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왜 나를 떠나지 않을까
운곡 조이무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심는다. 희망도 심고 욕망도 심는다. 나는 평생 두려움을 심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두려움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길목에 서 있었다. 내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기 전에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도, 심지어 혼자 있는 방 안에서도 두려움은 먼저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이겨야 할 적으로만 생각했다. 뽑아도 다시 돋아나는 밭의 잡초처럼, 없애야 할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월은 뜻밖의 사실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잡초가 자라는 땅은 죽은 땅이 아니라 살아 있는 땅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내 삶의 많은 선택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려 할 때도,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도, 마음은 먼저 주저앉았다. 남의 시선은 나를 키우기도 했지만, 더 자주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 작은 마음을 감추기 위해 술잔을 들었고, 술은 잠시 두려움을 재워 주는 듯했지만, 새벽이면 더 큰 얼굴로 돌아왔다. 마치 흙속에서 겨울을 견딘 잡초 씨앗처럼,
두려움은 봄이 오기도 전에 내 마음속에서 먼저 싹을 틔우곤 했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은 이름 없는 그리움이었다. 청년기의 두려움은 세상과 자신을 비교하는 열등감이었다. 그리고 이순을 지난 지금의 두려움은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미련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두려움도 늙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더 조용하고 더 깊어졌다. 소리 없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말이다.
그래도 농사는 내게 희망을 가르쳐 주었다.
늦게 뿌린 씨앗이라고 모두 늦게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좋은 흙을 만나고, 알맞은 햇살과 물을 만나면 계절은 늦은 씨앗에게도 공평하게 문을 열어 준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상처가 많다고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늦었다고 인생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흙은 언제나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고, 농부는 그 기다림을 믿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두려움을 이기려고만 애썼다. 한 번도 두려움에게 무엇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용기를 가로막는 적이라 여겼던 존재가 실은 가장 오래 곁에 머물며 나를 가르친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두려움은 참 부지런하다.
나는 하루쯤 쉬어도 두려움은 결근하지 않았다. 새벽이면 먼저 출근하여 마음의 밭을 갈아엎고, 대충 덮어 두었던 양심의 잡초를 하나씩 들춰낸다. 그래서 가끔은 웃음이 난다. 평생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평생 나를 깨우느라 바빴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 깨달음은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한때 술잔을 들던 손에는 책이 들렸고, 거친 손바닥에는 여러 색의 펜이 쥐어졌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했지만, 흙은 한 번도 늦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계절은 사람을 비웃지 않는다. 준비된 씨앗에게 제때를 내어 줄 뿐이다.
철학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 작은 문장을 하나 보태고 싶다.
먼저, 너의 두려움을 알라.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용기도 이해할 수 없다. 폭풍을 모르는 항해사가 바다를 논할 수 없듯이, 두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용기의 무게를 알기 어렵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 한 걸음 더 내딛는 행동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멈추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두려움 때문에 다시 일어난다. 상처를 아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고,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내일을 더 정성껏 준비한다.
나는 이제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 한다.
농부는 씨앗을 심고도 매일 흙을 파헤치지 않는다. 흙을 믿고, 계절을 믿고, 시간을 믿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찰이라는 씨앗을 심고, 용기라는 물을 주며, 공감이라는 햇살을 받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인격은 서서히 익어 간다. 인생은 경쟁의 밭이 아니라 함께 경작하는 들판이라는 사실을 농부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누군가를 살게 한다.
자신만 돌보는 것은 생존이지만, 타인의 아픔을 품는 순간 비로소 사람다운 향기가 피어난다. 두려움은 그 향기를 만들어 내는 가장 오래된 거름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한 줄의 문장을 심는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메마른 마음 한구석에 작은 씨앗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삶에 지친 사람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집 앞 텃밭 같은 글이기를 바라며. 언젠가 그 씨앗이 용기라는 이름으로 싹을 틔운다면, 내가 평생 품어 온 두려움 또한 헛된 동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두려움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평생 내 곁을 지켜 준 가장 오래된 벗이었다.그 벗은 내게 한 번도 큰소리로 훈계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방심할 때마다 조용히 어깨를 두드렸다. 넘어질까 두려워 주저앉을 때는 등을 떠밀었고, 성공에 취해 스스로를 잊을 때는 발끝을 붙잡아 주었다. 돌이켜 보면 두려움은 나를 가두려는 감옥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작은 나침반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용기를 두려움의 반대편에 세운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며 나는 그것이 틀린 비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햇볕만으로는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비도 내려야 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며, 때로는 서리도 견뎌야 한다. 용기 또한 두려움이라는 계절을 통과할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흙은 참으로 정직하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준비하고, 게으름을 심으면 잡초를 돌려준다. 흙은 사람의 변명을 받아 적지 않는다. 묵묵히 결과로 대답할 뿐이다. 그래서 농부는 밭을 갈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는다. 욕심을 덜어 내고 조급함을 고른 뒤에야 비로소 씨앗을 심는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
한때는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원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굳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염류가 축적되어 돌처럼 단단해진 자존심에는 어떤 씨앗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비워 낸 뒤에야 새로운 배움이 들어왔고, 낮아진 뒤에야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득 아버지의 손이 떠오른다.
거칠게 갈라진 손등, 검게 밴 손톱, 굵은 손마디. 어린 시절에는 그 손이 투박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내 손에도 같은 주름이 생기고 나니 알겠다. 흙은 사람의 손을 닮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닮게 만든다는 것을.
어느 봄날 새벽이었다.
안개가 밭고랑을 천천히 메우고 있었다. 나는 씨앗 한 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손금 사이를 굴러다니는 작은 씨앗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줄기와 꽃과 열매가 숨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씨앗은 밝은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흙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깨뜨린 뒤에야 싹을 틔운다.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배우고, 가장 큰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익힌다. 상처를 견디어 낸 사람은 타인의 눈물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넘어져 본 사람은 다른 이의 손을 먼저 붙잡는다. 그래서 고통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두려움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걸어간다.
조금 앞에서 길을 비춰 주고, 조금 뒤에서 나를 붙잡아 주는 오래된 동행으로 받아들인다. 두려움은 여전히 내 삶의 그림자지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아직 햇살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밭으로 간다.
흙을 만지고, 잡초를 뽑고,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심는다.
농사가 흙에 씨앗을 심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사람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이다. 어느 쪽도 서두를 수는 없다. 기다림은 생명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해가 지면 불을 밝힌다.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나에게 글은 그런 작은 등불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 쓰는 글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 켜는 불빛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평생 내가 심은 것은 씨앗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흙은 한 번도 좋은 씨앗인지, 늦은 씨앗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품어 주었다.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상처를 재기보다 품어 주고, 늦음을 탓하기보다 기다려 주며, 실패를 비웃기보다 다시 일어설 흙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인간을 넘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한 줄의 문장을 심는다.
언젠가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조용히 발아하여, 용기라는 이름의 작은 싹 하나를 틔워 낸다면, 내가 평생 품어 온 두려움 또한 헛된 동행은 아니었음을 믿게 될 것이다.
두려움은 끝내 내 삶에서 뽑아낼 잡초가 아니었다.
해마다 가장 먼저 돋아나 밭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 주는 봄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