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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금 목사 /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가 2: 15)
닉 스티넽(Nick Stinnett)은 [강한 가정의 비결](Secrets of Strong Families)이란 책에서 건강하고 좋은 가정이 되려면 다음 6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① 헌신(Commitment): 한 가족으로서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가족 각자가 유형, 무형의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가정이란 가족 간에 팀웍이 이루어지는 가정입니다.
② 감사(Appreciation): 가족들 사이에 칭찬과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칭찬과 격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③ 교통(Communication): 가족 간의 대화 단절은 가정 파괴의 주범입니다. 가족 간에 대화로서 소통하여 고립감을 없애야 합니다.
④ 동행(Together): 가족 간에 함께 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식사, 산책 등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족 식구라는 것을 서로가 알게 해야 합니다.
⑤ 정신적 건강(Spiritual Health): 가족들이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가족들의 정신적 건강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⑥ 극복하는 기술(Coping Skills): 가족 중 어려운 일을 당했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넓은 아량으로 가족들이 이해하고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여섯 가지를 구비하는 가정은 강한 가정이요, 무서울 것이 없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구비했어도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가정이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한 장군이 부하에게 자기 말의 말발굽의 수리를 명령했습니다. 부하는 장군의 말의 말발굽 편자를 박는데 못이 하나 부족해서 박지 않았습니다. 못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생각하며 박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한 참 진행 중이었는데 그 편자가 빠져 나갔고, 말의 다리가 부러져 결국 그 장군은 적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잃었습니다.말의 편자의 못 하나를 박지 않아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못하나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 허점이 생기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포도원의 울타리가 잘되어 있으면 포도원 농사를 망치는 작은 여우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는가 하고 안심할 수 있으나, 본문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우는 흙을 파고 뿌리를 상하게 하거나 꽃이 필 때 그 연한 부분을 갉아 내어 포도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같이 우리 집안을 그 뿌리에서부터 망치는 것들을 잘 잡아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망가뜨립니다.
우리나라는 70, 80년대의 인구의 급속한 도시 유입과 산업화로 인해, 그리고 90년대의 여성운동으로 인해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함께 모여 공동으로 생활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부장적인 가정은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70년대 인구의 급격한 도시 이동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단절시켰습니다. 농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향촌 사회에서 효(孝)는 한 가정과 한 향촌을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었습니다.
그 효 사상에 기반하여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논과 밭을 물려 주어 아들이 그 향촌 사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한 인구의 도시 유입은 이런 구조를 변화시켰습니다. 향촌에 살았던 대부분의 아들은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아버지를 모시지 못함에 따라 엄격한 효 사상도 빛을 바래 갔습니다.
90년대에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의해 억눌려 살아왔던 여성의 목소리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은 호주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고, 재산도 균등하게 상속받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뼈대있는 가문의 자랑이었던 열녀문은 이제 봉건시대의 낡은 유물이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것은 여자를 억압하는 남자들의 폭력의 상징일 뿐입니다.
70,80년대의 산업화로 인한 인구의 도시 유입과 90년대의 여성운동으로 기존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 중심의 가족은 이렇게 해체되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제시되지 않아 지금 우리는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산업구조의 변화입니다. 가정을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적인 수입에 있습니다. 고용안정은 국가경제에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안정에도 몹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IMF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고용을 안정시키기 보다는 불안을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50대의 아버지는 이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여 불안에 떨고 있고, 40대의 아버지는 정규직에 들어가지 못하여 불안에 떨고 있고, 아들은 88만원 비정규직 일자리 밖에 없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용불안으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에 이른다는 것을 1956년 문
을 연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06년까지 50년간의 이혼 사유를 조사한 결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대별로 보면 50~60년대의 여성들의 이혼 사유 1위는 ‘배우자의 외도’(45.7%)였습니다. 뒤를 이은 것이 ‘친정 부모에 대한 폭력과 학대’(27.8%)였습니다.
70년대에도 외도로 인한 이혼 상담은 여전하지만, 배우자의 생사불명을 이유로 이혼을 결심한 여성들의 상담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이후 십 수 년이 흘러도 배우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80년대에는 남편의 폭력을 호소하는 아내(31.3%)가 70년대보다 10%나 증가하였습니다. 남편의 폭력 등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에 호소하는 아내의 비율은 90년대 절정에 달합니다.
2000년대 들어 이혼 상담은 전체 상담의 53.3%로 더욱 증가합니다. 그런데 증가의 주원인이 외도나 폭력이 아니라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문제 때문입니다.
남편의 폭력이나 학대에 아내가 맞대응하자 ‘아내가 자신을 학대한다’며 이혼을 호소하는 남편이 많아진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밖에 노년 이혼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대학 입학 후 이혼을 고려하는 장년층 상담이 95년 대비 2006년에 남성 1.7배, 여성 2.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시기 아내의 폭력과 학대를 호소하는 노년층 남성 비율도 2.5배 많아졌으며, 재혼가정의 재이혼 상담 비율도 1.4배나 증가했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2000년대 이혼의 주된 사유는 외도와 폭력이 아니라 경제위기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는 이러한 경제위기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 3월 1일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해 온 KTX 여승무원들은 지난 5월 9일 투쟁 800일 맞아 투쟁 800일 문화제를 광화문에서 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해온 KTX 승무원 오미선씨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사랑하는 딸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습니다. 동생이 곧 결혼하는데 서른이 넘도록 거의 3년 가까이를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서울역 천막에서 살고 있는 미선이가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미선씨는 ‘손님’이었습니다. 그는 주말마다 집에 오는 딸을 위해 방을 치워놓고, 맛있는 음식을 해 놓고, 과일을 사다 놓곤 하였습니다. 미선이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네가 밖에서 힘드니까 집에 와서라도 잘 먹어라”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만두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주장하는 것들이 전부 맞는 것 같기에, 그렇게 투쟁해 온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그만두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시집가면 마음이 아플 거라는 생각,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딸이 투쟁을 위해 삭발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딸을 부둥켜 않고 울어 버렸습니다.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한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위기, 지금 우리 강남교회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2. 재물에 매이지 말고 언어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 가정에 작은 여우는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을 위협하는 작은 여우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① 우리는 재물에 매이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자녀들을 더욱 훌륭하게 기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자기들의 모든 시간과 능력을 다 드립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복이 돈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돈을 벌기 위해서 교회 생활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희생합니다. 그런데 돈은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불행의 길로 빠집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일 때 우리의 삶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었던 헨리 포드는 포드 자동차 회사로 성공한 기업가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아 현직에서 은퇴한 후 시골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의 총수가 살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했습니다.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 집은 회장님께서 살기에는 좀 초라하지 않습니까? 초라하지는 않아도 생활에 불편이 없어야 될 것 아닙니까?”그 때 포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
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 집은 정말 위대한 집이지요”라고 했습니다.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랑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고 했습니다.
② 언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은 그 미치는 영향이 칼이나 폭탄보다 더 강하다고 합니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평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아이들을 옆집 아이들과 비교하거나 남편과 아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장난삼아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남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것을 싸매는 길은 먼저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실수와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또한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였습니다.세종대왕의 왕비는 너무나 미인이어서 병조판서가 반해 짝사랑을 했습니다. 기회만 오면 손목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기회가 왔습니다. 해마다 팔월한가위가 되면 대신들을 모시고 즐기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습니다. 이때다! 생각하고 왕후가 있는 곳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왕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갑자기 손목을 잡힌 왕후가 엉겁결에 갓끈을 잡았는데 갓끈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세종대왕은 시녀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불을 켜지 말고 우리 놀아 보자. 모두 갓끈을 떼 가지고 오시오, 제일 늦게 가지고 온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요.” 그래서 모두 갓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갓을 다 벗으시오. 왕비가 손수 갓끈을 달아서 내일 줄 것이요.” 그리고 그날 저녁 헤어졌습니다. 병조판서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목이 100개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새면 어명이 떨어질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랑캐가 쳐들어 와서 병조판서가 사복을 한 세종대왕을 모시고 전방 시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랑캐 가운데 사복을 해도 세종대왕을 알아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놈이 활을 쏘았습니다. 병조판서가 그것을 보는 순간 왕 앞을 가로 막으면서 마마 피하십시요 하고 날아오는 화살을 한손으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날아 오는 화살을 막을 수가 없어 왼쪽 가슴 그리고 오른쪽 가슴에 꽂혔습니다. 독화살이라 금방 죽어갔습니다. 왕이 화살을 뽑아 주는데 왕의 손을 잡고 “마마 용서해 주십시요. 그날 밤 그 갓끈은...” 하는데 입을 막으면서 “다 알고 있네. 내가 그대를 용서해 주었더니 그대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구려”라고 말을 하는데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상처가 치료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용서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 가정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신부가 신랑에게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정의 작은 여우를 잡는데 내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가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일들이 다 허사입니다. 예수 없는 가정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제가 부흥회에 갔는데 식사대접하시는 권사님이 사업에는 성공했는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야기인 즉 아들이 고등부 때 학생회장까지 했는데 군대에 다녀와서는 신앙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오히려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생활은 허무하고 결국 멸망에 이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 생활입니다.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이러한 영적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삶이 진정 승리하는 삶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갈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구제 문제로 인한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갈등이었습니다. 헬라파는 헬라에 오래 살다가 온 사람들이었고, 외적인 문물에 개방적인 성향을 가졌으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고향에만 쭈욱 살아왔던 사람들이었고, 숫적으로 절대적 다수에 있었으며, 외적인 문물에 대해 거부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커지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제의 대상에서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의 이름이 빠지고 히브리파 유대인 과부들의 이름만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발끈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성경에 보면 ‘원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일곱 집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구제는 이 일곱 집사에게 맡기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였습니다.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때 예루살렘 교회는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정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승리하는 가정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의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온 가정이 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때 가정의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