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10월 1일 한국의 돈을 자기 것처럼 발표했다.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54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알래스카 LNG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사실은 전혀 없다. 한국이 말한 것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을 따져보고 참여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었을 뿐. 상무장관 러트닉은 금액까지 500억 달러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같은 날 김성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와 국민을 속인 이재명 정부의 외교참사”라고 비판했다. 외교참사 맞다. 굴종의 결과는 늘 참사인 법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의 발표에 반발했다. 그는 트럼프의 발언을 두고 “예상은 했지만 더 나간 발언”이라고 했고, 러트닉에게 “강하게 이의 제기를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알래스카 LNG는 상업적 합리성이 없으면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원전 8기 사업도 이미 모든 조건이 확정된 사업은 아니다. LNG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돼 왔지만, 부지와 사업비, 투자·수주 방식 등 핵심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런 미확정 사업들까지 이미 한국의 대미투자로 결정된 것처럼 한꺼번에 발표했다.
알래스카 LNG가 그렇게 훌륭한 사업이라면 미국 자본이 먼저 달려들었어야 한다. 알래스카 북부의 가스를 약 1,300㎞ 떨어진 니키스키까지 파이프로 끌고 내려와 액화한 뒤 아시아로 수출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예상 사업비만 445억~545억 달러다. 비용 초과 위험이 크고, 경쟁 상대국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수십 년째 실제 건설에 들어가지 못했다. 현재 확보됐다는 LNG 구매물량 상당수도 구속력 없는 예비합의다. 포스코가 예비 구매계약과 철강 공급 협의를 해왔지만 그래서 한국이 봉이 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문제는 540억 달러가 아니다. 미국이 한국을 뭐로 보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한국 정부가 전혀 합의하지 않은 사안을 미국 대통령이 제멋대로 먼저 세계에 발표하는 광경이란 한국 따위야 미국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눈에 한국은 미국의 말에 고분고분 순종해야만 하는 식민지일 뿐이다. 그나마 김정관 장관이 반발하고 숭미 집단인 국힘마저 정부의 대미 굴종을 성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이 완전한 식민 상태는 아닌 모양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처지인 것 아닌지.
미국만 탓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런 관계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역대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유일한 외교정책으로 내세워 왔다. 미국이 하라는 대로 전부 하겠다는 말이 ‘한미동맹의 강화’다. 그러니 한국 정치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동맹을 해치는 행동이다. 미국은 유일신이요 한미동맹은 우리 헌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8월말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말처럼 한국은 미국의 정책에 어긋나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을 진정한 친구로 존중하는 것도 아니다. ‘등신’은 멸시의 대상일 뿐이다.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인 법이다.
우리의 호구 짓은 수도 없이 이어져왔다. 2004년 용산기지 이전만 해도 미국이 원하는 것을 거의 전액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어 비용을 해결해 주었다. 숭미관료들의 매국이었다. 그들은 다시 2006년에 대통령까지 속여 가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함께 들어가 있지만,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어에만 묶어두지 않는다는 원칙 자체는 수용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한국을 대중국 전쟁의 전진기지요 병참기지로 만들고 있음에도 정부는 바라보고만 있다.
미국은 한국정부의 고위인사 임명에도 사사건건 간여해 왔다. 1964년 미국은 박정희를 압박해 김종필을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떠나게 했고, 1973년 이후락을 중정에서 제거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송민순 안보실장의 외무장관 임명에 집요하게 반대했지만 실팼했고, 윤석열 때는 CIA가 김성한 안보실장을 도청해 폴란드에 대한 포탄 수출에 유보적인 김 실장을 해임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 최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느닷없는 직위해제 역시 대미투자 문제에 의문을 가진 인사를 미국과 숭미 참모들이 찍어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미국은 알래스카 사업에 이견을 말하고 있는 김정관 장관도 찍어내야 할 대상 리스트에 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대미 강제투자 합의는 그야말로 초대형 굴종의 결과다. 2,000억 달러의 전략투자와 1,500억 달러의 조선협력이다. 전자는 현찰을 가져다 붇는 사업이다. 한국만 완전히 ‘봉’이 잡힌 모습이다. 일본도 유럽도 미국의 압력에 철저하게 저항했다.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 투자는 1-2%만이 현찰투자다. 나머지는 전부 대출과 보증이다. 유럽은 액수만 6,000억 달러지 실제로는 민간 기업의 투자의향을 집계한 수치다. EU 차원에서 미국에 약속한 투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은 차라리 고관세를 얻어맞는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경제 분석도 있었다.
미국은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우리의 대미 투자 대가로 핵잠 연료 공급, 농축 및 재처리에 대한 협력을 약속했다. 사실은 약속이라기보다 그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비구속적인 언사가 다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미국은 이행할 의사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핵잠 연료 공급이나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은 미국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핵 선진국과 협력을 통해 얼마든지 우리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에 목을 매고 스스로 엎어져 미국의 멸시를 자초하면서 약탈을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나라인가.
경제적 수탈에 더해 군사적 강탈 압박에도 우리는 알아서 몸을 바치는 나라다. 전투 파병이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파병은 파병이요 미국에 끌려가는 것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토록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있는가. 프랑스와 인도가 보복을 감내하면서 미국에 저항해 자율성을 확보했고, 지금 캐나다의 카니 총리와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중견국들의 자주적 외교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왜 우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캐나다보다, 스페인보다, 프랑스보다, 인도보다 훨씬 뛰어난 국민과 산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제발 바꿔야 한다.
이제 3,500억 달러 대미투자는 전면 백지화할 일이다. 왜 우리가 우리의 돈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자들의 농간에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사업성도 없는 허접스런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들이부어야 하는가. 한미 FTA 역시 즉시 폐기해야 한다. 왜 우리가 미국만 일방적으로 수혜를 받는 협정을 감싸고 앉아 있는가. 미국이 관세를 매기든 말든 이제 우리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혹여 미국이 알래스카 사업에 이견을 내고 있는 김정관 장관을 해임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거든 제발 단박에 거부하라. 김지용이라는 허접한 인물이 중수청장이 되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대한미국’을 만들려는 숭미집단의 매국 책동에만은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 실로 많이 무겄다 아이가, 이제 제발 그만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