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 화장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듯 거실을 둘러본다. 어린 숙녀의 첫 화장처럼 낯설고도 환한 벽면과 마루판 구석진 곳도 보인다. 방금 마무리를 끝낸 집의 얼굴이 썩 마음에 들어 여행 갔다 돌아온 자식을 반기듯 구석구석 살핀다. 땟자국이 줄줄 흐르던 싱크대며 더러운 화장실 앞에서도 한 올 흐트러짐 없음을 예상했지만, 청소를 마치자 야무진 꾼의 솜씨는 기대 이상으로, 아껴두었던 신작인 양 하나의 작품이다.
십 년 묵은 낡은 집을 새집으로 만든 꾼의 목소리가 쇠헤라(도배시 벽면 모서리나 귀퉁이 본드칠에 사용하는 도구)처럼 단단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제가 못 참습니다.”
삼 년 동안 두 번의 이사를 했다. 살고 있던 집의 층수가 낮아 햇살이 부족한지 화초가 잘 자라지 않았다. 화분이 많은 집에는 일조량이 중요하다. 기회를 보던 차에 남향의 좀 높은 층에 나온 집을 잡아두었다. 당장은 이사 갈 수가 없었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았고 들어갈 집에는 세입자 기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살던 집이 팔리고 나서도 세입자 기간 보장으로 인해 전세로 있어야 했다.
드디어 만기가 되어 내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처럼 평수를 늘려서 간 것은 아니지만 십 년이나 지난 집이니 그냥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전에 살던 새댁은 얼굴 화장에는 공을 들였지만, 청소에는 젬병이었는지 창틀에는 몇 년간 의 먼지가 쌓여 있고 싱크대 하수구에는 누런 땟국이 막혀 있었다. 마루판은 아이들이 자동차를 끌며 놀았는지 빠끔한 곳 없이 찍혀 있어 걷어내고 마루판을 새로 해야 할 판이었다. 묵은 때와 낙서, 스티커로 엉망이 된 벽이 눈에 제일 거슬렸다.
마음은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콩 튀듯 분주했다. 싱크대도 새로 설치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따라주지 않았다. 방과 거실 전체 도배와 마루판만 갈기로 했다.
직업상 인테리어 업체까지 소개해 주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인연이 있던 부부 도배사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 아주 잠깐 망설였다. 일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리는 것이 좀 편해야 하는 법이다. 가끔 고객을 소개하면 까다롭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공사 기간을 항상 넉넉하게 요구했고 조금의 할인을 요구하면 조목조목 반박하며 합리화하는 바람에 소개해도 성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상대가 평당 단가가 비싸다고 얘기하면 본인은 실측해서 나온 대로만 평수를 계산하지만 다른 업체는 평당 단가를 낮게 부른 대신 실측보다 평수를 두어 평씩 더 부풀려 계산한다고 대꾸했다. 그 말의 진심을 믿는 사람은 괜찮지만, 눈앞의 이익만 계산하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당일 이사를 나가고 들어오는 중에 더러운 벽면만이라도 도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급한 마음에 부탁하면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본인은 그렇게 쫓기듯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짐이 들락거리는 곳에서는 집중력 떨어지고 도구사용도 마음대로 안 되기에 나쁜 작업환경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런 형편을 알지만 급하니 부탁을 한다고 매달리다시피 해도 ‘죄송합니다.’란 정중한 한마디로 전화를 끊는다. 다급한 마음도 몰라준다 싶어 ‘다시는 소개를 해주나 봐라.’하고 다른 곳에 부탁한다. 하지만 주인의 눈을 피해 천장 도배는 빼먹고 안방 파우더룸의 화장대는 들어내지도 않고 대충 눈속임만 한 벽을 볼 때면 손끝만은 야무진 부부에게 또다시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 도배와 마루판을 부탁했다. 실측을 끝내고 견적을 뽑더니 그동안 소개해 준 면도 있어서 싸게 해드린다고 말씀하신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베란다의 장판은 서비스로 깔아주시면 안 되겠냐는 애교 섞인 물음에 추가 금액 5만 원이라고 풀붓 씻어내듯 말한다. 무안한 마음에 급히 나오며 “사장님 꼼꼼하게 잘 부탁드려요.”라고 했더니 대답이 도배지를 이음매 롤러로 누른 듯 정연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제가 못 참습니다.”
출렁출렁 좁다란 우마가 흔들린다. 꾼은 한 걸음씩 발을 옮겨 딛는다. 한 손으로 모시 수건 던지듯 벽지를 밀고 다른 손으로는 정배솔 을 춤추듯 쓸며 휘젓는다. 흡사 외줄 타기를 하는 광경이다. 창공을 보듯 천장을 향한 눈빛은 멀고 낯빛에는 신명이 실렸다. 그의 아내는 추임새를 넣듯 옆에서 도배지를 들어 올려가며 각이나 이음새를 보아주고 맞춤한 소리를 한다. 부부 도배꾼은 간식을 챙겨간 구경꾼쯤은 안중에도 없이 작업을 한참 이어갔다. 왠지 노동한다기보다는 일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배지처럼 깨끗하고 환한 얼굴 표정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구석구석 틈새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단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도배 작업이다. 마루판과 도배지의 마무리 선에는 투명 실리콘으로 표시 하나 없이 마감처리를 해놓았다. 빌트인 가구를 모두 들어내고 구석 자리까지 걸레받이 작업이며 도배 작업을 완성해두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작업한 정성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돈이 된다 싶으면 놓치기 싫어서 대답부터 하고서 짧은 기간 두루뭉술하게 하는 작업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열정을 다한 꾼의 오기가 느껴진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신명 나게 하는 자긍심이 인테리어를 마친 실내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그들도 작업을 마무리한 뒤, 집을 한 바퀴 돌아보며 지금의 내 마음처럼 뿌듯함을 갖고 행복했겠지 싶다.
꾼과 전문직업인의 차이는 즐긴다는 데 있지 않을까. 가끔 진정한 꾼을 만날 때가 있다. 소리판에서는 소리꾼들이 삶을 소리로 풀어낸다. 춤판에서 춤꾼은 온몸이 젖도록 춤을 춘다. 놀이판에서는 놀이꾼들이 신명에 취해 놀음에 빠져든다. 꾼은 더 이상 하대의 말이 아니라 영혼까지 즐긴다는 의미다. 왠지 도배사, 산후관리사, 가정관리사니 하는 호칭은 전문직업인의 책무와 노동의 존중에 중점을 둔 것 같다. 꾼은 열정적이며 자긍심이 강하면서도 본인이 기꺼이 즐겨한다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 전문직업인이 많은 사회도 좋지만, 꾼의 신명까지 보태어진 사회가 좀 더 밝을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즐기며 완벽하게 신심을 다해 일하는 자긍심 강한 도배꾼 과의 만남으로 어설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꾼과의 만남은 오랜 인연으로 이어져 갈 것만 같다.
첫댓글
다녀가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