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식인 감독이 아니다.” 켄 로치와 함께 영국의 진보적 영화를 대표하는 지적인 감독으로 ‘분류’되는 마이크 리Mike Leigh는 자신의 영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반응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든, 마이크 리의 영화들은 적확하고 냉철한 사회비판의 기능을 해왔다.
그 마이크 리의 경력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런던의 왕립극예술아카데미를 마쳤지만 학위인전을 거부당했을 만큼 ‘학생 마이크 리’는 모범생은 아니었고, 1971년 첫 영화 <쓸쓸한 순간들>이 대끔 시카고 영화제와 로카르노 영화제의 대상을 수상했지만, 텔레비전에서 10여 년을 보냈다.
그의 극장 재데뷔작은 1988년 <커다란 희망>. 베니스 영화제는 비평가상으로, 유럽영화상은 ‘1988년 유럽영화’ 선정으로 그의 귀환을 반겼다.
<인생은 달콤해>(1990), <네이키드>(1992)로 이어진 그의 영화는 영국 노동계급의 생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랑의 감정조차 용납되지 않는 노동계급 젊은이의 공황적 정신상태를 폭력적으로 그려낸 <네이키드>는 1993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남자연기상(데이비드 튤리스)을 받아냈다. 1993년, 1994년 연 이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따낸 배급사 시비 2000이 <비밀과 거짓말Secrets & Lies>의 제작비 전액을 대는 계기가 됐다.
마이크 리는 배우들을 위한 감독이기도 하다. 마이크 리 영화는 배우들에게 연기상 수상 보증 수표와 같다. 비밀은 독특한 작업방식. 그는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단순히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배역의 삶을 ‘살면서’ 직접 그 역할을 창조해가도록 요구한다. 감독은 기본 개념과 얼개를 던져놓고 배우들이 자신의 대사와 세부연기를 능동적으로 채워가게 한 다음 시나리오를 완성해왔다. <비밀과 거짓말>에서 블렌다 블래신은 그런 모든 출연자들을 대표해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들은 런던 북부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부인노동자 신시아의 남루한 삶을 중심에 놓고, 현대 영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정치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한 흑인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그의 양녀 호텐스는 장례식 직후 자신의 생모 찾기에 나서고 뜻밖에도 어머니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만난다. 흑인과 백인이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마이크 리는 그 가족 안에 얼마나 더 많은 벽과 강이 있는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진사인 신시아의 오빠가 누리는 중산층의 생활과 신시아의 박탈감, 거리청소부로 일하는 딸과 전문직 여성이 된 호텐스를 비교하는 신시아의 어쩌면 교활한 시선 따위가 그 일부를 이룬다. 주인공들이 그런 비루한 일상을 극복하고 이뤄낸 것이기에 가족의 화해, 인종갈등과 계급격차의 해소 등의 결론이 도덕교과서식 훈계로 박제화하지 않을 수 있다. <네이키드>에서 유보된 영국식 유머가 거기 잔재미를 더했다.
감독은 1992년과 달리 낙관주의자가 된 것일까. “세상에는 비관적인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희망적이다. 또 그것이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비밀과 거짓말> 역시 그 증거인 셈이다. 그렇게 그는 거대한 영화산업의 시장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과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