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길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고택 산책길
성북동은 요즘 뜨는 동네다. 북악산의 품에 기대고 서울한양도성이 흐르는 빼어난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무소유의 정신이 깃든 길상사, 소설가 이태준이 작품을 썼던 수연산방, 만해 한용운이 머물던 심우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한 최순우 옛집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법정스님 무소유 정신이 깃든 길상사
성북동 고택산책길은 성북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성북동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길이지만, 가까운 전철역인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아기자기한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먹거리를 팔고 있다. 길 건너편으로 유명한 나폴레옹과자점도 보인다. 10분쯤 올라가면 성북동의 명물인 올레국수, 구포국수 등 맛집들이 나온다. 여기서 좀 더 가면 길이 왼쪽으로 꺾이면서 선잠단지 앞 삼거리에 이른다.
홍살문이 보이는 곳이 선잠단이다. 선잠단은 조선시대 제9대 임금인 성종 때 '뽕나무가 잘 크고 살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해달라'는 기원을 드리기 위해 혜회문 밖에 세운 제단이다. 나라에서는 일반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 왕비가 손수 뽕잎을 따고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는 행사인 '침잠례'를 열기도 했다. 선잠단은 1908년 사직단으로 옮겨 제사를 지내면서 폐허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개인 소유로 넘어갔다. 현재는 이 자리에 조그마한 터만 남았고, 들어갈 수도 없어 아쉽다.
길상사 진영각에는 법정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선잠터를 끼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해 선잠로를 따라 구불구불 따르면 성북동 성당을 지나 길상사를 만난다. 길상사는 사연 많은 도심의 절이다. 본래 1980년대 말까지 '대원각'이란 이름의 요정이었다. 요정의 주인이 기생 출신 김영한이다. 그는 당대 최고 인기 시인 백석과 러브스토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백석은 김영한을 자야로 불렀고, 그를 생각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썼다고 한다.
길상사는 연등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해가 지면 나무에 걸린 연등은 별처럼 반짝인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알록달록 예쁜 연등들이 눈에 띈다.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길상사는 연등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특히 나무 위에 걸어놓은 연등은 해가 지면서 별처럼 반짝인다. 법당 앞에는 길상사의 상징인 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이 불상의 생김새는 마치 성모마리아상과 비슷하다. 법정스님의 권유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씨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맑은 물이 담긴 정병을 들었고, 오른손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고 있다.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다르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고 같은 울타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길상사에는 구석구석 수행을 할 수 있는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많다. 천천히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계곡 옆 벤치에 앉아 잠시 고요함을 즐기기 좋다.
길상사의 상징인 관음보살상. 마치 성모마리아상과 비슷하다.
길상사를 나와 위쪽으로 조금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대사관로를 구불구불 따른다. 차가 다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만나는 사거리에서 성북로를 타고 10분쯤 내려오면 만해 한용운 동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여기가 만해공원이다. 여기서 위쪽 골목길을 5분쯤 오르면 심우장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넒은 마당 안에 자그마한 한옥집이 소박하게 서 있다. 심우장은 독립운동가 겸 승려인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집이다. 심우는 '나의 본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용운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으며,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일제의 식민지배를 비판했다.
만해공원의 한용운 동상.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심우장은 북향집이다. 만해는 집을 지을 때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본다는 이유로 북향으로 지었다. 평생 민족 독립을 위해 애썼던 그는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곳 심우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용운이 생활하던 방에는 그의 글씨와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왼쪽) 만해가 말년을 보낸 심우장.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본다는 이유로 북향으로 지었다.
(오른쪽) 만해가 기거했던 작고 소박한 방.
다시 만해공원으로 나와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200m쯤 내려와 길을 건너면 수연산방이 골목에 숨어 있다. 수연산방은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머물면서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의 명작을 집필했다. 지금은 이태준 선생의 외종손녀가 당호인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장독대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사랑방과 안방, 마루로 이뤄진 본채가 있다. 마루나 안방에 앉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이 머물며 집필한 장소다. 지금은 고풍스러운 찻집으로 운영한다.
수연산방을 나와 다시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5분쯤 내려가면 성북초등학교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신한 은행 옆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최순우 옛집이 보인다. 이 집은 국립중항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고택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인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통해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안채의 대청과 사랑방에는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툇마루에 앉아 잠시 쉬면서 고택이 주는 편안함에 잠겨본다. 길은 한성대입구역에서 돌아오면서 마무리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인 최순우 선생의 옛집.
●걷는 거리 : 4.6km(한성대입구역 시종점 기준)
●걷는 시간 : 2시간 30분
●걷는 순서 : 한성대입구역~선잠단지~길상사~심우장~수연산방~최순우 옛집~한성대입구역
●대중교통
한성대입구역을 기준으로 한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2번을 타면 길상사에 갈 수 있다.
● 맛집
성북동은 다양한 맛집들이 있다. 국수는 올레국수(02-6348-1974)와 구포국수(02-744-0215)가 잘한다. 밥을 먹기에는 안동할매청국장(02-743-8104)이 푸짐하고 친절하다. 메뉴는 청국장, 순두부 등이 있는데 맛깔스러운 반찬이 가득 나온다.
안동할매청국장의 밥상.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출처] [서울 걷기 여행] 전통의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길 - 성북동 고택 산책길|작성자 전국 걷기 여행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