 본 적도 없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던 상황에서. 아주, 아주 무모하게.
전 날까지도 상상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며 세웠던 그 해 계획들은 그 날 하루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은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바꾼 반나절”이라고 말입니다. 전세금은 인생 첫 대출을 받게 했고(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었죠.), 열심히 갚게 했고, 부동산 계약은 생각보다 무섭고 복잡한 일이 아니었고(이 또한 스스로 대견했어요.), 반대하시던 부모님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물론 여러 번 힘든 적도 있었지만 한 순간도 독립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은 걸 보면 저에게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기회가 찾아 왔을 때 계획표를 펼쳐놓고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면, 불확실성을 즐기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머물러있던 바닥을 박차고 한 계단씩 오를 수 있던 건 신중함과 합리성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온 순간에 필요한 것은 직관력이었고 1년 전 세웠던 계획 속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은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힘 또한 직관에서 나왔습니다.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근 1년 반의 경험들이 순간의 충동도, 합리를 거친 빠른 결단력도 아닌 ‘직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직관이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기에 전보다 더 주저하지 않는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요즘 푹 빠져있는 라이딩입니다. 대학생 때 알바비를 모아서 로드자전거를 사서 탈만큼 자전거를 좋아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더 중요한, 아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죠. 올 해는 날이 풀리자마자 다른 건 접어두고 자전거를 샀습니다. 제대로 배우면서 타고 싶어서 처음으로 자전거 동호회도 가입했죠. 난생 처음보는 낯선 사람들을 잔뜩 만나는 불편함도 겪어보고 단체 라이딩의 즐거움과 허벅지가 터져라 달리는 쾌감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불편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생각지 못했던 직관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즐겁게 주말을 즐기던 중에 친구가 가까운 곳으로 캠핑을 가지 않겠냐고 물었고, 캠핑장비도 하나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생각에 바로 대답을 했습니다. 1년 전부터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독립자금을 이유로 마음을 접고 살았었는데, 또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직접 마주한 노을캠핑장은 사진보다, 상상보다 훨씬 멋졌고 역시나 장비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직관이 없었다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또 기회를 놓쳤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경험이 많지 않았던 20대였습니다. 신중했기에 항상 망설였던 게 큰 이유였죠. 모든 순간의 선택들이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이제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Why?”가 아닌 “Why not?”을 자문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중학교 때 한참 빠져있던 god의 ‘촛불하나’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
너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아, 내게 있는 건 성냥 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무얼 하나.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
성공인지 실패인지 미리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내리는 결정이 최종적으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불확실하죠. 그 불확실한 직관의 촛불을 일단, 하나 켜보니 둘, 셋, 넷. 새로운 초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이 이상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는 절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요. 지금도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1년, 2년, 5년치 미래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또렷이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열심히 고민한 계획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걸 더 즐깁니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계속 수정할수록 더 완성도가 높아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죠.
앞으로의 인생도, 수많은 계획을 그려낸 지금까지의 이면지들처럼 계속해서 변화할겁니다.
물론, 직관은 절대 꺼뜨리지 않은 채로 말이죠.
첫댓글 첫 문장을 읽고 두번째 문장을 읽으니 세번째 문장이 읽혀지더라구요.
그렇게 순식간에 몰입해서 읽어 내려가는데, GOD의 촛불하나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더니 눈물이 나더라구요.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