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賞 春
問 春 理 屐 向 城 東 (문춘리극향성동) 봄을 찾으러 나막신 끌고 성 동쪽을 가니
眼 界 豁 然 胸 海 空 (안계활연흉해공) 시야가 트이고 가슴이 바다처럼 뚫리네
男 子 有 詩 兼 有 酒 (남자유시겸유주) 사나이에게 시가 있고 술도 겸하였나니
天 時 無 雨 又 無 風 (천시무우우무풍) 하늘에는 비도 없고 또한 바람도 없어라
草 涵 遠 水 紗 橫 綠 (초함원수사횡록) 풀들은 물기 머금어 푸른 비단 빛이 나고
花 對 斜 陽 錦 似 紅 (화대사양금사홍) 꽃들은 석양을 마주하여 비단처럼 붉네
百 鳥 應 知 人 闃 寂 (백조응지인격적) 온갖 새들은 사람 기척이 없는 것을 알고
聲 聲 喚 出 晩 林 中 (성성환출만림중) 저녁 무렵의 숲에서 온갖 소리 지저귀네
<어 휘>
* 賞 春 : 봄을 감상함
* 理 屐 : 나막신을 신고 거동함
* 遠 水 : 먼곳에 있는 물
* 闃 寂 : 고요함, 쓸쓸함
* 聲 聲 : 소리들
* 晩 林 : 저녁 숲
<감 상>
지은 이는 윤봉길 (尹奉吉, 1908~1932), 본명은 우의(禹儀)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 나, 6세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1세에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교를 자퇴하였다. 그 후에 근처의 유학자 성주록(成周錄) 선생에게서 중국 고전과
한학을 수학하였다.
후에 고향에서 농민운동단체를 이끌다가 중국으로의 망명길에 올랐다. 1931년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하며,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개최한 상하이
전승기념 겸 천장절 경축식에서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측의 참석 요인들을 살상해 세상을 경악
시켰다. 공은 그 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이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 30분에 일본 가나자와의
육군형무소에서 25세의 젊은 나이로 애석하게도 순국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자주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신 많은 선열들 중에서도, 비교적 짧은 생애를 바친 어른이
시며 폭탄을 투척하는 무력 항쟁에 임한 분이면서도,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한시에도 능하신 분
이시다.
위의 한시도 고향에서 봄을 보내면서 그 소감을 칠언 율시로 표현하셨다. 시를 살펴보면 형식은 칠언율시
평기식(平起式)이며, 운자는 東 운목중에서 東空風紅中을 사용하셨다. 둘째 련(頸聯)인 3구와 4구, 셋째 련
(함련)인 5구와 6구 간에 대구(對句)를 멋지게 구성하면서, 봄날의 풍경과 소회를 세련되게 표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