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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설교 녹취 목사님이 설교하신 동영상을 다시 보시면서 녹취된 설교에 오타를 잡아 내시며, 집중하여 다시 들으시면 더 큰 은혜가 쏟아 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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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은혜를 아는 사람 고백입니다 2012.6.21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고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섬과 섬을 이어주는 또 강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는 곳이 있는데, 불가피한 설계가 되어서 그렇겠죠. 요즘처럼 자동화 되지 않는 시대 속에 이 다리를 들어주어야 배가 지나가고 다리가 내려오면 기차가 지나가는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건널목지기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청강으로 있다가 결혼을 해서 또 참 귀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아들을 데리고 자기 직장에 와서 다시 풀도 뜯고 이야기도 하고 또 기차가 없는 시간이 되면 신호도 해 주고 또 배가 지나가는 시간이 되면 다리도 올려 주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일상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제 다리를 올려야 배가 지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다리를 올렸습니다. 스위치를 올리고 이 다리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찾는데 이 아이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보니까 이 아들이 다리 쪽으로 쭉 가다가 이 다리가 올라오니까, 이 다리 끝에 있다가 이 아이가 올라가는 거예요. 아빠! 이렇게 부르면서, 애가 이 다리 꼭대기에 지금, 올라간 다리 꼭대기에서 지금 여기에서 아빠를 부르면서 바둥바둥 매달리면서 울고 있는 거예요. 그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제는 다리를 내려야 만이 그 시간에 이어서 바로 오는, 모퉁이를 돌아서오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집니다.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저 기차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강속에 빠져서 죽게 됩니다. 또 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한 30초 안에 결정을 내야 하는 그 시간이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의 기억들 또 아이가 임신했을 때의 그때의 기쁨들 아이가 처음 낳아서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격들 그리고 아이가 처음 ‘아빠’ 소리 했을 때 그 감격들, 첫 발 디딜 때의 느낌들, 수많은 기억들이 그 아이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자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멀리서 기적소리 속에 수많은 사람이 기차를 타고 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아이를 데리러 올라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그는 스위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리는 점점점 닫혀가면서 거의 기차가 가까이 왔을 무렵에 이 다리 사이에 이 아이는 끼어서 그냥 죽고 말았습니다. 아빠는 그 사실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게 됩니다. 기차는 그냥 지나갑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렇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이 가끔 빵 같은 거 과자 같은 거 던져 주기도 하고 수고한다고 손 흔들면 지나가지만 이 아빠의 눈에서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진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이 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뒤에 알게 된 그들, 그들이 바로 이 다리 건널목 지기의 희생인 아들의 죽음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오늘도 살아갑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리고 어제 일들은 당연하고 오늘의 일들도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기차 안에는 전혀, 아마 어쩌면 그 자리에 떨어져서 죽어야 될 가치 없는 인간들도 많이 있었을 거예요. 사기치고 그리고 남의 마음을 정말 운명을 어렵게 만들고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별별 희한한 사람들이 정말 그 사람들은 기차에서 떨어져 죽어야 될 사람도 참 많이 있었을 거에요. 그렇지만 이 다리지기에 죄 없는 이 아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들도 동일하게 살아나면서 그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삶이 이런 삶이라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오늘 살고 있지만 이 삶이 그냥 주어진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나 이 삶이 귀했기에 이 세상사람들이 다 얻기를 원해서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로마의 시민권이나 학문의 위대한 그 놀라운 학문의 경지나 그에게 있어서 많은 물질을 그는 배설물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고, 이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도 너무나 소중하지만 자기가 오늘 살아있는 자기의 존재 자체가 얼마큼 귀하고 놀라운가, 죄인 된 자기를 죄를 씻어주시고 자기를 자기를 용서하신 오늘도 내 삶 속에 참된 소망을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는 잊을 수 없노라고,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세사의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어떻게 비교했느냐 하면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 맞고, 태장으로 다섯 번 맞고, 돌멩이로 세 번 맞고, 흑암 속에 있고, 배신당하고, 일평생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자기 몸에 여러 가지 상처와 고문과 그런 흔적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은혜가 자기에게 너무나 컸다는 것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평범한 삶이, 오늘 내가 신앙생활 하는 이것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그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오늘 이 로마서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얘기 합니다. 6절보니까 “내가 연약할 때” 그랬습니다. 내가 어떤 상태냐 연약한 상태다. 바르게 살고 싶어도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자꾸 죄 된 생각이 나에게 들어오고 내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연약함, 내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그러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잖아요. 가치 없죠 여러분! 여러분 약속 정해서 두세 번만 여러분 약속 지키지 않고 그러면 다시 그 사람 안 만날 거예요. 전혀 그 사람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길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볼 때 선을 행한 경력이 자기 속에 없는 거에요. 연약한 거예요. 하나님이 아무리 쏟아 부어주어도 자기 속에 선을 행하는 것보다는 악한 생각 잘못된 생각 이런 것으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연약할 때,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죄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될 것을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이 죄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죄 짓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 죄가 나와 직접적인 피해가 있다고 그럴 때 달라지는 거예요. 우리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으로 이렇게 참 정치하는 사람들 쉽게 얘기하는 것 보면서, ‘게가 이 나쁜 마음이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제 속에 있는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 아들이 가서 그렇게 죽어보면 그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이 들어가는 거에요. 미국은 20년 30년이 지나도 뼈라도 찾기 위해서 그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데 우리 나라를 지키다가 또 잘못된 정책에 의해서 젊은이들이 죽어갈 때 그 정책을 설립하고 지금 엉뚱한 얘기하는 친구들 그 아들 한 명 죽어서 안 되면 두 명 죽여 보고 두 명 죽여서도 안 되면 세 명 죽여서라도, 제가 굉장히 나쁜 마음이죠. 그래 너무 심하게 그 아픔이라는 게 얼마큼 그 부모에게 얼마큼 큰가 --- 그들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큼 그것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그 가족과 이 나라를 위해서 그 사람들의 가족들의 아픔이 얼마큼 크고 상처가 얼마큼 큰지 모르는 거에요. 한 번 그렇게 저희들도 한번 당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가는 거예요. 요즘 내가 목사 마음이 이렇게 악해져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세상이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엄마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억울하게 죽은 자녀들 그러면서도 불구하고 외면당하고 우리가 뭐 경계선을 넘어가서 그래서 이북에서 할 수 없이 자위차원에서 했다면 얘기하는 정보책임자들 얘기를 이렇게 들어보면, 참 나이 들어도, 공부 많이 해도, 똑똑해도 인간 속에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될 공간만큼 일하는 거에요. 부모에 마음이라는 것, 가족의 마음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저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는가--- 이런 마음이 들어가는 거예요.
참 그 죄라는 것이,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게 우리의 죄성이 남에게 피해와 아픔을 주고 살아가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바울이 자기를 볼 때 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 자기는 의롭게 살았어요. 바르게 살았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 잡아 죽였잖아요. 스데반도 죽였잖아요. 그런 죄인이여, 그리고 또 하나 10절 말씀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원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싸워온 거에요. 여러분 그냥 몰라서 잘못하는 건 괜찮은데 대적하고 달려들 때는 그것은 가만이 두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사람의 본성이거든요. 가만 내버려두지 안겠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대적할 때 “내가 너희들을 광야에서 저들을 죽여버릴까 하노라.”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저들을 죽일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동행하지 않겠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라는 것은 무서운 죕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상숭배하는 것, 성령을 훼방하는 죄, 이런 죄는 무서운 죕니다. 단순히 우리가 불순종하는 그 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상태에요 그런 상태--- 그런 우리를 회개할 마음도 전혀 없고, 회개할 가능성도 없고, 용서해줄 요만한 근거도 없을 그때에, 그러니까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연약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죽였다 그거에요. 십자가에서 죽였다고요. 그 죽인 게 뭐냐 그 안 죽였으면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함을 받지 못했다는 거에요.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고 참 축복의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자기 아들을 죽여서까지 살리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바울은 알았기에 그의 하루하루 삶은 결코 낭비하거나 버리거나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직분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내가 이만큼 능력이 되고 이만큼 내가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뭡니까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 은혜가 너무 크기에 너무 감사하기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직분 속에 하나님이 이를 위하여 직분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얼마큼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이 마음이 직분자의 본래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이만큼 교회에서 이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 이만큼 헌금했으니까,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그러는 신앙인의 마음은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제가 그렇기가 가장 쉽죠 목사기 대문에 또 그런 거 많이 발견합니다. 고치는데도 그래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감사함으로, 그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 이 직분을 맡기셨다”고 바울은 그랬어요. 하나님은 돌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 만들 수 있는 분이에요. 지나간 세월 보세요. 세상 일도 필요 없다고 우리를 내치는 마당에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사실 충성 되나요 아니지 안습니까? 충성되이 여겨줬다는 거에요. 인정해줬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전에서 하나님 일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셨다 그겁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도 맡기셨고 우리에게, 그 직분의 상징이 뭐 우리에게 어떤 직책을 맡겼다는 그 상징이 이름으로 타이틀로 나타나는 거에요.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이렇게 붙을 수 있겠죠. 그것을 왜 맡겨 주셨는데요.
오늘 바울은 나에게 주신 그 은혜가 너무 귀해서 그 사랑을 하나님께서 갚고 또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바울의 신학의 주제는 ‘은혜’ 입니다 은혜! 은혜! 은혜! 그 은혜가 있기에 그는 감사함으로 살았어요. 여러분 신지혜 선수 알지요. 신지혜 선수가 2009년도에 LPGA에서 최소 신인상 받고 미국 골프 거기에서 최소 신인상 받고 상금 왕 받았는데 이 자녀가, 이 사람이 자기가 연습 벌레라고 그래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조그만 체구에 굉장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이렇게 물어봤더니 그 목사님인가 그럴 거에요. 개척교회 목사님인데 자기가 열여섯 살 때 그 어머니와 두 동생이 교통사고를 만났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두 동생은 환자가 되어 있어서 그 뒷바라지 하면서 이제 골프를 했는데 그 부조금 받아서 정산하니까 천칠백 만원 남더라는 거예요. 그 아버지가 그에게 천칠백 만원 내놓으면서 하는 얘기가 “엄마 목숨 값이야, 엄마 목숨 바꾸어서 너 골골 시킬 테니까 네가 골프 알아서 해?” 그렇게 하더라는 거예요. 아, 그거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이게 이 지혜 자매 마음속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거예요. 내가 오늘 이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마의 피 값, 엄마의 죽음의 대가, 그것으로 인해서 얻은 천칠백 만원 가지고 내가 골프를 하고 있구나! 내가 편하게 살 수 없는 거예요. 쉽게 자기시간 버릴 수 없어요. 남들 다 자고 누리고 놀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밤 늦게도 연습했다는 거에요. 왜요? 그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그냥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엄마의 죽음으로 치루어진 대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최선을 다하게 되었고 그 최선이 자기를 성장하고 새롭게 만들게 되었고 또 그 자리에 올라갔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교만하지 않고 계속 더 노력할 수 있고 자기가 받은 상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었던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내가 오늘도 은혜로 살아가고 있구나!
참 저도 하나님의 큰 은혜 때문에 이 자리, 이 순간, 이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없는 그런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잊어버리고 내가 원래부터 잘라서 당연히 이 자리에 온 것처럼 생각될 때가 참 많습니다. 순간순간 빨리 그때로 돌아갑니다. 시카고에 있는 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너무나 추운 영하 20, 30도 될 때에도 정말 집에서 잘 수 없어서 무서운 교회바닥에 혼자 침랑 하나 메고 그 혼자 외롭게 추위에 떨면서 자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더라니 까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들 앞으로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아무 하얀 백지처럼 때로는 캄캄한 것처럼 미래를 알 수 없는 그 가운데서 살았던 그 순간들,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 내 힘으로 헤쳐올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것이 원래 내가 이렇게 된 것처럼, 내가 원래 똑똑한 것처럼, 내가 원래 잘난 것처럼, 원래 이렇게 될 가능성이 나에게 있었던 것처럼 순간순간 생각하는 교만이 밀려 올 때 내 자신과 싸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일들이 많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허물로 묻혀져 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도로 파내고, 예배로 파내고, 맞습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자꾸 하나님 은혜를 우리가 다시 회복하고 찾아나가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그 은혜를 다시 구하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가 될 때에---- 원수 되었을 때,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하나만 돼도 우리를 버릴 수밖에 없는데 그 세 상태에 있는 나를 위하여, 가치 없는 나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버리시면서 까지 구원해주신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낙담하지 않고 그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감사의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돌아보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던 지난 날들을 고백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건강의 문제도 있었고 재정의 문제도 있었고 관계의 문제도 있었고 마음속에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수많은 낙담되는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또 부족한 저희들을 세워주셔서 하나님 귀한 사명 맡겨주시고 또 직분까지 주시고 하나님 자녀라는 놀라운 하나님 타이틀까지 저희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이 이 기회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심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주의 백성들이 오늘도 살아가는 이 하루가 복되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시고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며 환경을 넘어서며 한나님 주신 큰 능력을 그리하여 나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놀라운 은혜의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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