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교회 시대의 강해(요한계시록1장~3장)
*소 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는 1960년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요한계시록1~3장까지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메시지를 연속으로 설교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고자합니다.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요한계시록1장.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 요한에게 그것을 보내시고 표적으로 보여주시니
2.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5.또 신실한 증인이시오.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6.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8.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하시더라.
9.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10.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11.이르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하시더라.
12.내가 돌아서서 나와 말씀하신 그 음성을 알아보려 하니라. 돌아설 때에 내가 일곱 금 등잔대를 보았는데
13.그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에 인자 같은 이가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
14.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같고
15.그분의 두 발은 용광로에서 달군 듯한 정제된 놋 같으며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16.그분의 오른 손에는 일곱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19.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 이후에 있을 것들을 기록할지니
20.곧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
* 요한계시록제1장 말씀에 대한 소개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 요한에게 그것을 보내시고 표적으로 보여주시니
2.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이 책을 기록한 사람은(저자가 아니라) 요한입니다. 요한은 생의 마지막 부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고 역사가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이 책을 썼을 때는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생애를 기록한 게 아니라 장래 교회 시대들에 있어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입니다.
3절에서 그것은 예언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보통 요한계시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확한 명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요한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 계시록입니다.
성경전서를 통틀어 예수님께서 직접 요한(기자)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 자신이 쓰신 유일한 책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은 성서의 마지막 책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경륜의 시작과 끝을 말해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계시를 "아포칼립스(apocalypse)"라고 하는데 “베일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조각가가 관중들에게 자기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이고자 그 위에 덮어둔 천을 벗길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커튼(휘장)으로 덮어서 가려놓은 것을 걷어내고 이전에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마지막 시대까지 드러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에 대한
계시일 뿐 아니라 다가오는 일곱 교회시대에서 그분이 앞으로 행하실 일에 대한 계시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진실한 신자에게 주시는 계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계시(Revelation)라는 것은 아마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것은 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과 여러분이 아닙니다. 모든 계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란 교회에게 생명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던 마태복음16장 생각나십니까?
13.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하시니 14.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거늘
15.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시니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17.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Revealed)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
20.그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명하사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인 것을 그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육적인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면서 저주를 퍼부었던 그토록 불안정한 사람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 위에는 절대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수가 없습니다.
* 또한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거룩하게 하신 어떤 한 장소에 있는 어떤 바위 위에도 아닙니다.
* 그리고 일반 개신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회는 예수 위에 세워진다고 말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곳은 계시(revelation) 위였습니다. 말씀이 쓰여 있는 그대로 읽어 보십시오.
"이를 네게 계시(reveal)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알게 하신 것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계시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교회는 계시 위에 세워집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Thus saith the Lord)" 위에 세워집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제물을 드리기 위해 어떻게 정확하게 해야 할 일을 알았겠습니까?
아벨은 자신의 지식이 아닌 믿음으로 그는 피에 대한 계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계명은 가졌다해도
믿음에 의한 계시를 얻지 못하여 올바른 제물을 바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별되게 하고 아벨에게 영생을
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을 유창하게 가르칠지도 모르지만, 예수는 그리스도요,
여러분을 깨끗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피라는 것과, 하나님이 여러분의 구세주이심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로 알려주실 때까지는 여러분은 결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는 것은 영적인 계시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계시록 책은 예수님의 계시이며 그가 일곱 시대의 교회들 가운데서 행하는 일에 대한 계시임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계시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조차도 여기에 기록된 진리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에는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서 그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 이니이까?" 그러자 예수께선,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지상 왕국을 세우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건설하려고 하셨던 것은 영적인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그의 처소에 대하여 사도행전에서
그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계시로 알려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 후, 중보의 사역을 하는 이 특정한 때에는, 예수님은 요한에게 여기 그 자신에 대한
계시 가운데 교회 안에서 그의 영광과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이 계시를 통해 예수님은 마귀의 종말이 어떨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마귀를 다루시고 불못에 던질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탄을 따르는 악한 자들의 종말도 나타내줍니다. 사탄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성경전서 중 두 책을 다른 어떤 책보다도 싫어한다는 걸 혹시 아시고 계십니까?
해방 신학자들과 사이비 과학자들을 통하여 그는 항상 창세기와 계시록 두 책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들 두 책들에서, 우리는 사탄의 근원과 교회를 미혹하는 그의 무시무시한 계략들과 파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 두 책을 항상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 두 책에서 그의 정체가 정확하게 노출됩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그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나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그 말을 반증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말씀에 대한 신뢰를 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탄의 말에 미혹되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말씀의 계시를 믿게 될 때에는, 지옥의 모든 권세도 교회를 이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잠시 제 사역에서 경험했던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제게 주어진 이 은사는 초자연적인 것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 은사를 통해 성령은 질병을 분별하고,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과 여러
감춰진 일을 분별해 제게 나타내 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서서 사탄이 자기가 노출이 되려한다는
걸 알 때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제가 얘기하는 건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건 사탄이 죄와 무관심과 질병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아야만 합니다. 사탄은 자기가 노출되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특별한 변화가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사탄은 두려워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성령이 곧 사람들에게 사탄이 행한 일을 알리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런
집회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름들이 알아 맞쳐지고, 질병이 알아 맞쳐지고, 사탄은 그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독심술이 아닙니다. 텔레파시도 아닙니다. 마술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입니다. 그것이 제가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물론 육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그것을 별별 것이라고 부르면서도 성령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왜 교회 안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을 싫어하는지 또 한 가지 이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변치 않으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전 신학자들 중 90 퍼센트 되는 신학자들보다도 그것을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는 본성이 불변하므로 그가 행하시는 방법들도 불변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가복음16장이 행동으로 옮겨진, 오순절 날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초대 교회가 예수님이 자신의 교회라고
주장하는 참 교회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거짓 교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참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사도행전의 지속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은 적그리스도 영이 어떻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교회를 더럽혀서, 미지근하고
종교적이고, 형식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사탄을 노출시키는데, 그가 불못에
던져질 때까지 계속 역사한 일(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케 하려고 했던 일들)들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상대로 싸웁니다. 사탄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만일 사람들이 참 교회에 대한 참된 계시를 받아들이고, 즉 교회가 정확하게 누구이며, 무엇을 대표하며,
그래서 교회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교회는 무적 군대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다른 영이 있다는 참된 계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대항한다면, 사탄은 참 교회 앞에서는 힘을 못 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자기를 억누르고
권세를 갖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탄을 대항했을 때처럼, 사탄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실패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참된 계시를 가지고 있다면, 지옥의 권세가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책은 교회 안에 계시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실제적인 계시이며 장래교회 시대에서
하실 일들에 대한 계시라고 제가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그 다음에 저는 우리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은 성령이며, 성령이 없이는 계시는 받을 수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연결시켜보면, 여러분은 그저 평범한 연구와 사색으로는 이 책을 생생히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무에게나 계시되어 지는 게 아니고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계시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을 이해하자면 선지적인 통찰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초자연적인 지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절과 절을 비교하는, 그것도 아주 좋지만, 연구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비밀은 성령의 가르침을
요구합니다. 그게 없이는 결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하고 우리들 자신을
활짝 열어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알기 위해서 성령께 맡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책(계시록)은 성경전서의 극치입니다. 계시록은 또 성경에서 적절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맨 끝에. 이제 여러분은 왜 거기에 그것을 읽거나 심지어는 듣는 자들도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마귀를 이기게 할 권세를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은 왜 말씀에 “더하거나 그것에서 빼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하나님의 완벽한 계시에 더하거나 빼고서
원수를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 정도로 너무나도 단순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계시만큼 이기는 힘을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시겠죠? 3절에서는 이 책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저는 이 절은 제사장들이 아침에 회중에게 말씀을 읽어주던 구약의 관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읽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말씀이기에, 거기에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읽혀지든 들려지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그 당시에는 때가 가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 강력한
계시는(하나님께서는 이미 완전히 알고 계셨지만) 지금까지는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즉시 하나의
원리를 배우게 되는데, 각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시는 그 시대에만, 또 특정한 때에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모세에게 준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상 가장 특정한 때에야 왔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왔습니다. 예수 자신도 시간이 꽉 찼을 때 오셨습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되시는 예수님도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는 정해진 그 때에 올 것입니다. 그것은 더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 미리 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시고 잘 숙고해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에 살고 있으니까요.
*인 사 말
계시록1: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5.또 신실한 증인이시오.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6.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아시아라는 말은 실제로는 소 아시아를 말합니다. 그것은 인디애나 주 크기 만한 조그마한 땅덩어리입니다.
거기에 있던 다른 모든 교회 중에서 그 일곱 교회가 저마다의 특성으로 인해 특별히 뽑혔는데, 똑같은 특성들이
수세기 뒤 계속되는 일곱 교회시대들 가운데서 그대로 발견되어 지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일곱 교회 사자들이 살았던 그들 각각의 시대를 위하여 그들에게 계시를 주고,
사역을 주고, 일곱 교회사자들 안에 계셨던 성령입니다.
그런데 “‘이제도 계신 분', `전에도 계셨던 분', `장차 오실 이' 그리고 `충성된 증인'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 이' 그리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되는 이'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전능하신 이',”
이 모든 표현들은 한 분이신 동일한 인격체이며,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씻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직함들이며 그를 묘사한 속성들(말들)입니다. 요한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신성을
설명하고 신성을 한 분 하나님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엄청난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고 하는 오류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요한에게 주신 이
계시는 그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니라 세 직분을 가진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세 직함을 갖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계시는 초대 교회가 가졌었던
계시이며 이 마지막 시대에 올바른 물 침례 방식과 함께 회복되어야 하는 계시입니다.
그런데 여기 저명한 기독교 잡지에 실린 내용에서 저는 현대 신학자들과 생각을 달리할 것입니다. "그 가르침은
(삼위일체론에 대한 가르침) 구약의 심장이며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약의 심장이며
핵심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약은 구약처럼 하나님은 한분이 아니라 여러 분이라는 사상에 맹렬히 반대하고
나섭니다. 그러나 신약은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하나님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이 셋은 동일한 분
(Person, 위(位), 위격(位格), 인격(人格)으로 번역되기도 함.--역주)의 세 면이 아니라, 삼위가 진실로 서로
서로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며 계신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세 인격체(삼위)
이시나 한 분이신 하나님(Three Persons but one God)에 대한 위대한 교리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일위가 아니고 한 하나님 속에 있는 삼위입니다.
그것은 삼위일체론의 커다란 신비입니다." 진짜 신비입니다. 어떻게 삼위가 한 하나님 속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말을 증명할 말씀은 없으며 또 그것은 지적인 판단력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삼위들은,
동일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세 신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은 전적으로 그 의미를 잃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시작이요 끝이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것은 신성입니다. 이 분은 단순히 한 선지자, 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전능하신 자, 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교회가 시작된 초창기에는 삼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을 사도들 가운데서는 못
찾으실 겁니다. 이 이론이 들어와 부상되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주요한 교리가 된 것은 사도시대 이후였습니다.
니케아에서 신성의 교리로 인하여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열로부터 두 극단론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급기야 삼위 하나님을 믿는 다신론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일신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 일은 잠시
동안 일어났지만, 마침내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주위에 그런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요한을 통하여 교회들에게 주신 계시는,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요 나는 만유의 주라.
다른 신은 없도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계시에 자신의 인을 쳤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까? 마태복음1장18절에서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이신 하나님은, 우리는 종종 그렇게 표현하죠, 아버지와 영을 한분으로 만듭니다.
정말로 아버지인 하나님과 성령인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아버지가 둘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과 아버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의하십시오.
그 말은 일위 하나님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사실이므로, 사람들은 그 삼위일체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것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기본적인 교리가 되었습니다. 이 삼위일체론(성경에도 없는 말이죠)은
그 뿌리가 로마의 여러 신들에 그 바탕을 두고 나왔습니다. 로마인들은 기도를 드리는 여러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조상들을 중보자로 삼아 그들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옛적에 섬기던 신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기 위한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그것을 종교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성도들을
중보자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쥬피터, 베니스, 마르즈 등등 대신에 바울이나 베드로, 파티마나 크리스토퍼
기타 등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방신을 섬기는 이교를 단 한 분인 하나님과 맞출 수가
없었으므로 하나님을 셋으로 쪼개고 중보자로 조상들을 섬기던 풍습과 같이 성인들을 중보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들은 세 직분 또는 세 가지 표명으로 나오시는 일위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걸 알지만 하나님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 한 송이와 같아서 삼위가 동등하게 동일한 신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환상적인 이론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 계시록에서 예수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이"라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데 그 뜻은 그가 처음부터 끝, 또는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되시며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는 샤론의 장미이며 골짜기의 백합이며 빛나는 새벽별이며, 의로운 가지이며,
아버지이시며 아들이시고 성령이십니다. 그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일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3장16절에서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는(하나님은) 육신 안에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가운데 들리우셨음
이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일위(첫 번째) 또는 이위(두 번째) 또는 삼위
(세 번째)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위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걸로 해결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형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그를 또 다른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계시입니다.
한 분 하나님.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주신 계시로 그가 태초에는 어떤 분이었는지
알아봅시다. 위대한 여호와께서는 불기둥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언약의 천사로서 그 불기둥 속에
살았고 매일 이스라엘을 인도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자신의 강림을 커다란 구름으로 공표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어느 날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예비 된 몸, 처녀에게서 태어난 몸 안에서 표명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막
위에서 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인간들 가운데서 한 사람으로 거하고자 육의 장막을 직접 입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동일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몸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습니다.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는 말할 수 없습니다. 비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실은--더 이상 분명하게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그 당시에 삼위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셋이 되실 수 없습니다. 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동일한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나는 하나님께로서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6장27~28절.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땅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 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예수라."하셨습니다.
그는 불기둥, 눈부신 빛이셨습니다. 그는 전에 그가 말씀하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육의 장막을 입기
전에 취했던 똑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이 보았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1잘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현재 시제입니다) 독생자가 그를 나타내셨느니라."
요한이 예수님이 어디에 있다고(현재에 말입니다) 말하는 걸 주의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십니다.
누가복음2장11절은,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태어나셨습니다. 팔일 후에는 할례를 받고 천사가 그들에게 지시한대로 예수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저에게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셨지만
여기 아래 사람들 가운데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그 바깥 성막은 예수라 불리웠습니다.
그는 영광의 주셨고 육으로 표명된 전능하신 이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이며 아들이며 성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런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정확히 직함입니다. 그것들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함이 아니라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런 직함들의
이름입니다. 마치 아들로 태어난 애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애기라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이고,
아들은 직함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존 헨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천 명의 예수라는 이름이 있고 우리 구주 예수님 이전에도 그런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그리스도로 태어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모순 아닙니까?
누군가 `아들'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걸 들어보신 분 있습니까? 아들들은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결코 시작이 없습니다. 그는 육으로 표명된 영원하신 하나님(여호와)이십니다.
요한복음1장1절을 보시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
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원하신 말씀에 참되고
충성된 증인이셨습니다. 그는 선지자이셨고 아버지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명한 것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막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느니라."
하나님은 직함을 많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의로움' `우리의 평강' `늘 계신 이' `아버지' `아들' `성령'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이름은 딱 하나 가지고 계신데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는 세 직분 또는 삼중 표명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니까요. 이 땅에서는 선지자이셨고
하늘에서는 현재 제사장이시고, 이 땅으로 돌아오시면, 그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전에도 계셨던 이"--
그 분은 선지자로 계셨던 예수이십니다. 지금도 계신 이"--그 분은 중보를 하고 계신,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에 동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장차 오실 이"--그분은 앞으로 오실 왕이십니다.
땅에서는 그는 말씀이셨고--선지자이셨습니다. 모세는 그에 대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들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예수님에 대한 이런 사실들을 잘 보십시오. 이 땅에서 그는 선지자였고 어린 양이었고 아들이셨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삼위(세 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들은 한 분이신 예수의 표명 또는 직분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론자들이 신성 안에 실제로 일위(한 분) 이상이 계신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여
즐겨 인용하는 성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록5장6~8절입니다. "6.또 내가 보니 보라, 보좌와 네 짐승의
한 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에 전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께서 서 계시더라. 그분께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온 땅 안으로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7.그분께서 나아오사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서 그 책을 취하시니라. 8.그분께서 그 책을 취하시매 네 짐승과 이십 사 장로가 저마다 하프와
향이 가득한 금병들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는데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정말로 이절들은 이절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그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떼어놓고 본 절들이라고 말한 걸 주의하세요.
그래서 계시록4장2~3절에 그리고9~11절을 읽어보십시오. "2.내가 즉시로 성령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3.앉으신 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보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어 보기에 에메랄드 같더라. 9.그 짐승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 곧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에 10.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이르되, 11.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2절을 잘 보시면 보좌에 `일위(한 분)'이 앉아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한 분입니다).
3절에서는 앉으신 이는(여럿이 아닙니다.) 벽옥 같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는 생물들이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여럿이 아닙니다.) 영광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여럿이 아닙니다.) 엎드렸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그들이 우리 주 하나님(여러 명의 주가 아닙니다.)
당신이 합당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 11절에서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 일위(한 분)은 "창조주"였다고
말하는데, 그는 곧 구약의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인(창세기1장1절) 예수님이십니다.(요한복음1장3절).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시록3장21절을 읽어 봅시다.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히브리서12:2절을 읽읍시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계시록을 쓰신 예수님 자신에 의할 것 같으면,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앉아 계심을 주목하십시오.
그런데 바울 안에 있던 영은(그 영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은 예언의 영인데 이 영을 통하여
말씀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보았을 때
그는 보좌에는 "일위(한 분)"만 계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계시록4:2-3 그리고 9-11절에서 지적했던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어린 양"이 책을 취하는 걸 우리는(시간상 계시록4:2-3절 후에 따라 나오는)
계시록5:6-8절 이전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위(한 분) 하나님"에 대한 비밀입니다.
그는(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이 말한대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그를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1장18절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메시야가) 그의 신부를 데리러 돌아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인간에게 "다윗의 아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방인 신부들의 신랑"으로
나타내시기 위하여 나오시는 걸 봅니다. 그것은 "이 위(두 번째)"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일위(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세 직분들과 직함들로 표명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 선지자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메시야의 징표를 알았습니다.
요한복음1장44~51절에서, "44.이제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그에게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하매 46.나다나엘이 그에게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니 빌립이
그에게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 속에 거짓이 없도다! 하시니 48.나다나엘이 그분께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하시니 49.나다나엘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하매 50.예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하므로 네가 믿느냐?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일들을 보리라, 하시고 51.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사람들 속에 있는 마음의 생각들을 분별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로
그가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말씀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히브리서4장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물가에 있던 여인이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의 생각을 분별하는 걸 들었을 때, 메시야가 그런 위대한 능력으로
알려지리라고 고백하고 그를 선지자라고 인정했습니다. 요한복음4장7~26절에, "7.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 길러
오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마실 물을 내게 달라, 하시니 8.(이는 그분의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로
갔기 때문이더라.) 9.그때에 사마리아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10.예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네게, 마실 물을 내게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하시니 11.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 선생님께는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이 어디에서 그 생수를 얻겠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그와 그의 아들들과 가축들이 마셨는데 선생님이
야곱보다 더 크시나이까? 하매 13.예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시니라. 15.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 물을 내게 주사 내가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또 여기로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매 16.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 하시니 17.여자가 응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매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고 잘 말하였도다. 18.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그 점에서 네 말이 참되도다. 하시니라. 19.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이르기를,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나이다. 하매 21.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이르느니라. 22.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23.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 25.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리이다, 하매 26.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계시록15장3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며 이르되, 주 하나님 전능자여,
주의 일들은 크고 놀랍나이다. 성도들의 왕이시여, 주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나이다." 그걸 아시겠습니까?
어린 양, 속죄소(자비의 보좌)에서 우리 죄를 위한 속죄로서 자신의 피를 들고 있는 대제사장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현재 그것이 그의 직분입니다. 그것이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그의 피로 변호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그 어린 양은 유다 지파의 사자가 될 것입니다. 그는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나와서 왕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권세를 취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장차 오실 왕이십니다.
물론 그가 현재는 왕이 아니란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왕이시며 성도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그것은 영적인 왕국입니다. 그 왕국은 이 세상 체제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삶의 방식이 이 세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왕 되신, 우리가 중생한 왕국의 영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 여자들은 남자의 옷을 입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도 않고 화장품을 쓰지도 않고 세상이 그토록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사용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자들은 술 마시지 않고 담배 피지 않고 죄 가운데 빠져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우리 지배는 죄에
대한 지배이며, 이러한 지배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 있는 권능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왕국은 무너질 것이지만 우리의 왕국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위(한 분)이시고 참된 하나님의 직분들과 표명들에 대해서 말했고 성경 말씀을 통해 그의
영광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적으로 알려지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의 계시로, 영적인 계시로
말미암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예수로 알려진 이 동일한 분은 자신이 왔던 불기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올라가시면서 다시 돌아와 그의 백성들 가운데 성령으로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그분은 다시 불기둥의 모습으로 내려와서 불의 혀로 갈라져 그들 각자 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던거죠? 자신이 약속하신대로 자신을 교회 안에 부어주시고 계셨습니다.
그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에게 자신의 일부분을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전에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을 그의
교회 가운데 나누셨습니다. 요한복음14:16~23,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에게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이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예수님께선 그가 아버지께 기도하여 이미 그들(제자들)과 함께는
있었지만 그들 속에는 있지 아니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던 분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다음에 23절에서는, 자신과 아버지를 가리키며, 예수께서 우리가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영이 오리라, 아버지로서 또 아들로서 나타냈었던 그 동일한 하나님의
영이 와서 많은 사람들 속에 나타내리라"--예, 맞습니다. 영이신 일위(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아시겠죠?
그러므로 누구도 거룩한 사람을 교황이니 또는 주교나 목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분은 그리스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어떻게 감히 평신도들은 말할 권리가 하나도 없다고 성직자들은 선언할 수 있습니까?
각자가 할 말이 있습니다. 각자가 할 일이 있고 각자 다 사역이 있습니다. 성령은 오순절 날 오셔서 각 사람
위에 자신을 나누워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한 요한복음14장20절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하신 자존자(I AM),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참된 교회를 채우려고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원하는 곳엔 어디든지 움직일 권한이 있고 원하시는 자에겐 누구에게든지 임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누구를 "거룩한 자"로 삼지 않습니다. 주의 참된 회중 전체가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다 거룩합니다. 거룩한 것은 회중 전체가 아니라 성령이신 그분입니다.
자 그것은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입니다. 아무리 애써봐도,
여러분들은 삼위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는 일위라는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이 주시는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예수님이다.”라는 것을 깨닫는데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 슬그머니 들어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멀게
했습니다. 그들이 눈멀게 되자 로마의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주는 것을 금세 그만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곱 교회시대를 거치면서 너무도 많은 성서구절이 왜곡된 가운데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신성에 대한 진리를 깨달으려면 성령으로부터 진정한 계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이기는 교회는 계시 위에 세워지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내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여러분은 물 침례에 대해서 만큼은 계시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 코 앞에서 여러분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에서 벗어나 일부러 불순종하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성령으로부터 온 계시를 통해 제자들에게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 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제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침례를 준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여러분은 사도행전은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교회임을 알 것이며, 그들이 그런 식으로 침례를
주었다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침례를 주어야 한다는 걸 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말이 지나친 말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은 분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9장1~6절에,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은 이후로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렇죠. 에베소에 있던 이 선한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들었었습니다.
요한이 그분을 전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돌아보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침례를 받아야 할 때였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을 때,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오, 에베소에 있던 그 친애하는 분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영접하는데 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그를 맞이할
준비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분을 놓쳤다는 사실을 못 보시겠습니까? 그는 이미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셨다면, 하나님께선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채워주실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19장6은 사도행전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는 말씀이 성취된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베드로가 성령으로 말한 바를
그대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말해진 말씀은 변경될 수가 없습니다. 오순절날부터 마지막 택함을
받은 자가 침례를 받을 때까지 똑같아야만 합니다. 갈라디아서1장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자 일신론자인 여러분 중에는 잘못 침례를 주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물에 침례하는 것이 구원을 주는
것 인양 중생을 위해 침례를 줍니다. 그러나 중생은 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은 물이 새롭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은 다만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증거일 뿐이라 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베드로전서3장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누구라도 물 침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다른 식으로 주었다고 역사가 증명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저는 역사를 읽어보시고 직접 알아보시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주후 100년에
로마에서 있었던 침례에 대한 실제 기록이며 1955년 12월 5일 자 타임(TIME)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집사가 손을 들자, 푸블리우스 데시우스는 침례실 문으로 들어갔다. 허리까지 오는 물속에 서 있는 사람은
나무를 파는 마르쿠스 바스카였다. 그는 푸블리우스가 물을 헤치고 그의 옆으로 다가올 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믿습니까?'하고 물었고 푸블리우스는 `믿습니다'했다. `내 구원은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옴을 믿습니다. 그와 함께 영생을 가지고자 그와 함께 저는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푸블리우스는 자신이 뒤로 물속으로 누울 때 강한 두 팔이 그를 떠받쳐주는 걸 느꼈고, 차가운 물이
그의 전신을 덮을 때 `나는 당신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다.'하는 마르쿠스의 음성을 들었다."
이 진리가 상실되기(그리고 이 마지막 시대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러니까 니케아 때부터 현 세기의 초반
때까지입니다) 직전까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돌아왔습니다.
사탄은 성령께서 계시를 주시고자 할 때는 계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삼위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버지를 위해서, 아들을 위해서, 성령을 위해서 침례를 주는 게
잘하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이 받은 계시는 하나님은 일위(한 분)이 계시고 그분의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일위 하나님을 위하여 오로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침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순절날 그런 식으로 침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동일한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는 계시에 충실해야만 했습니다. 보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만일 예수께서 `동시에' 주도 되시고 그리스도도 되신다면 그는(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난 일위 안에 계신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삼위 안에 계신 하나님, 복된 삼위일체,"가 아닙니다.
반면에 세 개의 주요한 직함을 가진, 그 직함들을 나타내는 세 직분을 가진 한 분 하나님, 일위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이 동일한 예수는 주님이면서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아버지)와 그리스도(성령)는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그는(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 둘 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성에 대한 참된
계시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것도 계시를 보여주지 못할 것입니다. 주는 다른 분(위, 位)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또 다른 분(위,位)이 아닙니다. 이 예수가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일위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날 빌립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 저는 언젠가 그 말씀을
인용했는데 어떤 여자분이, "잠깐만요, 브래넘씨. 당신과 당신의 부인은 한 몸 이쟎아요,"했습니다.
저는, "그것과는 종류가 다릅니다."했습니다. 그녀는, "뭐라고 하셨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당신은 제가 보이죠?"했습니다. 그녀는, "네."했습니다.
저는, "제 아내도 보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아뇨"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 됨은 서로 종류가 다른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선지자는 저물녘에 빛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물녘에 빛이 있으리. 영광으로 가는 길을 분명 찾으리. 물길 속에, 오늘날의 빛이 있다네
예수의 귀한 이름으로 장사되므로. 남녀노소, 모두 죄를 회개하라. 성령이 정녕 들어가시리라
저물녘의 빛이 왔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한 분이라는 사실이네."
얼마 전 저는 유대교 랍비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제게, "당신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세 조각내고
그분을 유대인에게 줄 수 없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오."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그렇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하나님을 세 조각으로 쪼개지 않습니다. 당신은 선지자들은 믿죠?“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론 믿죠."했습니다. "이사야 9:6을 믿으십니까?" "믿습니다."
"그 선지자는 누구에 대하여 말하는 거죠?" "메시야죠."
저는, "메시야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메시야는 하나님일 겁니다."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아멘.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삼위 또는 세 부분 안으로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따로 따로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유대인은 금세 그 사상이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여러분에게 말해줄 겁니다. 유대인들은 이 신조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교도라고 경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들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유대인들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일위에서 삼위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녁 무렵 빛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고 있는 때에 이 진리가 돌아왔다
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일위입니다. 이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그 계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여기 이 성서에 소개하시기를--
"나는(I AM)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장차 올 이, 곧 전능한 자라. 아멘"
만약 계시가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높다면 위를 보고 하나님께 계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게 계시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계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야만 하니까요. 계시는 인간에 의해서나 자연히
부여되지 않고 성령이 부여하심으로 옵니다. 여러분은 그 성서구절을 암기하고 그게 참 좋다고 생각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라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아야만 하며 그 후에야,
성령이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며,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계시를 주실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들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이 계시해 주신 자들만이 압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계시를 위해 더 많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받아들였고 그 책의 위대한 진리들을 영접했지만 성령에 의한 계시가 그 말씀에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직도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5장21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의로움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그가(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죄를 지었다고 말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어 우리로 그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우리는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를 대신하는 대속물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가 그와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정한 의가 되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전자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후자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후자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부인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계시가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다수에게 그다지 실감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성서에 있는 좋은 구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계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을 놀라게 하면서도 도움을 주게 될 말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은 원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걸 믿지 않는 성경 연구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위대한 성경 연구가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위해 세 가지 커다란 기여를 한 위대한 세 민족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통어를 만든 헬라인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들에게 참된 종교와 구세주를 통하여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지식을 준 유대인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법과 도로체계를 가진 통일
제국을 이룬 로마인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종교와 그 종교를 많은 사람들에게 표현할 언어와 그
종교를 실제로 퍼뜨릴 정부와 도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말해 이것은 정확하게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이스 학자들은 성서 시대의 헬라어는 너무도 완벽하고 정확해서 헬라어를 아는 학생이
고도로 훈련을 받은 세밀한 문법가라면 정말로 신약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사실 그럴까요? 그런데 한 교파에 속한 저명한 모든 그리이스
학자들은 다른 교파에 속한 연구가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논쟁은 흡사한 헬라어들과
흡사한 문법 규칙들에 얽힌 논쟁 아닙니까? 정말로 그 때문입니다. 저 버가모 시대에서,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직전에 두 위대한 연구가들이 있었습니다. 아리우스(Arius)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였는데 그들은 헬라어
한 마디를 두고 교리적인 싸움에 갇혔습니다. 그들의 논쟁이 너무도 치열하고 세계적이어서 역사가들은 세계가
하나의 이중모음(한 음절 속에 있는 두 모음의 소리)때문에 분열되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헬라어가 그토록 완벽하고, 하나님이 주신 언어라면, 어째서 그러한 논쟁이 벌어졌겠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우리 모두가 헬라어를 알기를 원하지는 않으셨지요?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는 헬라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맥크로슨 박사가 지은 "엑스레이 촬영을 받는 그리스도의 마비된 교회"라는 책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 책에서 그는 여러 유명한 그리이스 문법가들의 이론을 수없이 인용하면서 헬라어 문법의
불변하는 규칙들은 결론적으로 성서는 거듭난 후에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예언이라는 말은 말씀을 전한다.”라는 뜻이므로 여자들은
설교단을 차지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유능한 다른 헬라어 연구가들을
확신시켰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반대 의견을 고수하는 그 연구가들의 책을 읽고 그들의 유식한 인용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자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오늘날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성서 원본은 예수님과 그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이었던 아람어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그 사람들은 헬라어를 하거나 헬라어로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역사가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말로 명석한 성경 연구가 중 한
분인 숀필드 박사는 연구를 통하여 성서는 그 당시 헬라어를 말하던 사람들의 모국어로 쓰여졌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여러가지 자료들에 근거하여 자기 신념을 지지하는 훌륭한
사례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또 다른 유명한 성경 연구가 람사 박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는 성서는 아람어로 쓰여졌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명석한 역사가인 토인비의 견해를
예시하면서 헬라어가 아니고 아람어가 그때 사람들의 언어였으며 그래서 신약은 처음에 아람어로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점에 대해 너무 몰입하기 전에, 흠정역(KJV)과 람사 박사가 번역한 성서를 다 읽어 봅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두 역서의 말들이 놀랍게도 같아서 내용이나 가르침에는 실상 차이가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의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미 알려진 성서의
새롭게 발견된 이 원고들과 최근의 출판물들이 우리 앞에 나오게 하셨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역가들이 서로 싸울지라도 성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성경이 쓰여진 언어에 대한 성경연구가의 심오한 지식으로 해석을 삼을 수는 없다는 걸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전통의 베일에 가려져있어 그걸 보지 못하신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주후33년 그 해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위대한 학자들이 구약이 쓰여진 언어의 문법 규칙들과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리라는 걸 아무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박학다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들 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의 계시를 놓쳤습니다.
거기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 그 분이 표현되어 있었고, 장마다 그와 그의 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는데,
성령에 의해 비춤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그분을 까마득하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을, 우리가 이미 말씀 속에서 찾은 결론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가장 잘 기록한 것을 찾고자 가장 오래되고 좋은 원고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진지하다
해도, 우리는 성경 구절을 연구하고 대조함으로써 그것의 진짜 의미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짜 뜻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말했던 바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2장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약속된 것을 입증함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해석하시는 하나님만이 진짜 계시를 주십니다.
그런데 제가 앞서 말한 것을 오해하시고 우리가 가진 이 성경 말씀이 정확하지 않다고 믿는다고 생각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성경은 정확하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 이 땅에 계실 때 구약을 완전히
신뢰하셨고 그것은 우리 신약처럼 그대로 편집되었던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실수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늘날 결코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도 감히 그 말씀에 더하거나 거기서
빼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우리는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는 말씀을 주셨던 동일한 성령이 필요합니다.
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계시가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성경이 필요치 않습니다.
새로운 번역이 필요치 않습니다. 어떤 번역은 정말로 잘된 게 있지만, 저는 그것들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선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계시하시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계속 생명을 주는 또한 이김을 주는 계시를 주시기 시작하길 기도드립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선한 계시를 얻고 그것으로 인하여 표명된 살아있는 말씀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큰 일을 하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 죄에서 해방됨
계시록1:5."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씻는다."는 말은 실제로는
"해방시킨다."는 뜻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그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영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것을 파악하셨습니까? 우리를 우리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킨 것은
그분이 직접 흘린 피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였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주의 곧 예수의 피라 말했습니다. 세 인격체가 아니라 한 인격체입니다.
다시 한 번 한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나오는군요. 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동정녀 탄생의
방법으로 자기를 위해 한 몸을 만드시고 그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우리 죄에서 자유케하고(완전
히 해방시키고) 지극히 큰 기쁨으로 자기 앞에 우리를 흠 없이 내세울 하나님의 피가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한 예표를 보여드릴까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들인 아담이 타락했다는 소식이 영광의 보좌에
알려졌을 때, 하나님께선 천사를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습니까? 그는 우리에게처럼 또 다른
한 사람을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선 직접 그 잃어버린 아들을 구속하려고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선 그의 구원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로 되시사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도말하시려고 죽을 몸 안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시고자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이걸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피이므로, 그 피는 완벽한 피 입니다. 그래서 그 완벽한 피가 우리를
죄의 권세와 속박과 더럽힘에서 해방시키고 있다면, 그 해방은 완벽하고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게 됩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우리가 의롭다고 선언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시니..." 로마서8장33~34절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피를 주셨습니다.
그 피는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이제는 아무 정죄가 없습니다.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피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으므로 더 이상 정죄 받을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몸이며
죄 없는 몸입니다.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그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들의 전통이나 신조나 조직들에게 다시 묶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을 부인하고 예수께서 구원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성령과 능력으로 채워주신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딴 길로 끌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유케 하신, 하나님이 직접 흘리신
피로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교파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신조들과 교파들에 믿음을
고착시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이미 잃어버린 것입니다.
* 왕과 제사장
계시록1:6.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께 즉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가 우리를 삼으셨다!" 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진리가 확실히 있습니다. 이것이 그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그가 우리를 삼으셨습니다! 구원은 그분이 하시는 일입니다. 구원은 주께 속한 겁니다. 전부 은혜입니다.
그는 우리를 어떤 목적이 있어서 구속하셨습니다. 뭔가 뜻이 있어서 우리를 그의 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왕, 영적인 왕입니다. 오, 우리는 그가 자기 보좌에 앉으실 때 그와 함께 이 땅에서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영적인 왕이며 영적 왕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로마서5:17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골로새서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왕국(통치)으로 옮기셨으니," 지금 우리는 죄와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지배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의 찬양과 영광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분 자신을
내보이면서,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정하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네, 정말로,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네, 그분께 거룩하게 된 입술로 영적 찬미를 바치는 제사장들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분에게 향기로운 제물로 바치면서. 또 신령과 진리로 그분을 경배하면서. 중보하고 간구드리면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장과 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우리가 선한 사업들에
대해 열심인 독특한 사람들인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녀가 되기 위하여 그분 안에
재창조된 자들입니다.
* 장차 오실 하나님
계시록1:7.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그가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 선지자가 오실 것입니다.
제사장이자 왕 되신 이가 오실 것입니다. 만유의 주께서 오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 속히 오십시오. 아멘.
그가 오실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실텐데, 변화산 위에서 보이셨을 때도 구름이 보였고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님을 덮을 때 그의 옷은 빛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입니다.
그 말은 이때는 휴거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이때는 그가 세상 통치자로서의 자기 지위를 양도받고자 오시는
때입니다. 이때는 그분을 자기들의 신조와 교파적인 교리로 찌른 자들이 애통하며, 모든 사람들이 말씀인
그를 인하여 공포에 휩싸여 울부짖을 때입니다.
이것은 스가랴12장9~14절의 계시 이야기입니다. 스가랴는 이 일을 25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이일은 금세라도
일어날 일입니다. 들어보십시오. "9.또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민족들을 멸하려 하리라.
10.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그런데, 복음이 언제 유대인들에게로 돌아갈까요? 이방인의 날이 끝날 때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오,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시대에 일어나려고 하는 뭔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어나려고 하는 이 위대한 일은 계시록11장으로 가서 그 두 증인
곧 그 두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를 일으켜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로 돌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것처럼, 이방인들도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돌려줄 것이고 그 다음에는 휴거가 있을 것입니다.
자 계시록과 스가랴서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십시오. 둘 다 환란기 직후에 나옵니다.
장자(신부)의 교회는 환란기를 겪지 않습니다. 우린 그걸 압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에 그의 성령을 부어주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시대에
이방인들 위에 부어주셨던 동일한 영입니다. "10...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 11.그 날에 마치 므깃돈 골짜기의 하다드림몬에서의 애곡과 같은 큰 애곡이
예루살렘에 있으리라. 12.그 땅이 애통하되 가족마다 따로 애통하리니 곧 다윗의 집 가족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그리고 그가 영광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때 모든 집이 따로 할 것입니다. 그를 찌른 유대인들은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 말한대로,
스가랴13:6.또 사람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두 손에 있는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들은
내가 내 친구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라, 하리라." 그런데 그때는 메시야이신 그를 거절한 유대인들에게 뿐
아니라 이 시대의 구세주이신 그를 거절한 이방인들 중 남은 자들에게도 애통의 때가 될 것입니다.
울며, 불며 통곡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잠자는 처녀들은 절규할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에서 자기 등(혼=Soul)에
기름을(성령=그 시대의 말씀인 메시지) 담아야 하는데, 너무 늦을 때까지 기름을 채우는 걸 부인한 어리석은
처녀들인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의로움과 성화의 단계까지는 이르렀지만,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가데스바니아에 있었던 경계선에 있었던 10명의 정찰병과도 같습니다. 그들 모두는 처녀였습니다. 그 말은 높은
도덕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등에 기름이 없어서 울며 이를 갊이 있는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이것을 창세기45장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형제들을 만나 그 형제들에게 자신을 나타냅니다.
창세기45:1.그때에 요셉이 자기 옆에 서 있던 자들 앞에서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게 하고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렸는데 그때에 그와 함께 서 있던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2.요셉이 크게 우니 애굽 사람들과 파라오의 집이 듣더라. 3.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 하니 그의 형제들이 그 앞에서 불안하여 능히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매
4.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하니 그들이 가까이 가매 그가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동생 요셉이니 곧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니이다. 5.그런즉 이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당신들 스스로에게 노하지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시려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
6.또 이 땅에 이 년 동안 기근이 있었으나 아직 오 년이 남아 있어 그때에 밭을 갈지도 못하고 수확하지도
못하리이다. 7.하나님께서 큰 구출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당신들을 위해 후손을 세상에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니." 자 그 말씀은 스가랴12장과 훌륭하게 비교되지 않습니까?
그들 둘을 합치면 우리는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왜 미움을 받았죠?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이상을 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고 꿈을 꾸고 해몽을 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요셉 안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낼 뿐 다른 것은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그를 미워한 것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 미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에게는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선지자였으므로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셨지만 형제들(이스라엘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가 병든 자들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고 장래 일을 미리 말하고 환상을 보고 환상을 해석할 수 있었으므로 그를 미워했었습니다.
미워할 이유도 되지 않는데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처럼, 그들은 그를 이유 없이 미워했습니다.
자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에게 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 속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아들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려고 야곱이 요셉에게 준 채색 옷을 피에
적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을 어떤 노예 상인들에게 팔았고 노예 상인들은 그를 애굽에 데려가 다시
어떤 장군에게 팔았습니다. 그 장군의 아내는 누명을 씌워 요셉이 옥에 갇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선지자로서의 그의 능력이 바로의 눈에 띄어 바로의 우편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권세는 바로에게 가기 전에 요셉을 먼저 통해야만 할 정도의 권세였습니다.
이제 애굽에 있을 때 요셉의 생활이 어땠는지를 살펴봅시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완벽한
예표가 되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장의 집에 있을 동안, 요셉은 억울하게 송사를 받았고 아무 이유
없이 벌을 받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요셉은 같이 옥에
갇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여 살아남았지만,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당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채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양쪽에는 강도가 있었는데--한 사람은 죽었습니다, 영적으로, 그러나 다른 한 강도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리우셨을 때, 그는 하늘로 들려 올려가 지금은 위대한
여호와의 영의 우편에 앉아계시고 아무도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는 중보자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마리아니 성인이니 하는 것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있습니다. 요셉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이 예표를 계속 살펴보면, 요셉이 애굽에 있으면서
행한 일들은 다 번성했음을 알게 됩니다. 시위대장의 집에서 했던 처음 일은 번성했습니다. 감옥에서 조차도
번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는, 사막이 장미꽃처럼 꽃필 것입니다. 그는 "번성의 아들"이십니다.
요셉이 통치하던 시대만큼 번성하던 때는 없었던 것처럼 이 땅도 세상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그런 축복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 앉아서 웃고 기뻐하며 영원히 주님 앞에서 살 것입니다.
주의 존전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은 그의 도착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요셉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그 나팔 소리가
나면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뭘 파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돈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나팔이 불면 멈추고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연기자나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그 나팔 소리로 요셉의 당도를 알리면 그는 요셉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영원히 밝고 아름다운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2장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이 요셉의 예표 안에서 또 하나 영광스러운 계시를 보십시오. 요셉은 애굽에 있을 동안에 이방인 신부를
얻어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두 소년을 축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셉은 야곱 앞에 장자 므낫세는 야곱의 오른쪽에 에브라임은 왼쪽에 있게 하였습니다. 야곱이 그들을 축복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른 손이 차자 위에 머물도록 양 손을 엇갈리게 했습니다. 요셉은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러지 마십시오. 아버지 오른 편에 있는 애가 장자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 양손을
엇갈리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이 예표에서 우리는 장자(유대인)에게 속했던 축복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엇갈린 손)를 통하여 차자(이방인)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옵니다.
갈라디아서3장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방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은 십자가를 통하여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 신부를 얻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만나는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이 다 온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요셉은 그 사실을 알고 형제들이 모두 함께 그 앞에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전에는 데리고 오지 않았던 어린 베냐민을 데리고 왔습니다.
요셉의 마음이 불붙게 했던 사람은 요셉의 친동생인 어린 베냐민이었습니다. 우리의 요셉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백성들에게 가실 때에도 역시 그의 마음은 불붙을 것입니다.
어린 베냐민은 구속을 바라고 전 세계 각처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144,000명의 이스라엘인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속죄일에 영원한 생명 되시는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고 거기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분이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려온 우리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 "이 끔찍한 상처는 어찌된 거냐?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소리지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이 따로 떨어져, 슬픔과 번민 속에 모두 따로 떨어져 울고 애곡할 겁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의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리실 동안 이방인 교회(신부)는 어디에 있을까요? 요셉의 신부는
두 자녀들과 함께 왕궁에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이, "모두 물러가라. 모두 내 앞에서 나가라,"고 명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방인 신부는 요셉의 왕궁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방인 교회는 휴거 때 어디로 갈 겁니까?
왕궁 안으로 갑니다. 신부들은 땅에서 데려감을 당할 것입니다. 신부는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해서 대환란
전에 휴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복의 진노가 부어질 삼 년 반 동안, 신부는 성대한 어린 양의 혼인 만찬에
참석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신부를, "그의 아버지 집"에 놔두고 돌아와 자신을 형제들에게 알리실
것입니다. 바로 이때, 유대인들이 로마와 맺은 적그리스도 언약이 깨질 것입니다. 그때 로마와 그의 동맹국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사는 유대인들은 다 멸하려고 군대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멸하려고
그 성읍을 치러올 때, 하늘에는 땅을 멸망시켜왔던 그들을 멸하기 위해 인자가 강한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는
징표가 보일 것입니다. 적을 격퇴시키고 나서 예수님은 오셔서 144,000명에게 자신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가 행한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상처를 보고
자기들이 그 순간까지도 그분을 거절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은 요셉 앞에 서 있던 자기네 옛 형제들처럼,
죽임을 당할까봐 심히 두려워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의 고통가운데 울부짖게 될 겁니다. 그러나 요셉이, "한탄하지
마소서.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보존하시고자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하고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사랑한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거절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이방인
신부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방인 교회의 생명을 지키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 144,000명은 신부 속에 들지 않습니다. 계시록14장4절을 보면 그들은 정절이 있는 자(virgin)로
불리우고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딜 가든지 따라갑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여자들(이방인 교회)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유대인들임을 보여줍니다.(마태복음 19:12) 유대인들은 신부의 방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시중꾼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보좌에 앉아 있지 않고 보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신부 속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광스러운 천년 통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막내가 사랑 안에 주와 연합되고, 적을 멸망시키고 나서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천년 밀월여행을 위해 그의 성산을, 즉 신부와 그와 그녀의 시중꾼들을 위한 새 에덴동산을 예비하신다는 걸
압니다.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 있다가 천년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님과
그의 이브(참된 교회)가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룰 것입니다.
오, 성서는 계속 반복합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므로 요셉과 그의 형제의 상봉 장면이 곧 반복될 것입니다.
요셉의 예표를 끝내기 전에, 저는 여러분이 이 마지막 때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나십니까? 요셉은 베냐민이 형제들과 함께 오지 않았을 때는, 비록 그가 히브리어 말을
잘 하지만 통역자를 통해서 말을 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른 말(방언)로 얘기했습니다. 여러분 첫 번째
이방인 시대(금으로 된 머리, 바벨론 시대)는 벽에 쓴 다른 방언으로 된 메시지와 함께 끝나게 되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이 시대도 똑같은 식으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방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이방인들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돌아가시고 있다는 전조입니다.
그는 곧 오실 것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이며, 선지자이시며 제사장되시고 왕이시며 만유의 주시며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한 분이시며 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이신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아니면 우리의 갈급한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