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의 시작, 골굴사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에 꼭꼭 숨겨져 있는 두 사찰은 골굴사와 기림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토함산 지구를 대표하는 사찰이지만, 골굴사와 기림사에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다. 다른 지방에 있었다면 골굴사와 기림사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 될 법하지만, 경주, 게다가 토함산에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경주를 처음 여행한 사람들은 굳이 골굴사와 기림사에 갈 필요는 없다. 첫날에 경주 시내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를 보고, 둘째 날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동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정이다. 하지만 경주에 두 번 이상 방문한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 외 다른 유적지에 갈 만한 여유가 생긴다. 양남면의 주상절리에 가서 자연이 만든 놀라운 작품을 감상해도 좋고, 저 멀리 안강읍이나 강동면에 가서 또 다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옥산서원과 양동마을을 둘러봐도 좋다. 양동마을까지 다녀왔다면 이제 골굴사와 기림사로 향해야 할 때다. 경주에 흩어진 수많은 문화재를 일일이 찾아보는 데 지쳐있다면 곧장 골굴사로 가서 템플스테이를 해 봐야 한다.
한국의 수많은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골굴사로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선무도'라는 수행법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큰 역할을 했던 승군들이 연마했다던 무술은 오랫동안 명맥이 끊겨있었지만, 스님들이 이를 '선무도'로 체계화하여 골굴사에서 전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골굴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선무도를 익힐 수 있으며,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예불에 참여해 심신을 단련할 수 있다. 경주에서 불교 유적을 보는 게 지겨워졌다면 골굴사에 가서 선무도를 익히는 것은 어떨까?
국립공원 이야기 42 - 선무도 (禪武道)
선무도는 불교의 아나파나사띠(anāpanasati,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경에서 가르치는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수행법이다. 중국 수나라 시대 천태 지의 대사의 지관수행법과 일맥상통하는 불교금강영관 선무도(佛敎金剛靈觀 禪武道)는 범어사의 양익 대종사(2006년도 원적)가 불조의 혜맥을 이어 정립한 한국 불교의 전통수행법이다. 선무도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요가나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법이다.
선무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화랑들이 한반도의 명산의 사찰에서 수련을 하며 교양과 무예를 익혔다.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찰은 함월산 기림사로, 화랑들의 주된 수도장이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승병을 탄생시킨 대표적인 호국도량이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탄압과 일제강점기의 한국 전통문화 말살이라는 시대를 거치며 선무도는 점차 사라져 갔으나 1960년대 범어사의 양익 스님이 사라져 가던 승군들의 무예와 관법 수행법을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이를 승가에 전수하는 ‘불교금강영관 연수원’을 부산 범어사에 개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 양익 스님의 문하에 들어온 적운 (寂雲) 스님이 일반 대중에 설파하려는 목적으로 불교금강영관을 '선무도'로 개칭하여 수많은 수련생과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현재 선무도의 총본산은 경주 골굴사이며, 골굴사 내에 '선무도 대학'과 '선무도 대금강문'이 있어 전문 지도자들이 골굴사에서 배출되어 선무도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골굴사에서의 하루
골굴사와 기림사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절이다. 문무대왕면의 안동삼거리에서 내려 2km 정도 걸으면 골굴사에 갈 수 있으며, 기림사는 마을버스인 130번으로 환승해야만 갈 수 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양호해진 것으로 기림사로 가는 버스가 전무할 정도였다. 골굴사와 기림사가 널린 게 사찰인 경주에 있어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고난을 이겨내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골굴사에 다다르면 경주의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무도를 익히러 골굴사에 왔지만, 골굴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좋다. 대부분이 화강암인 대한민국의 국토 중 특이하게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골굴사에 있어, 옛 신라인들은 이곳의 석굴에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4m의 불상으로, 자연적으로 생긴 12개의 석굴 가운데 가장 윗부분에 있다.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제법 높은 육계를 올렸고, 턱이 둥근 얼굴에는 위로 올라간 눈썹과 두툼한 눈두덩 아래로 가늘게 뜬 눈,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코, 야무지게 다문 입 등이 입체감 있게 새겨져 있다. 신체의 입체감이 거의 없고 옷 주름이 평행하면서 계단식으로 흘러내렸지만, 얼굴에는 입가의 미소와 함께 이상을 꿈꾸는 듯한 모습이 담겨있다.
보물로 지정된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나면 선무도 시연이 골굴사 앞마당에서 펼쳐진다. 하루에 두 번 열리는 선무도 시연을 통해 옛 스님들이 어떻게 심신을 단련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비록 명맥이 끊겨 옛 자료를 통해 복원된 선무도지만, 절도 있고 특이한 형태의 동작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무술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상시에는 잡생각을 떨치고 수련하는 데 사용되었던 선무도는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발휘하여 왜적과 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숭유억불 사상이었던 조선에서 사명대사의 활약을 계기로 불교가 이전만큼 천대받지 않을 정도로 승려들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켜낸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선무도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지도자의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면 선무도를 본격적으로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선무도에 반해 정착을 하는 경우도 있어, 노르웨이에서 온 사범도 있을 정도다. 실제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 중 40% 정도가 유럽 또는 미국에서 왔을 정도로 선무도는 인기가 많았다.
저녁예불과 새벽예불을 끝내고 나면 스님과 면담을 하고 식사를 하게 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던 식사 예절이 아닌 발우공양이라는 의식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익힌다. 사발이 여러 개 담긴 꾸러미를 받으면 발우공양이 시작된다. 밥과 각종 김치, 그리고 물을 사발에 받고 식사를 끝낸 뒤 행하는 의식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김치 한 조각을 반드시 남기고 물에 씻어낸 뒤, 그 김치로 모든 사발을 깔끔히 닦아내는 것이다. 닦아낸 물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마셔야 한다.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 황당하고 의미 없는 의식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는 사발을 보고 있으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함부로 낭비하고 쉽게 버렸던 습관을 되돌아보며 현대인들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다.
골굴사 주변에 감은사지・기림사・문무대왕릉 등의 불교 유적이 많기 때문에 불교 유적 답사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은 이전에 방문한 적이 있어, 기림사가 어떤 절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기림사는 선덕여왕 때인 634년에 창건된 절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31대 본산 중의 하나로 불국사를 포함한 60개의 절을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거대한 절이었다.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지만, 조선시대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적광전을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의 지휘본부로 사용되었던 진남루 등 귀중한 유산을 품고 있는 절이다.
기림사에서 가장 주목할 문화유산은 본전 건물인 대적광전이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뜻의 대적광전은 인조 7년 (1629)에 크게 고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법당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겉모습은 절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힘차며 안쪽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정숙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공포에 조각을 많이 넣어 17세기 건축 흐름을 알 수 있고, 특히 수리를 할 때 옛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아 중요한 건축사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불교 유적 답사를 끝으로 길었던 골굴사 템플스테이가 마침내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된다. 골굴사 템플스테이는 쉴 시간도 없을 정도로 프로그램이 빡빡하지만 배우고 느끼는 것이 그만큼 많다는 점에서 다른 절의 템플스테이와 차이가 있다. 명상이나 쉼을 원한다면 골굴사 대신 다른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이 맞지만 특이한 체험을 원한다면 골굴사에서 하루를 묵어보는 걸 추천한다. 골굴사에서의 기억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이후 해인사・전등사・길상사・금산사 등에서 템플스테이를 이어나갔으며, 가장 최근에는 저 먼 해남 땅의 미황사에서도 하루를 묵게 되었다. 경주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라면 골굴사에 가 보는 건 어떨까?
경주의 동해 바다인 대본 지구로 가보자
경주 국립공원의 남산 지구와 토함산 지구 다음으로 가 볼만한 곳은 대본 지구다.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가 있는 대본 지구는 불교 유적뿐 아니라 에메랄드빛의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다. 두 유적을 보고 아쉬움이 남는다면 동해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된다. 자연이 만든 신비한 풍경인 주상절리가 경주 동남쪽 끝 양남면에 남아있으며, 그 신비한 모습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전해져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다음 경주 국립공원 여행기는 불교 유적과 자연이 어우러진 신비한 장소인 대본 지구로 가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