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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역할인물 설명
배우이름 영화속 인물 역할
| 앤서니 퀸 | 알렉시스 조르바 | 삶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그리스인 |
| 앨런 베이츠 | 바질 | 크레타섬으로 온 젊은 영국인 작가 |
| 이렌느 파파스 | 과부 | 마을 사람들의 욕망과 질투 속에서 비극을 맞는 젊은 여성 |
| 릴라 케드로바 | 마담 오르탕스 | 조르바와 사랑에 빠지는 여관 주인 |
| 조르조스 푼다스 | 마브란도니 | 마을의 영향력 있는 남자 |
| 소티리스 무스타카스 | 미미토스 | 마을의 인물 |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1964년에 만들어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 겁니다.
바닷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묻습니다.
"춤을 출 줄 아나?"
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해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이 두 사람에게는
그날 축하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업은 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떠났습니다.
돈도 잃었습니다.
계획했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웃습니다.
그리고 춤을 춥니다.
저는 이 마지막 장면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영화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자유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이 누리는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 잃고 난 뒤에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자유에 가깝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바질은
영국에서 온 젊은 작가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고
신중합니다.
그는 크레타섬에 있는
아버지의 오래된 갈탄 광산을
다시 개발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배에서
한 남자를 만납니다.
바로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는 바질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입니다.
바질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조르바는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바질이 세상을 책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조르바는 직접 부딪혀서 이해합니다.
바질이
"이것을 해도 될까?"
하고 고민하는 동안
조르바는
"일단 해보자."
하고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조르바라는 남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업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말은 거칠고
행동은 즉흥적이고
때로는 무책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바질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 있다는 감각'입니다.
조르바에게 삶은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으면 먹고,
사랑하면 사랑하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춥니다.
그는 삶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삶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래서 조르바가 바질에게
가장 강력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바질은 작가입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삶은
살지 못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안전한지,
무엇이 합리적인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러는 사이
삶은 계속 지나갑니다.
반면 조르바는
삶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래서 실패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인생의 종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르바가 바질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 같지만,
사실 바질 역시 조르바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조르바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바질에게는
자신의 삶을 흔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크레타섬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조르바에게는
마담 오르탕스가 있습니다.
호텔을 운영하는 여인입니다.
오르탕스는
자신이 한때 사랑받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에게 조르바는
마지막 사랑처럼 보입니다.
조르바 역시 그녀에게
거침없이 다가갑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보고 있으면
웃기면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오르탕스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조르바는
그녀에게 순간순간의 행복을 줍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미래는
결국 비극을 향해 갑니다.
오르탕스가 죽은 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남긴 물건을
빼앗기 위해 몰려듭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욕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조르바는 그 광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꽤 중요한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조르바가
아무리 자유로운 인간이라 해도
세상의 잔인함까지
춤으로 없앨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극이 있습니다.
바질이 마음을 두었던
젊은 과부입니다.
그녀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질투와 적대감은 점점 심해지고,
결국 그녀는
잔인한 죽음을 맞습니다.
바질은 사랑하고 싶었지만
끝내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망설이는 사이
비극은 벌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바질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겁이 많고,
생각이 많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같은 것인가?
바질은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추진했던
목재 운반 시설이 완성됩니다.
엄청난 기대 속에서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모입니다.
이제 성공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통나무가
너무 빠르게 내려옵니다.
두 번째도 실패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마침내 거대한 시설 전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완벽하게 망했습니다.
말 그대로
'완전한 재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아주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보통 영화라면
주인공이 절망해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주저앉거나,
서로 책임을 묻거나,
돈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르바는
웃습니다.
그리고 바질에게 묻습니다.
언제 떠날 거냐고.
바질은 곧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조르바는
바질에게 자신에게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광기'입니다.
저는 이 말을
그리스인 조르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광기는
미쳐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계산만 해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는 것.
그것이 조르바가 말하는
광기입니다.
그리고 바질은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됩니다.
처음의 바질은
책을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바질은
춤추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춤은
승리의 춤이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해서 추는 춤도 아니고,
사랑을 얻어서 추는 춤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실패했기 때문에 추는 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합니다.
이 일을 성공시키면 행복할 것 같고,
이 사람과 사랑하면 행복할 것 같고,
돈을 조금 더 벌면,
조금 더 인정받으면,
조금 더 안전해지면
그때 비로소
삶을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르바는
정반대입니다.
삶은 성공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두 남자가 춤추는 것입니다.
무너진 시설 앞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해변에서.
두 사람은 웃으며 춤을 춥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조금 묘한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조르바가
처음부터 바질보다 행복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역시 수많은 실패를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가난했고,
상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삶 전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조르바와
바질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바질은 삶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조르바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바질은 마침내
조르바처럼 춤을 춥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그리스인 조르바'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조르바는 단순히
괴짜 그리스 남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계속 생각합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조금 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말합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아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르바처럼 무조건 사는 것도,
바질처럼 무조건 신중한 것도
아닐 겁니다.
생각할 때는 충분히 생각하되,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생각을 내려놓고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
바닷가에서 춤추는 두 사람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곳에는 성공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계획도 없습니다.
미래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춤을 춥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려서
춤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도
다시 춤출 수 있는 것.
그것이 조르바가
바질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인생 수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런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나는 지금
바질처럼 살고 있을까,
아니면 조르바처럼 살고 있을까.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한 번쯤
"그냥 한번 해봐."
라고 말해주는 조르바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어쩌면 지금 필요한 조르바가
바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1964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였습니다.
아..그리고 이영화 리뷰 대본을 작성하며 언터처블의
필립과 드리스가 생각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