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의 오형제중 셋째로 태어난
이범수는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남달리 영특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서울살이를 시작한 큰형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고교의
교사로 재직하니 개천에서 용났다,
라며 모두가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두 형님, 동생들 모두 그런 범수에게
손을 벌리게 됩니다.
40 여년전 어느 휴일날 오전쯤에
험상굿은 40대 남자가 불쑥이
찾아와 당신의 큰형 윤수가 보내서
왔다며 말했다.
당신 큰형님이 내게
사기를 쳤는데, 칼을 들고 찾아가서
돈 안줄거면 너죽고 나죽자고
했더니만 당신의 형님 말씀이
내가 동생을 돌봐줘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
를 하고 지내니, 동생에게 얘기하면 도움을 줄거라 했다는 것이였다.
돈을 줄때까지 마루에서 지내겠다
면서 벌렁 누워버렸다.
그러길 이틀,
이틀째 되된날. 아내가 얼마의 돈을
들고와서 이 돈밖에 없다며 협상을
벌였지만 끄떡 안했다.
아내는 용감하게 부엌칼을 가져와 같이 죽자고 엄포를 하니 그 돈만 가지고 갔었다.
당신 대단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냐구~
흥! 남자들이란 겁쟁이야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 생즉사 ~
전법을 이용한거라구,
아하 ~그려,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싸우면 죽는다고.
30 여년전 고향마을 이장님햔테
전화가 오기를, 자네 어버지가
목을 매어 죽음 직전에 살아났다.
자네 둘째 형 경수는 노름 않겠다고
손목을 자른다, 하다가 부상을
입고 치료중이니 다가 오는 주말
에 내려와 달라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부탁이라는 얘기와 함께,
주말에 집에 내려와 아버지로 부터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다.
겨울이면 노름을 좋아하는 둘째
형이 그동안에도 아버지가 어렵게
일궈논 논을 노름으로 팔아치우
더니 이번에는 동생이 매입해준
논과 밭이 다 날아갔다는 것이며
이에 화가난 아버지가 이러고 사느
니 차라리 죽겠다며 자살을 시도
했다는 것이였다.
둘째형님은 다시는 노름을 않겠다며 두 손목을 자르겠다며 소동을 별였다한다.
내가 논을 차차 사줄태니 그동안은
남의 논이라도 부쳐서 살아야죠,라
고 달래고 하여 마음잡고 살고있다.
큰형님에게 큰돈을 갚아주었는데,
내가 절약하여 마련해준 시골 논을
둘째형이 팔아버리니 마음이
엄청이나 아퍼왔던 것이였다.
얼마간의 살림돈을 주고서야 올라왔다.
어쩌다 부모님이 오시면 불편하다
했던 가족들, 이런걸 보면서 둘째
형님이 부모님을 모시는 거에 대해
늘 감사한 맘을 가졌던 것이였다,
20여년전 집안행사에도 잘 오지
않던 변두리 지역 개척목사 동생
억수가 느닷없이 아파트 이사,
축하 예배차 집에 온다고 했다.
예배후 동생 억수가 하는 말이
" 교회를 지으려 하니 3000만원
담보,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였다
우리도 대출이다 뭐다 복잡하여
보증을 못 해준다 말하니 동생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겠다
하면서 난리를 피우는 것이였다.
해결책은 보증대신 연금에서 3천만
원을 대출받아서 동생에게 줬다.
이 대출금을 8년에 걸쳐서 갚았다
빚을 갚는 중에 교회는 다른 사람들
에게 넘어 갔었다.
동생은 형이 갖지 않은 자가용을 구입하고 또 교회를 지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수년전 막내동생 인수의 전화였다.
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어머니는 미혼인 막내와 둘이 같이
살어왔던 것이였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이후 였으니................,
막내 동생이 말하기를,
큰형님 이혼하였고 둘째형님은
파산되였고 넷째 형님은 여기지기
돌아다니는 목사이고 막내인 저는
혼자이며 회사를 다녀야 하니
그래도 젤 나은 셋째형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라는 거였다.
어머니를 3년간 모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례에서 저의 아내는
제일 슬프게 울었다
" 어머니 다음 세상에서는 나같은
며느리 얻지 마셔요, 잘 효도하지
못하여 죄송하다며, 울었다"
우리 형제는 제사도 둘째가 지내다
첫째집으로 옮겨 지냈었다 그런데
이번 큰형수의 요구로 셋째인 내가
제사도 모시게 되였다.
셋째인 내가 사업가도 아니고 고등학교 교사 월급쟁이로 빠듯이 살아가는 것은
고교졸업 후 회사 다니는 사람들과
쪼들리며 사는 거는 별반 다르지
않다.승진하고 년수가 되면 월급이
오르니 좀 낳아지겠지만 말이다.
누굴 도와주지 않해도 살아가기가
팍팍한데 형들이나 동생들이
그래도 우리 형제들 중에는 대학도
나오고 월급도 좀 많을테니, 하면서
손을 내미는데는 대책이 없는 거다.
셋째아들인 내가 모든걸 수용한다
하더라도 나의 아내는 매번
당신 형제들은 왜 그러냐며 투덜
거릴때는 마땅히 둘러댈 말이없다.
많이 배웠다고 경제적으로 넉넉
하지가 않은데 형제들은 아주
넉넉한 셋째로 여기니 답답하다.
살아간다는 것이 참말로 어렵다.
무 자식이 상팔자 라면
무 형제도 상팔자라 말할까?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4형제는 맨몸뚱이로 모두
자수성가형이지만 누구에게나
손을 벌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더구다나 막무가내식으로
뗑깡을 부릴만한 성품들도 없으니,
우리집 보다 더 어렵게 살았던
이웃들이 있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 이은집 북에서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