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아들 시신사진공개 2003-07-25 05:05 [이종국]
[앵커멘트]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의 두 아들이 사흘전 사살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진이 미군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의 사망 이후에도 총격 사망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불안과 긴장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김응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미군이 사살했다고 공개한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 사진입니다.
생전의 모습과 달리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랐고, 얼굴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미군측은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과 그래픽도 동원했습니다.
미군측은 이들의 사살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자 이들이 사살된지 이틀이 지나서야 시신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녹취: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그들은 숨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라크 국민들이 확인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항이 잦아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보복공격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다이가 이끌던 페다인 민병대 소속이라고 자처하는 무장대원들은 아랍 위성 TV와의 회견에서 복수를 다짐하고 나섰습니다.
[녹취:페다인 민병대원]
"미국에서 해방될 때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임을 천명합니다"
실제로 후세인의 두 아들이 숨진 이라크 북부 모술 부근에서 미군 병사 3명이 매복공격을 받아 숨졌습니다.
이라크전쟁이 시작된뒤 숨진 미군은 158명으로 늘었습니다.
바그다드에서는 미군이 검문소로 돌진하는 차량에 총격을 가해 이라크인 2명이 숨졌습니다.
[녹취:총격 목격자]
"차가 바로 서지 않자 총탄 세례를 퍼부었고,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후세인의 두 아들의 사망사실이 확실해지고 있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ytn 김응건입니다.
<후세인 父子의 도피 생활>
(서울=연합뉴스) 조성현기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그의 아들 우다 이, 쿠사이는 전쟁 기간 어떻게 지내왔으며 바그다드 함락 이후 어떤 도피 생활을 해왔을까.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은 25일 후세인의 큰 아들 우다이의 경호원(28)과 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전쟁 기간 후세인 일가가 어떻게 미군의 추적을 따돌렸는지, 위기는 어떻게 벗어났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 폭격 10분 전 '탈출'= 후세인 일가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4월 7일 바그다드 알-만수르 지역 폭격 당시 미군의 폭격이 있기 10분 전에 현장을 빠져나가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세인은 앞서 은신처들이 잇달아 미군에 폭격되는 것을 수상히 여겨, 내부에 밀고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후세인은 자신이 의심한 한 부하에게 미군의 폭격이 있던 4월 7일 알-만수르 지 역의 한 식당 뒤편에 회의를 위한 안가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나 막상 이 곳에 들르 자마자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후세인 일가가 이 안가를 빠져나간 후 약 10분이 지나자 미군의 폭격이 시작됐고 후세인은 자신이 의심한 부하가 밀고자임이 드러나자 그를 사살했다고 경 호원은 털어놨다.
또 이에 앞서 미군은 바그다드 남부의 한 은신처도 폭격했으나 후세인 일가는 다행히 친한 친구나 친척들이 제공한 다른 곳에 은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바그다드 함락 후 = 후세인 일가는 바그다드가 미국의 수중으로 떨어진 4월9 일 지지세력이 많은 아드하미야의 은신처에 따로 머물고 있었다.
놀랍게도 후세인 일가는 바그다드 함락 이틀 후인 4월 11일 아드하미야의 이슬 람 사원에 모습을 나타냈다.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미군이 순찰활동을 벌일 정도로 위험에 노출된 곳이었다.
후세인 일가가 사원에 모습을 나타내자 기도를 드리던 모든 주민들이 몰려들어 "당신이 우리에게 해준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후세인은 이에 "내가 뭘 할 수 있나.
믿었던 지휘관들이 이라크를 배신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권력을 되찾고 모든 게 정 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고 답변했다.
후세인 일가가 대중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 자동차로 바그다드 시내 활보 = 이들은 일반 승용차를 이용해 안가와 안가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했으며 종종 미군을 코앞에서 마주치기도 했으나 미군은 후세 인 일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우다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미군을 보고 "저건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아닌 걸"이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후세인 일가는 정말 바그다드를 사수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어 바그다드를 떠나지 않았다고 경호원은 전했다. 바그다드가 미군에 함락된 뒤 5~6일이 지나서야 후세인 일가는 저항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 정도로 상황 판단이 늦었던 것 이다.
며칠 후 우다이는 경호원에게 퇴직금으로 현금 1000달러를 건네며 필요할 때 다 시 부르겠다는 약속을 남긴 뒤 떠나갔다. 경호원은 "그들은 오직 친척들과만 연락을 취했으며 그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yebrow7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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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2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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