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과 숙명(宿命)을 극복한 초월적인 삶>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운명(運命,destiny)’과 ‘숙명(宿命,fate)’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흔히 혼용(混用)되어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이다. 때론 운명과 숙명을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운명(運命)’은 광활한 우주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 필연적 관계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숙명(宿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카오스(무질서)적인 면이 있다. 운명은 개인의 의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라 할 수 있으나, 숙명은 일체 개인의 의지를 초월하여,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으로 피할 수 없는 범위다.
운명(運命)은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生死)에 관(關)한 처지(處地)인지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운명(運命)의 ‘운(運)’자는 ‘옮기다’ ‘움직이다’와 같은 뜻이 담겨있다. 다시 말해서 운명은 우리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보통 인간의 운명은 시련의 시기마다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기에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숙명(宿命)의 글자 ‘숙(宿)’은 ‘미리’, 또는 ‘사전에‘라는 뜻이 있는데, 숙세(宿世)는 전생의 세상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나, 부모형제, 태어난 시간, 출생지, 죽음 등은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집사람(아내), 직업, 주거지 등은 운명이다. 예를 들어, “수박은 5~6월에 개화하여 여름철에 먹는 덩굴 열매이다”라는 문장에서 ‘수박 열매’는 바로 숙명이라 할 수 있고, ‘5~6월 개화나 여름철 열매’는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여러 난방 시설을 이용해 사철 내내 수박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운명(運命)은 불가피한 필연의 힘이라,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힘이다. 또한 운명은 명확한 목적의지를 갖는 합리적인 힘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합리적·초논리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힘은, 그 자체로서는 결코 운명이라 할 수 없다. 운명의식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이다. 그런고로 숙명론의 가장 원초적 형태는 원시인이나 고대 민족의 신화·전설에 나타났다. 고대 인간에게는 운명의 힘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많다보니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애니미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박한 신앙은 원시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의 독립이 자각될 때에는 민간 신앙으로써, 또는 철학 혹은 종교로 승화되었다.
맹자(孟子)가 말하길, “하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늘(天)이고, 이르게 하지 않아도 이르는 것은 운명(運命)이다.” 하였고, 어느 성인(聖人)이 말하길, “삶은 스스로 사는 것이고, 귀신의 힘이 그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하였다. 이미 이런 이치를 알면 죽는 것도 역시 운명에 달려 있을 뿐이고, 귀신이 그 중간에서 운명을 보태거나 줄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하여, 동양에서도 운명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 운명이 사람을 아프게도 힘들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지만, 숙명은 그 아픔과 행복까지도 어쩔 수 없다 한다. 운명은 상식과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숙명은 상식과 논리를 초월한다. ‘이 일은 나의 숙명이다‘와 ’이 일은 나의 운명이다’에서, 벌써 느끼는 어감이 다르다. 숙명이란 말 속에 어쩔 수 없는 체념이 느껴진다면, 운명은 긍정적인 희망의 의미와 자유의지가 일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우주의 탄생과 비밀이 풀리고 있는 현대과학문명 속에서, 운명은 당연히 극복의 대상이 된지 오래되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여겨, 각종 술수에 현혹당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츄츄’에, "운명을 따르는 자에게 행복이 있으라. 운명에 맞서는 자에게 영광이 있으라."라는 대사에서, 운명을 맞서는 자를 더 우월한 가치와 정의로 여겼다. 그 외에도 여러 명언에서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다", "미래와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다. 바꿔갈 수 있는 것이다."고 강설하고 있다. 만약 운명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의지적인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운명론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운명과 운명을 초래한 인과를 수용하면서도 그 불합리한 부분을 의지로 부단히 극복하고 바꾸어가고자 한다면 인간의지의 승리로 남는다.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합법칙적으로 개선하는 것, 그것까지도 운명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이 곧 숙명일 것이다. 소극적인 운명의 개념을 적극적인 운명의 개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숙명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의미이고 인간존재의 가치이다. 지천명(知天命)이란 개념 또한, 운명을 넘어 숙명(宿命)을 알 때, 천명을 안다는 뜻이다. 천명을 안다는 것이야말로, 운명을 극복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야말로, 숭고한 삶, 초월적인 삶과 더불어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것이고 초월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고영화(高永和)-
◯ "운명을 따르는 자에게 행복이 있으라. 운명에 맞서는 자에게 영광이 있으라." -프린세스 츄츄-
첫댓글 약 40년 전에 대학 여름방학 때마다 거제도에 와서 아버지 농사 짓던 때 사진입니다^^
아버지께서 겨울 비닐하우스부터 여름 가을 농사까지 일년 내내, 토마토 오이 가지 무우 배추를 출하했지요^6^
그땐 대우조선소가 있어 출하가 잘 되던 좋은 시절이었답니다^^
석유공사 원자재비축기지 헨스 작업, 나무를 베고 난후, 구덩이를 일정 간격 파고 Y자 기둥을 세우고 철망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휴전선 철책과 비슷하지요. 몇달 등록금 벌어서 대학 복학했답니다^^ 1987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