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고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간밤의 비상계엄령 선포가 '해프닝'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군대를 안 가봐서 허술하게 진행했다며 대통령을 조롱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무능력한 대통령이 계엄령을 야무지게 실시하지 않아서 안타까운가?
그의 무지 덕분에 3시간도 안 되어 계엄령이 해제되어 너무나도 다행이다. 어제밤 나는 페북에 간단한 글 하나 올리고 잠자리에 들 예정이었다. 글을 포스팅하자마자 피드에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가 마구 쏟아져서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언론 기사를 검색했다.
이미 대통령이 발표를 해버렸다. 박근혜는 촛불 집회 시기에 비상계엄령을 만지작 했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탄핵 이후 계엄령 준비 문구가 나온 것 만으로도 나는 분노가 일었지만 어찌되었든 실시하지 않았으니 그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있구나 싶었다.
기존의 사악한 대통령들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악랄하다고 보여지는 이는 결국 한밤중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의 봄> 영화를 본 천만이 넘는 시민들 어느 누구도 실제 삶에서 볼 거라고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은 비상계엄령을 말이다.
비상계엄령 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조롱은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 제대로 하면 괜찮다는 뜻인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고약한 심보를 가진 그가 울분을 못이겨 제대로 절차를 밝고 잔뜩 준비해서 다시 계엄령을 내릴까봐 나는 사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어제 밤 실시간 뉴스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섭다는 공포감까지 들었다. 79년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기에 나는 아무 기억이 없다. 학창 시절동안 당시 상황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 여러 경로를 통해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어떤 상황이었는지 막연한 감 뿐이었다.
어젯밤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비상계엄령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선포와 함께 무장한 군대와 경찰이 움직이고 국회 출입을 막으려는 시도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계엄령 해지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긴박하게 국회 안으로 들어가고 이들을 저지하게 위해 공수부대가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책에서만 보던, 글로만 읽던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찔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의사당 복도에서 안으로 진행하려던 공수부대와 대치하고 있던 보좌관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특수부대의 무력이 결국 그들을 진압하고 국회를 해산하게 될까봐서였다. 종일 수업이 있어서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늦은 밤에 국회의사당으로 직접 간 시민들도 있는데 집에서 편히 있는 나는 적어도 계엄령 해제안이 가결되고 대통령의 해제 선언까지 실시간으로 봐야하는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3시가 넘어가면서 체력의 한계에 도달해 대통령의 담화는 듣지 못하고 잠들었다. 가결안을 대통령실에 보낸 후 2시간이 넘어가면서 나는 대통령이 계엄령 해제를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잠들게 된 것이다. 몇 시간 못 자고 눈을 떴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대통령의 해제가 있었다는 기사가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어젯밤일이 별게 아닐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일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젯밤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억지로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너무 생생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어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21세기에 비상계엄령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몇 달전 국방부 장관도 동일한 얘기를 거침없이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대통령에게 제언한 이가 그라고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을 이럴 때 쓰려고 배웠나보다.
한 번이 어렵지 두번부터는 쉽다. 법을 전공했고 검찰 총장까지 했던 사람이 법을 몰라 계엄령 선포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까? 대충해도 별 문제 없으리라 자신만만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계엄령 해제를 발표하면서 그에게서 반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은 두 번째 계엄령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제발 무능해서 계엄령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말은 하지말자. 비록 엉성했다 하더라도 계엄령 선포를 한 것 자체가 헌법을 유린하고 불법이므로 법에 의해 처벌받을 일이라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비상계엄령 선포는 국민과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니 두번다시 이땅에서 일어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넘쳐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