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기독교인의 신앙
성경본문 : 에스더 4: 10-17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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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3.1절 94주년 기념주일을 맞아 에스더의 신앙을 살펴 보면서 3.1운동과 기독교인의 신앙을 공고히 하고자 합니다. 에스더는 고아였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조국을 잃은 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에서 자기의 출신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 고아 소녀였던 에스더는 일약 페르시아 대국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 에스더는 페르시아식 이름으로 ‘별(star)'이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이방 나라에서 별 같이 빛나는 왕후로서 그 민족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신앙의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무엇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 3.1운동과 기독교인의 신앙은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입니다.
왕후 에스더는 어느날 그녀의 삼촌 모르드개가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근심하여 갈아 입을 옷을 삼촌에게 보내어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옷을 가져온 사람을 통해 왕후 에스더에게 그들의 동족 유다인이 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서 그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했습니다(에4:8).
삼촌 모르드개의 요청은 왕후 에스더가 받아들이기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숨겨왔던 에스더의 출신이(에2:20)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 앞에 나아갈 경우 왕이 금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아 왕에게 나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 일이 되었습니다. 이는 왕의 왕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뜻입니다. 왕후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이 몹시 두려워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내시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에 4:13)라며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기에 앞서 하나님께 사흘 밤낮을 식음을 전폐한 채 단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순국처녀 류관순(1902.12.16~1920.9.28) 열사의 애국애족 충정 이야기입니다. 류관순은 1916년, 14세때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때부터 주일마다 우리 정동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손정도 목사님과 이필주 목사님을 통해 류관순은 신앙심 뿐만 아니라 애국심과 독립심을 크게 갖게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0일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에 내려간 류관순은 4월 1일 아우내(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서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시위 바로 전날 류관순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소녀 류관순의 기원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31일(음력 2월 그믐날) 매봉에서 기도하며 (류관순 열사 애국어록비. 독립기념관 소재,
오영교. 정동제일교회 125년사 제1권 통사편, p310)
4월 1일 독립만세 시위 운동 중 부모님은 참살 당하고 류관순은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매일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온갖 악행을 당한 류관순은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0년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님의 집례로 거행되었습니다.
로마서 9:1~3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은 이타적인 신앙입니다.
3.1운동에 나타난 당시 기독교인의 신앙은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는 그 동족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기까지 그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따라서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와 민족에 자유와 독립을 주시고 행복한 땅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3.1운동과 기독교인의 신앙은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입니다.
왕후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였습니다.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는 그녀를 자기 딸 같이 양육하였습니다(에 2:7).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단지 양아버지로서의 양육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인생의 멘토로서 에스더에게 애국심과 신앙심을 굳게 심어 주었습니다.
그는 에스더에게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라며 헌신을 촉구했습니다.
삼촌 모르드개의 경고는 왕후 에스더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에스더는 삼촌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바로 이 때를 위하여 자기에게 왕후의 자리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이야 말로 자기가 헌신할 때라고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회답하였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유다인들은 함께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삼일 단식기도를 마친 후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우리 정동제일교회 5대 담임목사님으로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참여하여 2년여 옥고를 치른 이필주 목사님의 일사각오 이야기입니다. 체포 후 경찰총감부의 심문과 경성지방 법원예심에서 목사님은 당신의 애국심과 독립심을 확실하게 밝혔습니다.
심문 :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일반에게 반포하였는가?
답변 : 그것은 동양의 평화를 주창하며 조선 자주독립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심문 : 금후에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변 :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감옥에서 기도 중에 ‘하나님을 구하라!’는 큰 음성을 두 번씩이나 들은 목사님은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읽어나가다가 요한복음 7장 28절에 이르러 눈이 멈추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진정한 영이시라’ 컴컴한 방 안에 환한 전깃불이 켜지는 것 같은 신앙적 체험을 한 후 이필주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우리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그들을 위한 것이라면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그들을 위해 기꺼이 죽고 싶었다.” (전택보,「독립운동에 앞장선 이필주 목사」『나라와 교회를 빛낸 이들』1988, 265~266쪽, 오영교, 정동제일교회 125년사 제1권. p282)
사도행전 20:22~25의 말씀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어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하는 신앙은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적인 신앙입니다. 3.1운동에 나타난 당시 기독교인의 신앙은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는 성령에 매어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갑니다. 따라서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복음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기꺼이 죽겠노라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게 될 줄 믿습니다.
조지 와싱턴이 장군 시절에서 밸리 포지(Valley Forge)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에 식량까지 떨어졌습니다. 정부의 한 관리가 장군을 만나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훌륭하오. 위대하오. 애국자요. 나라의 은인이요.” 그의 말이 끝나자 와싱턴이 반문했습니다.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기쁠 건 없소. 한 마디만 말 하지요. 도대체 당신은 지금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소?”
“도대체 당신은 지금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소?”
이는 애국 선열들이 오늘 우리들에게 묻는 물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우리들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것은 값싼 찬사가 아니라 값진 헌신입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
성도 여러분,
애국애족의 이타적인 신앙과 일사각오의 순교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과 민족 앞에 대답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