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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남쪽 복건성(福建省) 북쪽에 위치한 무이산(武夷山).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자연유산
보호구와 세계문화유산 보호구로서 중국인들은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쥔 쌍유산보호구로 이곳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예전부터 동남쪽 최고의 명승지로 손꼽히는 무이산은 36개의 봉우리와 99개의 암석, 2개의 병풍절벽과 8개의 고개, 계곡도 많아 4개의 계곡과 9개의 여울, 5개의 웅덩이, 11개의 골짜기, 13개의 샘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삼보산(三保山)에서 발원하여 성촌을 거쳐 일곡까지 9.5㎞를 르는 구곡계가 인기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주파이’라 불리는 대나무 뗏목에 태워 무이구곡(武夷九曲)산수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하고 있다.
**-주자(朱子)(1130-1200):본명 희 (熹) 푸젠성에서 나서 주돈이,정호, 정이, 등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유교 철학인 성리학을 집대성하였으며, 백록동서원을 일으켜 서원교육의
시범을 보였다. 저서: 사서집주, 근사록, 소학, 자치통감 등이 있다.
**-武夷九曲歌는 朱子가 學問에 投身하여 한 걸음 한 걸음 境地를 쌓아올린 過程과 마침내
學問을 大成하여 얻은 마지막 境地를 「武夷九曲歌」란 十首의 詩를 지어 읊어 表現 한 것이다.
이 武夷九曲歌는 朱子가 53歲때 武夷山 아래 紫陽書院에서 지은 詩로 그는 이것을 弟子
親舊들에게 보이고 보내 주면서 하나의 웃음거리로 삼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詩는
朱子가 최상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을 武夷山 계곡(一曲 升眞洞,) 二曲 玉女峰,
三曲 仙機巖, 四曲 金鷄巖, 五曲 鐵笛亭, 六曲 仙掌巖, 七曲 石唐寺, 八曲 鼓樓巖, 九曲
新林市)의 경치에 빗대어 지은 것으로 朱子의 學問의 경계를 가장 극명하게 그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詩이다.
“천유봉을 오르지 않으면 무이에 왔다고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이산의 진수를
볼 수 있는 해발 750m의 봉우리이다. 실제는 천 길의 절벽 위에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은
것으로, 838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마치 천궁 속을 유람하는 듯하다 하여 천유의 칭호를
갖고 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구곡의 옥빛 물길이 휘돌아 가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위로는 무이산군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곳. 과연 무이산의 으뜸 장소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르는 중간에 관폭정이 있고, 정상에는 천유정과 일람대가 있다
무이산 풍경구를 흐르고 있는 구곡은 길이가 9.5㎞이다. 관광객들은 1시간30분 동안
정원이 6명인 굵은 대나무 6~7개를 묶은 뗏목(주파이)을 타고 9곡에서 1곡까지 수상
여행을 하는데, 이 코스가 무이산 관광의 진수라 할 수 있다.
구곡에서 일곡까지에는 쌍유봉, 쇄포암, 옥류봉과 대왕암 등 특이한 기암절벽과 바위들이
한 굽이씩 돌아갈 때마다 나타난다. 그때마다 여기에 얽혀 있는 전설과 사연들을 사공들
에게 들을 수 있다. 송나라 때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1130-1200)도 구곡의 아름다움에
빠져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구곡계(九曲溪)는 총길이 9.5km의 물줄기를 따라 36峰과 99岩이 기암절벽을 이루어 물굽이를 돌아 나갈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성촌진(星村鎭) 죽벌(竹筏) 마두(碼頭 ; 부두)에서 두사람의 뱃사공이 한조가 되어 폭 2m, 길이 9m의 대나무뗏목(竹筏)을 몰고 九曲부터 一曲까지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유람한다. 대나무뗏목 바닥은 물이 그대로 스며들어 타기전에 신발을 쌀 비닐봉투를 나누어 주는데 유람시간은 보통 한시간 반이 소요되지만 뱃사공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성촌진 죽벌마두(星村鎭 竹筏碼頭 ; 대나무뗏목 부두) 전경
우측 세 봉우리가 삼앙봉(三仰峰)이다. 삼앙봉은 칠곡 북쪽에 있으며 무이산풍경구 중 최고봉으로 해발 717.7m이다. 삼앙봉에는 벽소동(碧霄洞), 단정(丹井), 기반석(棋盤石), 삼은대(三隱臺), 적취암(積翠庵) 등이 있다.
뗏목은 굵은 대나무 7~8개를 엮은 두대를 잇대어 만들었는데 6개의 좌석이 있고 구명조끼를 입어야한다. 뱃사공은 대나무 삿대로 바닥을 밀어 속도를 내거나 방향을 잡으며 물살의 흐름에 의지하여 떠내려 가다 수심이 깊은 소용돌이에 이르면 냇가 바위벽면을 밀어 방향을 잡는데 오랜세월 같은 지점을 찍었는지 깊은 구멍이 뚫려져 있다.
무이산은 주자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朱子(1130-1200) 본명 熹 복건성에서 나서 주돈이, 정호, 정이 등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유교 철학인 성리학을 집대성하였으며, 1179년에는 백록동서원을 일으켜 서원교육의 시범을 보였다. 1183년 53세에 무이산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며 무이정사 주변의 누정(樓亭)과 지형을 시로 읊은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고, 1184년에는 무이계(武夷溪)의 구곡 경치를 읊은 무이도가(武夷櫂歌) 즉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주자가 무이구곡가를 지을 당시에는 일곡부터 구곡까지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물굽이마다 풍류를 읊었는다.
구곡(九曲)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구곡장궁안활연 상마우로견평천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어랑갱멱도원로 제시인간별유천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훤히 트이는데,
뽕나무 삼나무(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平川)을 바라보네.
뱃사공 어랑은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평천은 구곡의 끝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개천이 평평하게 흐르는데 뽕나무와 삼나무가 들을 채우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무릉도원의 경치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 또다시 별천지를 찾으려 하지만 이곳이 바로 이상세계라고 노래하였다.
팔곡(八曲)
八曲風煙勢欲開 鼓樓巖下水濚廻팔곡풍연세욕개 고루암하수영회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막언차처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
팔곡에 바람 불어 구름이 개려 하는데,
고루암(鼓樓巖) 아래에는 물이 돌아드네.
이곳에 좋은 경치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自是(자시) 스스로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함
팔곡은 산이 높아 물살이 빠르고 각종 동물 모양의 바위가 많다.
고루암 아래에는 사자모양을 한 바위도 있고 거북 모양의 바위도 있다.
그런 팔곡의 정경을 사람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덧 신선이 사는 곳이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다.
마반석(磨盤石)은 팔곡 남쪽 냇가에 있으며 이명(異名)으로 대소늠석(大小廩石), 늠석암(廩石岩)으로 불리운다. 磨盤은 중국말로 맷돌이며 廩은 고대 식량창고로써 신선들의 쌀창고와 같은 의미이다. 상하 두덩어리의 거석이 원형으로 우뚝 솟아 있다. 마반석 부근에는 수어석(水魚石), 낙타봉(駱駝峰), 상비암(象鼻岩), 방생담(放生潭) 등이 있다.
품자암(品字岩)은 팔곡의 북쪽에 3개의 커다란 바위가 品자 모양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품자암은 삼교봉(三敎峰)이라고도 하는데 유(儒), 불(佛), 도(道)의 삼교를 가리킨다. 품자암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무이산에는 유, 불, 도의 삼교가 모두 들어있다. 유가로 말하면 주자의 무이정사요, 불가로는 극락국, 도가로 말하면 도원동이다.
쌍유봉(雙乳峰)은 이명(異名)으로 고자봉(鼓子峰), 병연봉(幷蓮峰)이며 팔곡 중 최고봉이다. 쌍유봉 아래에는 당나라 때 사람이 왕자를 공경하여 창건한 석고도원유지(石鼓道院遺址)가 있으며 절벽에 어지러이 뚫려있는 구멍에는 "홍교판"(虹橋板) 잔편(殘片)들이 들어있다.
매 물굽이 마다 벽면에 붉은 글씨로 암각하여 놓았다.
七曲에서 지나온 八曲을 보면 품자암과 쌍유봉이 보인다.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看
칠곡이선상벽탄 은병선장갱회간
却憐昨夜峰頭雨 添得飛泉幾道寒
각연작야봉두우 첨득비천기도한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어젯밤 봉우리에 내린 비여
나는 듯한 물줄기는얼마나 찬 것을 얻었는고
* 碧灘(벽탄) : 칠곡에 있는 獺控灘(달공탄)이라는 여울
* 隱屛仙掌(은병선장) : 五曲에 있는 隱屛峰(은병봉)과 六曲에있는 仙掌巖 (선장암)
* 飛泉(비천) :폭포
칠곡에는 달공탄(獺控灘)이란 여울이 있다. 달공탄에서 아래쪽을 보면 육곡에 은병봉과 선장봉(쇄포암)이 우뚝 솟아 보인다.
배가 칠곡으로 올라감에 은병봉과 선장봉이 돌아보듯이 솟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육곡(六曲)
六曲蒼屛繞碧灣 茅茨終日掩柴關
육곡창병요벽만 모자종일엄시관
客來倚櫂巖花落 猿鳥不驚春意閑
객래의도암화락 원조불경춘의한
육곡의 시퍼런 병풍 바위는 푸르른 물굽이를 둘렀고,
띠로 이은 집은 종일토록 사립문 닫혀있네.
나그네가 찾아와 노에 몸을 기대니 바위에서 꽃이 떨어지는데,
원숭이와 새들은 놀라지 않고 봄의 정취는 한가롭네.
* 蒼屛(창병) : 푸른병풍, 六曲에는 仙掌巖 (선장암 -쇄(日+暴)布巖이라고도 함)이라는 병풍바위가 있다
* 茅茨(모자) : 茅屋(모옥), 띠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
무이구곡은 육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쇄포암을 바라보며 휘감아돈다. 쇄포암에는 수많은 물줄기 자국이 내리뻗은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쇄포암 아래는 산을 등지고 계곡을 앞에 둔 그윽한 곳이어서 주자는 이곳에서 저절로 바위꽃이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는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였다.
쇄포암(曬布岩)과 맞은편 접순봉(接筍峰)
향성암(響聲岩)은 육곡 남쪽 계곡변 양쪽에 높은 절벽이막아 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양쪽 절벽에 메아리가 부딪치며 멀리 퍼져나간다. 그래서 향성암이라 부른다. 향성암 절벽에는 송, 원, 명 삼대의 마애석각 20여개가 있다. 이중 주희가 쓴 "서자여사"(逝者如斯)는 무이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새겨진 마애석각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세월은 이처럼 흘러가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는 말의 준말이다.
향성암 부근에서 뒤돌아 본 천유봉 전경
오곡(五曲)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오곡산고운기심 장시연우암평림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임간유객무인식 욕내성중만고심
오곡은 산이 높고 구름 기운이 깊어,
언제나 안개비에 평림(平林)은 어둑하네.
숲사이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이 없고,
뱃사공의 노래 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네.
* 欲乃聲 배에서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
* 平林(평림) : 五曲에 있는 隱屛峰(은병봉) 아래 주자가 세운
武夷精舍(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이 평림이다
* 萬古心 만고에 변하지 않는 마음 또는 근심
이 시에서 높은 산은 은병봉(隱屛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다.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을 말한다.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煙雨가 평림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 즉 주자가 수풀 속을 거닐 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는 감정을 노래했다.
갱의대(更衣臺)와 천주봉(天柱峰)
의대와 천주봉은 오곡 물가변에 우뚝 솟아있는 형세로 서로 이웃하고 있다. 갱의대 중간 벽면에는 "갱의대(更衣臺)"와 "옥황대천존(玉皇大天尊)"이란 마애석각이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오곡 주변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설에 의하면 갱의대는 위(魏) 왕자 건(騫)이 의상을 바꿔입고 천주봉에 올라 하늘로 승천하였다하여 갱의대라 부른다.
갱의대 뒷편에 서있는 천주봉은 술단지를 닮아 주담봉(酒壜峰)이라한다. 주담(酒壜)은 중국말로 술단지이다. 주위에는 만대봉(晩對峰)과 시검석(試劍石) 있다.
전면에 보이는 오곡다리를 지나 사곡으로 접어든다.
사곡(四曲)
四曲東西兩石巖 巖花垂露碧監毛 參毛
사곡동서양석암 암화수로벽람삼
金鷄叫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금계규파무인견 월만공산수만담
사곡의 동, 서쪽에 두개의 바위산이 있는데, 바위틈에 꽃은 이슬을 머금은 채 무성하네
금닭(金鷄)이 울어 아침을 여는데 보는 사람이 없고, 둥근달은 텅빈 동산에 가득하고 물은 여울에 가득차네
사곡에는 거대한 암산인 대장봉과 선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대장봉 암벽 중간의 금계동굴(金鷄洞)에는 새벽을 알리는 금닭이 있었다 하고 그아래에는 무이구곡에서 가장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대장봉과 선조대 절벽에 핀 꽃은 이슬을 머금고 있고 새벽에는 금닭이 울고 밤에는 달빛이 와룡담에 그윽히 비치는 사곡의 정경을 읊었다.
사곡으로 돌아들면 거대한 대장봉(大藏峰)이 앞을 가로 막는다. 대장봉은 도가(道家)가 대장경(大藏經)을 숨겨둔 곳이라 하며 천길 절벽같이 우뚝솟아 웅장하다. 절벽에는 두개의 작은 동굴이 있는데 위굴은 "계과암(鷄窠岩)"으로 굴내에는 천년된 벼가 썩지않고 있다. 어느 때 누가 왜 놓았는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아래동굴은 "금계동(金鷄洞)"으로 굴내에는 홍교판(虹橋板)과 선관(船棺)이 있다. 대장봉 바로 와룡담(臥龍潭)은 물빛이 푸르고 너무 깊어 깊이를 알수가 없다고 한다. 대장봉 벽면에는 "류하비취(流霞飛翠)"와 "금계동(金鷄洞)"이라 새긴 마애석각(摩崖石刻)이 있다.
무이산(武夷山)은 원래 무이산(武彛山)이라 하였는데 옛날 이 산에 신인(神人) 무이군(武夷君)이 살았다하여 무이산(武夷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무이산 계곡은 一曲 승진동(升眞洞), 二曲 옥녀봉(玉女峰), 三曲 선조대(仙釣臺), 四曲 금계동(金鷄洞), 五曲 무이정사(武夷精舍), 六曲 선장봉(仙掌峰), 七曲 석당사(石唐寺), 八曲 고루암(鼓樓巖) 九曲 신촌시(新村市)이다.
뒤돌아 본 대장봉(大藏峰)
선조대(仙釣臺)는 사곡 북쪽에 있으며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라 한다. 선조대 절벽위 바위틈에는 낚시대 한개가 비스듬히 나와있다. 천년을 두고 썪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 무슨 물건인지 알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강태공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뒤 돌아본 선조대(仙釣臺), 조어대(釣魚臺)라고도 부르며 물가를 향해 우뚝 솟아오른 형상은 마치 신선노인이 삿갓을 쓰고 물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주위에는 대장봉(大藏峰), 선방암(仙榜岩), 소장봉(小藏峰), 와룡담(臥룡潭) 등이 있다.
삼곡(三曲)
三曲君着架壑船 不知停櫂幾何年
삼곡군착가학선 부지정도기하년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상전해수금여허 포말풍등감자련
삼곡에서 그대는 골짜기에 매어 둔 배를 보았는가,
노젖기를 그친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같고 바람앞 등불 같은 우리 인생이 가련하다.
ㅁ架壑船棺(가학선관) '골짜기에 설치된 배 모양의 棺'이라는 뜻
三曲에는 小藏峰이라는 암벽이 있는데 이 절벽 틈에 배 모양의 나무관이 있다
가학선관은 虹橋板(홍교판-무지개 다리 판)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설에는 신선이
승천하면서 배에 유골을 담아 이 곳에 두었다고 하는데 주자는 고대 남방의
소수민족이 남긴 유골을 보관한 관으로 보고 있다.
ㅁ泡沫風燈(포말풍등) 물거품 같고 바람앞의 등불같은
삼곡에는 험준한 암벽으로 된 소장봉(小藏峰) 아득한 절벽 위 틈 사이로 배모양의 목제관이 있으니 홍교판(虹橋板)과 가학선관(架壑船棺)이다. 주자는 가학선관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읊고 있다.
소장봉(小藏峰)
소장봉 절벽 상단부를 확대한 사진, 가학선관(架壑船棺)을 올려 놓았던 홍교판(虹橋板)이 보인다.
가학선관(架壑船棺)은 배모양의 목관으로 인적이 닿지않는 절벽에 매달거나 암굴에 놓았다. 무이산 선관은 지금으로부터 3,800년전 당시 중국 상(商)나라 시기에 복건성 원주민이었던 월족(越族)의 문화 유산이다. 목관의 재료는 모두 무이산에서 생장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가학선관은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로서 배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다. 가학선관(架壑船棺)은 골짜기에 설치한 배모양의 관을 말하고 홍교판(虹橋板)은 무지개 다리판이란 의미로 선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목판이다.
푸젠성(福建省) 지역은 고대 월족(越族)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월인들은 키가 왜소하고 얼굴이 짧았으며 코가 넓고 눈은 둥글고 컸다. 그들은 강을 끼고 살았고 배와 뗏목을 모는데 능숙했다. 또한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새기는 풍속이 있었다. 진(秦)나라는 푸젠성 지역에 군(郡)을 설치하였지만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기원전 202년, 한(漢) 왕조 시기에 유방이 푸젠지역을 민월국이라 하여 월(越)나라 구천(句踐)의 후손인 무제(無諸)를 왕으로 봉(封)하였다. 무제는 우이샨(武夷山)에 성을 건설하였다. 한무제(漢武帝) 즉위 첫해(기원전 110년)에 대군을 파견하여 민월국을 멸망 시켰다.
현재 복건성의 약칭은 민(閩)이다. 민은 뱀을 토템으로 하는 민족의 후예촌락을 가리킨다. 무이산에는 실제 많은 종류의 뱀이 있다. 호텔촌이 있는 무이산국가여유도가구(武夷山國家旅游度假區) 우리말로 말하면 무이산관광특구의 상점 중에는 커다란 뱀이 들어있는 뱀술 전문점이 많다.
소장봉을 돌아들면 전방의 시야가 확 트이고 멀리 옥녀봉(玉女峰)이 올연(兀然)히 서있다.
이곡(二曲)
二曲停停玉女蜂 揷花臨水爲誰容
이곡정정옥녀봉 삽화림수위수용
道人不作荒臺夢 興入前山翠幾重
도인불작황대몽 흥입전산취기중
이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이여,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도인은 황대몽(荒臺夢)을 다시 꾸지 않는데,
흥에 겨워 앞산에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玉女蜂(옥녀봉) : 이곡에 있는 기둥바위 꼭대기에는 나무가 자라고 절벽은
옥돌을 조각한듯 윤기가 나며 소녀가 물가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형상이다.
전설에 옥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는데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무이구곡의 절경에 매료되어 돌아갈줄 모르고 지내다 대왕(大王)을
만나 자식을 낳고 인간세계에 살았다.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에게 고하자, 옥황상제는 철판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게 했다.옥녀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철판도인은 마법으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변하게하여 계곡의 양쪽에 두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鐵板障)이란 병풍 바위(障)가 있는데, 철판
도인이 대왕봉과 옥녀봉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面鏡臺)를 두어 서로 얼굴을 비춰보게 하였다고 한다.
*荒臺夢 (황대몽): 荒臺는 페허가 된 옛 누각, 즉 옥녀의 옛 낭군인 대왕은 옛날 영화를 다시 꿈꾸지 않는데 옥녀만 머리에 꽃을 꼿고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곡에는 옥녀봉이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옥녀봉 아래에는 목향담(木香潭)이 있고 옥녀봉 왼쪽에는 면경대(面鏡臺)가 있어 이곡의 산수는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이 수려하다. 주자의 이곡가는 이러한 경치를 읊은 것이다.
옥녀봉(玉女峰)과 면경대(面鏡臺)
옥녀봉 정상에는 나무가 자라고 절벽은 광택이 나서 마치 옥석을 조각한 모습으로 절색의 소녀가 맑은 물가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형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옥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하늘에 살던 옥녀는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어 돌아갈 줄을 몰랐다. 우연히 대왕(大王)과 알게되어 서로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고 인간세상에 살았다. 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고하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철판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도록 했다.
옥녀는 대왕과 같이 인간세상에 살고자하여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철판도인은 마법을 써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만들어 계곡의 양쪽에 두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鐵板嶂)이란 병풍바위가 있는데 철판도인이 대왕봉과 옥녀봉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面鏡臺)를 두어 서로 얼굴을 비춰보게 하였다고 한다.
면경대(面鏡臺)와 두무봉(兜鍪峰)
옥녀와 대왕과의 애뜻한 전설이 전해져오는 면경대에는 하단에 "鏡臺"라 새겨져 있고 왼편으로 두무봉이 보인다. 두무(兜鍪)는 투구라는 말이다.
뒤돌아 본 옥녀봉 전경
좌로부터 경대(鏡臺), 옥녀봉(玉女峰), 철판장(鐵板嶂) 전경, 우측 천길 단애(斷崖)가 철판장이며 사진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뒤로 대왕봉(大王峰)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일곡(一曲)
一曲溪邊上釣船 灣亭峰影潛晴川
일곡계변상조선 만정봉영잠청천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홍교일단무소식 만학천암쇄취연
일곡 시내가에서 낚시배에 오르니, 만정봉이 맑은 물속 푸른
하늘에 잠겨있네.
무지개 다리는 한번 끊어진 후 소식이 없고, 골골마다 암봉에는
비취 빛 안개가 자욱하네.
* 灣亭峰(만정봉) : 일곡의 북쪽에 대왕봉이 있고, 대왕봉 왼쪽에 만정봉이 있다
전설에 神人(신인) 武夷君(무이군)이 신선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함
* 虹橋(홍교) : 무지개 다리, 전설에 武夷君(무이군)이 허공에 홍교를 놓아
신선들을
초대했다.* 萬壑千巖(만학천암) : 수많은 골짜기의 바위마다
일곡의 북쪽에는 대왕봉이 솟아있고 대왕봉 왼쪽에 만정봉(幔亭峰)이 있다. 만정봉은 해발 500m 정도의 산으로 도가(道家)의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가학선관의 흔적이 있다.
일곡은 만정봉의 경치를 설명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공자 이후 학문이 끊겨져 사람들이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곡변 마애석각들 구곡계(九曲溪), 점입가경(漸入佳景), 지동인정(智動仁靜), 수광(水光)
대왕봉(大王峰)은 위왕봉(魏王峰), 사모암(紗帽岩)으로도 부르며 일곡 북쪽에 있다. 높이는 300여미터지만 정상부가 크고 허리부분은 가늘은 형상에다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있어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모습이 영웅의 형상이다. 일곡에서 줌으로 당겨찍은 대왕암, 다음날 수직으로 난 틈새 등로로 정상에 올라본다.
남쪽에서 바라본 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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