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서양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1234년에 이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훈민정음을 창제한 빛나는 출판문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현대식 활판인쇄술릉 들여온 국내 출판산업은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거쳐 광복이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지만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딘 편이었고, 수요와 공급도 거의 대부분이 국내 독자들에게 한정되는 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출판은 1883년 고종 20년 일본에서 활판인쇄시설이 들어와 박문국을 설치, 그 해 10월 한성순보를 발행한 것이 최초이다. 두 번째는 1885년 배재학당에서 기독교 선교를 위해 인쇄소를 설치한 것이다.
그 뒤 1900년대에 들어와 많은 인쇄시설이 갖추어짐으로서 국내 출판산업은 여명기에 들어섰다.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불멸의 업적을 남긴 출판계의 선구자는 노익형을 꼽을 수 있다.1907년 노익형책사를 설립한 그는 뒤에 상호를 박문서관라고 개칭하여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양주동의 <조선고가연구>, 방정환의 <방정환전집> 등 기념비적인 책들을 간행하였다.
박문서관 외에 일제 때부터 광복이후까지 두드러진 발자취를 남긴 출판인은 1922년 동명사를 설립한 육당 최남선, 1923년 행림사라는 의서출판사를 설립한 이태호, 1928년 정음사를 설립한 외솔 최현배, 1931년 삼중당을 설립한 서재수, 영창서관의 유장렬, 한성도서의 이창익, 덕흥서림의 김기방 등이다.
이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출판인을 한국출판의 제1세대라고 한다면, 광복 직후부터 활동을 시작한 출판인들은 제2세대의 대표주자들로는 고려문화사의 유명한, 을유문화사의 민병도, 동지사의 이대의, 백남홍, 민중서관의 이병준, 탐구당의 홍석우, 정음사의 최영해, 동명사의 최한웅, 국제문화협회출판부의 김을한, 대양출판사의 김익달 등이다. 1945년 당시 49개, 1946년 150개 출판사 중에서 가장 오랜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박문서관은 광복 직후 박문출판사로 개칭하고 박문서점도 경영하는 한 편, 종로구 인사동에 대동인쇄소까지 설립하는 등 사세를 떨쳤으나 6. 25 뒤 대화재로 기울기 시작하여 1960년대 말까지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육당 최남선이 신문관이라는 출판사 겸 인쇄소로 설립한 동명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동명>을 발간하는 한편, 문학, 역사 전문 출판사로서 권위를 자랑하다가 육당의 아들 최한웅 박사(전 서울의대 교수)가 인수한 뒤 50년대부터 의약, 수학, 물리, 공학 방면의 전문출판사로 방향을 전환하였다.80년대 초 명의를 손자인 최국주(피부과전문의)에게 넘겼으나 실질적인 경영은 그의 부인 이은주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음사는 외솔 최현배가 문법서인 <우리말본>을 간행하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광복 후 장남 최영해가 경영을 맡아 권덕규의 <조선역사>를 출판한 데 이어 홍이섭이 주간을 맡아 민속잡지인 <향토>를 펴내고, <정음문고> 홍이섭의 <조선과학사>, <한글소리본> 등 국어국문학, 국사학분야의 전문출판사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음사는 최영해 사장이 선친 외솔 최현배의 유지를 살려 개발한 외솔타자기가 컴퓨터 바람에 밀려 빛을 못보자 빚더미에 올라 앉으면서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정음사는 1981년 최영해 사장이 작고한 뒤 외솔의 장손이며 최사장의 장남인 최동식(고려대 교수)가 맡아 단행본 전문으로 전환하였다. 한 때 최동식 교수와 운영권 문제로 다투던 외솔의 세째 아들 최철해는 1982년 정음문화사를 설립, 분가하여 전집물에 주력하였다.
고서점을 하던 서재수가 창업한 삼중당은 60-70년대에 문고본 및 전집물로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으나 1978년 서재수가 사망한 뒤 이어 뒤를 이은 아들 서건석도 1985년에 세상을 뜨면서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서건석의 미망인 조미령이 경영을 맡아 삼중당 베스트문고를 펴내는 등 재기의 몸부림을 쳤으나 끝내 1990년 12월 만리동시장 대표 이민철에게 넘어가 명맥만 이어가는 형편이다(정효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