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46편
* 한국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길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
일념회광(一念廻光
한 마음 돌이켜 비추어 보라)
趙州老露刀劍
조주노로도검
唱夢中說夢漏
창몽중설몽루
조주(禪師)란 늙은이의
칼날(지혜의칼)이 드러나니
어허, 꿈 속에서
마치 꿈을 말함이라.
"
"
선사(정관 일선)의
오도송(悟道頌)에서
나타난 것처럼
선사(靜觀一禪)께서
끊임없이 추구(追求)하신
깨달음의 참구(參求)는
펄쩍이며 살아 있는
활구선(活求禪)이다.
"
"
界有成住壞空
계유성주괴공
念有生住異滅
념유생주이멸
身有生老病死
신유생노병사
無常之體無常
무상지체무상
유·무형 세계에는
이뤄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지는 현상이 있고
생각에는
생겨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없어지는 현상이 있으며
몸에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상이 있다.
무릇 시작(始作)이 있으면
반드시 끝(終 마침)이 있는 것
이로다.
– 일선선사(一禪靜觀禪師) –
"
※
정관 일선(靜觀一禪,
1533~1608) 선사(禪師)는
청허 휴정 (淸虛休靜,
1520~1604) 선사 스님의
정통선맥(正統禪脈)을
이어 받은 선사(禪師)이자
정연 법준(淨蓮法俊)
스님의 법화경 교학전통을
이어받은 강사(講師)로
선학(禪學 참선명상)
교학(敎學 부처님 가르침)
선교겸수(禪敎兼修)를
행(실천수행)했으며
서방정토(西方淨土)와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모두 인정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산중(山中 山林)을 지키며
불교 내부(內部)의
자정(自淨)을 강조했고
기도(염불 祈禱)와
재회(齋會)를 통(소통)하여
고통(苦痛) 받는
중생(사바 衆生救濟)을
위무(慰務 권장)했다.
이러한
선학(禪學 참선 명상)과
교학(敎學 부처님 가르침)
선교겸수(禪敎兼修)를 하며
염불(念佛 기도)을
함께 수행(修行精進)한
당시(당면한 시대)의
수행풍토(修行風土 흐름)는
17~18세기
삼문수업(三門修業)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법화경(法華經)
즉,
묘법연화경(妙法法華經)이
선종(禪宗)의
이력과목에 포함되는데
일조하게 된다.
나아가
서방정토관과
유심정토관이
당시
병행(幷行)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정관 선사(一禪 靜觀 禪師)의
행보(行步 발자취)는
당시의 불교상과
후대의 사적(史料的) 구도를
알게 하는 의의(의미)를
가진다.
정관(靜觀)
일선선사 禪師)의
싯적 양상(詩的 흐름)을
"
언제나
맑고 밝고 깨끗한
자기 자성의 관찰
즉,
[ 정관(靜觀)을 통한
득오(得悟 깨달음의 얻음) ]
[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시화(詩化 시어적 승화) ]
[ 성색(色聲 물질과 소리) 이
곧 천진불(天眞佛, 참 부처님) ]
"
이라는 것을
설(說法)하고
관찰하며 살폈다.
일선(一禪)
정관 선사(靜觀 禪師)는
고요히
살피고 헤아려서 관하는
정관(靜觀)으로써
화두참구(話頭參求)를
권(勸 권장)했으며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공(空)한 자리를 보여주었다.
또한
처음 발심(초발심)한
이(수행자)들에게
미혹(迷惑)을
모두 버리고 바꾸어
깨달음(無上正等覺)에
나아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학(禪學 참선 명상)과
교학(敎學 부처님 가르침)을
모두 함께
선교겸수(禪敎兼修)해야 함을
강조했다.
나아가
몸(體身 육신)을 떠나서는
도(성불도)를 이룰 수없고
소리(聲 성문)와
색(色 물질 空色)에 의지하되
차별심(差別心)이나
분별심(分別心) 등(etc)을
떠난 자리인
언제나
맑고 밝고 깨끗한
청청 자성(淸淨自性)
본연자성(本然 自性)이
곧 도(一心成佛道)이며
천진불(天眞佛 참부처님)이요
자연(自然 그대로)이라 했다.
그는
선(禪 참선 명상 수행)의
최고 경지(境地)를
시(詩)로써 보여준
이시명선(以詩明禪)의
시관(詩觀)을 두루 펼쳐내고
널리 가졌다.
이러한
시관(詩觀 선시적 관점)에서
작시(作詩, 지어진 선시)된
그의 작품(作品)은
외경(外景)을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하여
자연(自然)이 곧 그대로
천진불(天眞佛 참부처님)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시(禪詩)가 곧 그대로
선(禪 참선 명상 수행)이 되고
선(禪 참선 명상 수행)이
곧 그대로 시(禪詩)가 되는
문학성(文學性)을
확보했다.
더불어
이해 가능한
설리적(說理的 설명과 이해적)
경향추구(흐름추구)와
잘 짜여 진
대우(對遇 마주하여 만남)의
수사법(대치법 표현법)도
일선(一禪)
정관 선사(靜觀 禪師)의
선시(禪詩 참선 명상시)가 갖는
특징이다.
또한
조선시대 당시의
숭유억불시책 하에서
승려(僧侶,
사문 스님)들은
은미(隱味,
숨겨지고 감춰진 뜻(맛))한
시어(詩語,
참선 명상 싯적 언어 문장)의
조화로운 선택(選擇)과 함께
위풍당당한
선사(禪師)의 할(喝)도
작시되었음을
정관(일선선사)의
이시명선(以詩明禪)의
시관(詩觀)은 통해
시대를 통관하는
선사들의 시관임을
알 수 있게 했으며
시적 특징은
16~17세기 선시의 편폭을
풍부하게 했고
이후
선시문학(禪詩文學)에
꾸준히 계승되어
선시문학사의 구도를
알게 하는 의의가 있다.
※
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