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수리를 본 적이 있어요.
드높은 하늘에 떠서 날고있는 독수리가 아니라
상처입고 작은 우리에 갇혀 불안과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독수리를요.
때는 2020년.
유단이가 5학년 숙제로 그 독수리에 대해 쓴 일기를 소개합니다.
크게 힘들이지않고 글을 잘 쓰는 온아 소이와는 달리 짧은 글 쓰기도 힘들어서 몸을 배배 꼬던 유단이였네요. 지금도 유단이에게 글 쓰기는...,
---------
유단이 반 친구중에는 '일기는 자기만의 비밀기록'이라는 개념이 생겨서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유단이는 아직 그 쪽으로는 어린 것 같다. 일기란 어디까지나 글씨 쓰기와 작문 연습을 위한 것이어서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못보게 하지만 다 쓰고나면 '엄마 봐도 돼!'하며 내게 일기장을 쓱 내밀기도 하고, 다음 날 '틀린 데 없었어?' 태연하게 묻기도 한다.
없겠냐?
(맞춤법을 빵 터지게 웃기게 써놓아서 같이 깔깔대던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냐?)
어른(나) 보다도 글을 잘 쓰는 5학년도 있더라만 우리 유단이는 아직 뭔가를 써야한다는 게 크나 큰 압박이고 짐이다. 글을 써내기 까지 몸을 비틀고, 꼬고, 해찰하고. 보고 있으면...쩝! 에혀...,
유단이는 이제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시키지 않아도 내용을 제대로 알 때까지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아주 좋은 습관도 갖고 있다. 읽는 것이 쌓이다보면 내용을 아는 것도 아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글을 풀어내는 방식도 알아져가리라. 그러면 내게 말로 쏟아놓는 내용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의 에피소드라도 즐겁게 써보는 날이 오긴 오겠지?
부디!
이장님이 밥주러 가면서 유단이에게 "같이 가서 구경할래?"해서 따라 간 것을 마치 자기가 밥주러 간 것 마냥 써놓았음.
이장님이 식당에서 먹고 남은 양념된 고기를 얻어왔는데 그건 안먹고 생삼겹살만 먹어서 이장님 왈 부담되서 오래 못데리고 있겠다고.독수리 너를 위해서도 울 이장님을 위해서도 얼른 기운차려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나도 독수리를 보러 갔는데, 위에 있던 독수리가 어느 새 바닥에 내려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더라는.
단이 독수리 눈이 멋지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 멋진 눈을 그리기는 어려웠는지 생략했는데, 내 눈에는 독수리 눈이 보인다.
--------------
(덧) 이 독수리는 상처가 깊었는지 생각보다는 오래 우리에서 머물다 이장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첫댓글 유단이가 독수리 눈이 있는 부분을 '생략'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그리지 않고 남기는 식으로 매우 잘 표현했는데요. ^^
헤헷! 소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지만,
선생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