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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일(화) 마태복음 2:1~12 ‘참된 인생의 목적’ 새찬송가 116장 동방에서 박사들
오늘은 마태복음 2:1~12절 말씀을 중심으로 ‘참된 인생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께 경배하러 찾아옵니다. 그 당시 동방의 박사라고 하면, 지혜자, 현자, 당시 점성술, 해몽, 경전연구, 지혜를 추구하고 마술 등을 행하는 사람을 지칭했습니다. 헤롯 왕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아기 예수를 찾거든 알려달라고 말하고,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경배한 후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니 예수님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것처럼 유대 지역에 있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십니다. 그런데 이 때는 폭군으로 악명높은 헤롯 왕이 유대를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헤롯은 에서의 후손으로 자기 왕위를 유지하고자 아내와 세 아들, 처남과 장모까지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정치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기에 위험천만한 장소에 오셔서 영혼구원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편안하고 안정적일 때보다 전무후무한 환난의 때에 오히려 말씀이 더 잘 깨달아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런 상황 속에서 메시야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가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1절입니다. 폭군인 헤롯은 메시야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불안에 떱니다. 그래서 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를 찾으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합니다. 만일 알려주면 나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말합니다(7,8절). 그러나 사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품고 있었습니다. 헤롯처럼 내가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예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지식만 갖고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믿음보다 지식이나 능력 또는 은사, 봉사에 더 치중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말씀 성경구절을 외우고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쌓는 것을 단순하게 믿음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구절을 외우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단은 자꾸 신앙의 본질을 벗어나도록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기초 위에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반응할 수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아들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알기만 하고 생각만 했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는 믿음의 순종을 했기에 아브라함은 비로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배고픈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먹을 것을 친히 주는 것이 믿음이지 ‘저 사람이 배가 고프구나’ 하고 인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된 이웃에 대한 가르침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눅 10:30~37).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옆을 ‘제사장’이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보고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본 한 사마리아인은 바쁜 와중에 그를 돌볼 뿐 아니라 그를 내 몸같이 최선을 다해 돌보아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식으로 알 뿐 만 아니라 행함으로 그 긍휼을 나타내고 실제적으로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됩니다. 성도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야의 별의 인도하심을 받아 아기 예수를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가져온 예물을 드립니다(9~11절).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갈 뿐 아니라 찾아가서 준비해온 예물을 드립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이 때 드린 예물 중에 황금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또한 ‘유향’은 ‘제사장’되심을 상징하구요. ‘몰약’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이심을 알았을 뿐 아니라 믿음으로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합니다. 또한 이들의 믿음은 예물을 드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만일 우리 같았으면 고민되었을 이전에 들은 헤롯의 말에 전혀 요동치 않습니다. 만일 헤롯의 말에 흔들렸으면 곧장 가서 아기 예수 있는곳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헤롯은 즉시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척하고 죽이려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에 귀를 기이지 않고 곧장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갑니다. 동방 박사들은 세상 권력의 핵심에 있는 헤롯왕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믿음의 행동을 한 것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님만 경배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님만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경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헤롯의 유혹과 음모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땅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땅의 것으로 살 것이요,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하늘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생각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왜 하나님을 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위로를 얻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얻기 때문입니다. (미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랬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고난 중에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말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소유하고 말씀 속에 거하는 자는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올 한 해 매일 매일 말씀 속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는 또한 늘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면, 성령 안에서 ‘구원의 보증’을 얻을 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아름다운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헤롯을 보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만 찾아가고 또 그분께만 경배하고, 그 분께만 예물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인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로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시면서 2023년 새해를 출발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