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6일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유인촌(柳仁村) 장관, 김장실(金長實) 1차관(현 예술의전당 사장), 신재민(申載旻) 2차관(現 1차관)이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1년을 돌아보며 한마디씩 소감을 밝혔다. “새 정부 출범하고 1년 뒤까지 장·차관이 다 살아남은 부처는 소수”라는 자축도 나왔지만, 요점은 “우리 목표는 ‘정상화’였다”라는 문장에 압축돼 있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부터 노무현(盧武鉉) 정부까지 10년간 좌편향으로 흘렀던 시각과 인사(人事), 시스템을 반대로 돌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배어 있었다. 유 장관은 농담처럼 “(이명박 정부) 5년 가지고 그게 될까요?”라고 기자들에게 묻기도 했다.
문화부 수장으로서 유인촌 장관은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상징을 만들고 싶어했다. 문화부 예산을 역대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하나요, 이어령(李御寧) 전 장관보다 하루라도 길게 장관을 하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그는 결국 둘 다 이뤘다.
유인촌의 문화부 2010년 예산은 약 3조7000억원으로 전체 나라 살림의 1.12%를 차지한다. 박지원(朴智元) 장관 때의 기록을 넘어서는 최대 규모다. 또 이어령 장관이 가지고 있던 최장(最長) 재임 기록(23개월16일)마저 갈아치웠다.
드라마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로 MB와 인연
지난 1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유인촌 장관이 올해 국립극장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이날 정책 패널로 참여한 서연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런저런 제안을 하며 “‘장수(長壽) 장관’이라 드리는 말씀입니다”라는 꼬리표를 달자 유 장관은 “네, 제가 ‘단관(短官)’이 아니니까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가볍게 농으로 받아쳤다.
장관 유인촌은 왜 그토록 장수하는 것일까. 문화부 국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웃어른(MB)과 비슷한 데가 있다. 부지런하고 일 중독이다. 토·일요일, 밤낮이 없다.” “문화부에서 20년 넘게 장관을 20분 모셔봤는데 가장 현장형이다. 유 장관만큼 현장에 많이 가는 장관이 없었다.” “소탈하다. 처음에 1급을 다 바꾸는 인사 때문에 좀 부딪혔는데 이젠 유연해졌다.” 이들은 대부분 “유 장관이 6월 지방선거까지는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장관의 장수 비결(秘訣)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에 있는 것 같다. 유인촌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은 1989년 방영된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부터 시작된다.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은 배우 유인촌이 출연하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팬이었다. 유인촌과 최불암 등 ‘전원일기’ 주역들은 정 회장의 초대로 현대그룹 임원들과 식사를 하고 한강 둔치에서 배구도 하면서 서로 안면을 텄다. 그러다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을 모델로 한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유인촌이 그 배역을 맡으면서 둘 사이가 아주 가까워진 것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극이든 배우에겐 인물 분석이 기본이다. 유인촌은 ‘야망의 세월’을 준비하면서 이명박이라는 인간을 입체적으로 또 깊게 살폈다.
유인촌 장관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나란히 앉게 됐는데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이명박 회장이 ‘꿈이 하나 있다’면서 ‘시베리아를 개발해 천연가스와 석유를 파이프로 서울까지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놀랐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국회의원 시절 이명박은 유인촌이 공연할 때 따로 알리지 않고 극장에 와 공연을 보고 갈 정도의 사이가 됐다고 한다. 서울시장이 된 다음에는 유인촌에게 초대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겼다. 중앙대 연극과 교수였던 유인촌은 휴직하고 그 자리에서 2년여 동안 문화행정 경험을 쌓았다. 처음엔 말썽이 많았던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재생 프로젝트, 버스 중앙 차로가 핵심인 교통개편 등을 옆에서 지켜봤고 “욕을 먹어도 할 것은 한다”는 추진력도 배웠을 것이다.
취임 초 산하기관장 사표받고 MB 격려받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문화체육관광부를 맡게 된 유인촌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자리에 섰다. 당시 통합민주당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유 후보자는 ‘문화체육관광부’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그만큼 그에겐 ‘배우 유인촌’의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인사청문회에서는 140억원대의 재산 형성 과정을 캐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중 ‘재산 1위’인 유인촌 후보자는 ‘배용준을 보라’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자 “내가 20년 전엔 지금의 배용준과 맞먹을 정도였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적절하지 않았다. 국민께 죄송하고, 언행을 더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연극계를 위해 때가 되면 재산을 출연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한나라당 장윤석(張倫碩) 의원이 “연극배우인데 지금 생각나는 대사(臺詞)가 뭐냐”고 물었다. 유 후보자는 ‘돈키호테’의 대사를 즉석에서 읊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곧 있을 어떤 싸움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취임 보름 만에 싸움을 촉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표를 내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시그널이었고, 실제로 많은 문화부 산하 기관장이 사퇴했다. 김정헌(金正憲)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金潤洙)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은 사퇴 불가를 외쳤고 일부 언론에서는 ‘유인촌이 완장을 찼다’ ‘MB 정부의 괴벨스’라며 공격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당시 유 장관을 격려했다고 한다. MB 입장에서는 그가 처리한 일들이 ‘욕을 먹어도 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교체할 만한 시빗거리 없어
유인촌 장관의 장수 배경 중 또 하나는 과(過)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의 실책이라면 2008년 국정감사장 욕설 파문이 있기는 하다. 국정감사 첫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민주당 이종걸(李鍾杰) 의원과 유인촌 장관은 가벼운 설전을 벌였다. 이종걸 의원이 유 장관을 “(이명박 정부의) 실세 장관”이라고 부르자 유 장관이 손사래 치며 “실세라니요. 이종걸 의원께서 저를 허수아비 장관이라고 하셨잖아요”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사건은 국감 마지막 날 터졌다. 이종걸 의원이 “국민 사기극으로 정권 잡은 이명박, 장관, 차관,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 모두는 이명박 휘하다. 졸개들”이라는 발언을 해 정회(停會) 소동이 빚어졌다. 화가 난 유 장관은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자 “찍지 마 씨~, 성질 뻗쳐 정말”이라고 막말을 했다.
유 장관의 이 발언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욕설)”로 처리돼 보도됐다. 신문보도에서 이런 표현은 관행상 육두문자(肉頭文字)에 가까운 욕설일 경우에 사용한다. 방송도 부적합하다는 뜻으로 이 대목의 발음을 지운 채 방영했다.
유 장관은 그러나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억울하다”고 했다. “보도된 것과 달리 난 ‘씨×’이라고는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문화부 관계자는 “관련 동영상을 10번 넘게 돌려보면서 들었는데 ‘씨~’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 장관은 ‘욕설 파문’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 사과하고, 국회 사진기자단을 별도로 방문해서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그냥 ‘씨’였는지 아니면 욕설인 ‘씨×’이었는지 분명하게 가리고 싶었던 것 같고, 그것만큼은 억울했던 모양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국감 현장에서 문화부 장관의 발언으로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국감으로 이런 홍역을 치르고 나서 유인촌 장관은 농담처럼 “장관이 이렇게 힘든 자리인 줄 알았으면 국회의원을 할 걸”이라고 했다. 35년간 배우, 그것도 주인공만 한 유인촌 장관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따금 ‘말실수’를 한다. 그는 “문화부 직원들이 ‘너무 나서지 마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청담동 집까지 걸어서 퇴근할 때도
유인촌 장관은 “내 인생은 비극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타고난 팔자대로 결국 가는 것이라는 얘기다. 취임 초기 문화부 직원들에게 그는 “나를 장관으로 부르지 말고 관장으로 부르라”고 했다. 1952년생 과장 11명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고시 출신이 아닌 조창희(趙昌熙) 국장을 종무실장으로 기용하는 등 진용을 대폭 개편했을 때는 부서별로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취지를 설명하고 다독이는 등 보스 기질도 발휘했다. 유 장관은 현재 문화부 업무를 두루 알고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문화부 장관으로서 공(功)도 많다. 지적재산권 감시국으로부터 탈피한 것, 관광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 문화예술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을 활성화시킨 것, 200개의 사회적 기업 육성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이 유인촌 장관의 업적으로 꼽힌다.
회의 자리에서 그는 뭘 강조할까. 문화부의 한 국장은 “‘죽을 만큼 해라’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고 했다. 해마다 1월은 쉬는 달인데 유인촌 장관은 지난 1월 현장을 돌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고 권한을 주는 스타일이다. 유인촌 장관도 이 대통령이 믿고 맡기는 그룹에 속해 있다. 그러니 이 대통령은 유 장관이 설령 욕을 먹더라도 웬만해서는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벌레로 비치듯이 유인촌 장관도 일에 몰입하는 스타일에서는 빼닮았다.
유인촌은 대학 2학년 때 탤런트 시험에 합격했다. 1974년부터 1993년까지 주인공만 했는데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1980년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댁 둘째 아들 용식이 역을 맡을 때 그는 30세였고, 이 드라마가 끝날 땐 52세가 돼 있었다. 청년은 이장이 됐고 전체 이야기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유인촌은 ‘전원일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는 “농촌 청년들이 좌절할까 봐 싫었다”고 했다. 유인촌은 다큐멘터리 프로 ‘역사 스페셜’ 진행자로서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도 쌓았다.
톱스타였지만 성격은 소탈하다. 평소에는 거의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강남구 청담동 집까지 퇴근할 때도 잦다. 가죽재킷에 청바지 차림도 즐긴다. 마라톤·승마·스노보드·펜싱 등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유 장관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를 잘 써야 한다”며 “걷는 것도 배우 훈련”이라고 했다.
“정동예술단 노조 내가 만들어 줄 것”
그는 비극을 좋아한다. “주어진 팔자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모습에서 장엄함을 느낄 수 있고, 아무리 해도 결국 팔자대로 쓰러지고 마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유인촌은 “나에게 있어 연극은, 배우는 운명이고 팔자다. 신께서 맡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배우로 돌아갈 생각도 하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유인촌은 누가 그의 단점을 묻자 곧바로 “인정이 없어 보이고,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답했다. 요즘 유 장관도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
유 장관은 지난 1월 국립극장 업무보고 때 모처럼 흥분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의 법인화를 두고 노조를 중심으로 단원들이 저항하자 그들을 다 불러모은 자리였다. 그는 속사포처럼 물었다. “몇 시에 출근합니까?” “개인적으로 연습하나요?” “밤늦게까지 연습하십니까?” “여러분이 대한민국 1등입니까?” “자신하나요?” “스스로 마음에 드십니까?” “정동예술단 1년에 400회 공연하면서 얼마 받는 줄 아세요? 거긴 노조 만들어야 해요. 내가 만들어 줄 겁니다.”
유 장관은 “몸이 늙은 게 아니라 정신이 늙은 게 안타깝다”고 단원들을 질타했다. 노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내가 방송노조 초대 위원장이었어요. 내가 했던 노조는 상급단체도 없어요. 우리가 대장이지. 노조가 예술성을 위해 가야지. 여러분 공연 보면 가장 안타까운 게 뭔 줄 아세요. 대부분 내가 공연 좀 해 줄게, 이런 느낌으로 연기하고 연주해요. 주인공 한둘만 죽을 둥 살 둥하고. 내가 새벽 6시에 여기서 2시간씩 한국무용 배우고 간 사람이에요.”
유 장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예술가는 철저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으면 1년 동안 공연을 안 올려도 좋다”며 “대한민국 일류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나가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현장 체질인 이런 문화 장관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동관(李東官) 청와대 대변인이 한때 다음 문화장관으로 거론됐지만 유인촌 장관은 아직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카드가 없어 ‘막히면 손 빼라’ 식으로 계속 맡긴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 장관은 “‘장관을 그만두면 배우 생활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아니다. 배수의 진을 친 기분으로 지금 자리에 충실하고 있다”고 했다. 문화부의 한 기관장은 “대통령이 잘 알고 믿을 수 있어 당분간은 교체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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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네티즌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최 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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