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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형경기장 ‘ #콜로세움 ’.
펙셀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의 지하 공간이 완전히 개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검투사대기소 , #맹수우리 , #통로 가 미로처럼 얽혀 있던 이 공간은 2018년부터 복원 작업이 진행됐는데, 전체가 완전히 대중에 공개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 검투사와 맹수들이 싸움을 벌이고 로마 시민 수만 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로마제국 의 뛰어난 기술력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꼽혀요. 8세기 영국의 성직자 베다는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이면 로마도 무너지리라. 로마가 무너지는 날이면 이 세상도 무너지리니"라고 했을 정도지요. 코로나 이전엔 매년 수백만 관광객이 콜로세움을 찾았어요.
평민출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정치 한 수
폭군이었던 로마의 #네로 (재위 54~68년) 황제가 군대의 반란에 직면해 6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후 1년간 누가 새 황제가 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귀족들 간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세 명의 황제가 교체된 끝에 #베스파시아누스 (재위 69~79년)가 60세에 황제 자리에 올랐어요.
베스파시아누스는 이전 황제들과 달리 황족도 귀족도 아닌 평민 기사 계급 출신이었어요. 그는 군 장교로 북아프리카·이집트 등 여러 곳에 파견돼 공적을 쌓다 #네로황제 로부터 #유대인반란 을 진압하는 총사령관으로 임명받았어요. 이후 내전으로 로마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로마 동쪽 방어선을 맡고 있던 동방군 등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죠.
새 황제의 과제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로마를 재건하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는 '콜로세움' 건설을 추진합니다. 위치부터 남달랐어요. 로마 한복판에 있던 네로 황제의 ' #황금궁전 ' 자리였죠. 네로 황제는 64년 #대화재 로 궁전이 타버리자 화려한 황금궁전을 지었어요. 베스파시아누스는 황금궁전 내 #인공호수 터에 콜로세움을 지었는데, 네로의 폭정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전임자와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황제 는 72년 콜로세움 건설을 시작했지만, 2층까지 지어진 것을 보고 79년 사망했어요. 콜로세움은 그의 아들 #티투스황제 가 80년 완공했어요. 이후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황제 가 82년 4층으로 개축했어요. 네로와 세 황제 시절을 거치며 국고가 바닥난 상황에서 어떻게 10년이란 짧은 기간 대규모 건설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가져온 전리품과 #유대인포로 를 노동력으로 쓴 덕분이에요. 콜로세움의 원래 이름은 ' #플라비우스원형경기장 ' 인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일가 이름을 딴 것입니다. 콜로세움으로 불리게 된 건 경기장 옆 네로 황제의 금박 동상 ' #콜로서스 (Colossus)' 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어요.
2000년 전 로마인 기술의 집약체
콜로세움은 지하 2층~지상 4층짜리 건물로, 높이 50m, 둘레 527m, 총면적 2만4000㎡에 이르는 대규모였어요. 당시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기술 을 보여주는 집약체였죠. 아치형 구조를 쌓아 만들었고, #석회반죽 에 #화산재 를 섞은 #콘크리트 를 사용해 견고했어요. 또 1층 #도리아식 , 2층 #이오니아식 , 3층 #코린트식 기둥 등 층마다 다른 건축 양식을 사용했고, 맨 꼭대기엔 수백 개 봉을 설치해 천막을 달아 거대한 해 가리개를 만들 수 있었어요. 검투사와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 부분은 나무판을 모래로 덮었기 때문에 ' #모래 ' 라는 뜻의 #라틴어 ' #아레나 ' 로 불렀어요.
#타원형 #경기장 엔 관중이 5만~8만명이나 들어갔다고 해요. 당시 로마 인구가 100만명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였죠. 터널과 입구를 효과적으로 설계해 80개 입구로 관중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 20분밖에 안 걸렸어요. 시야를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좌석은 37도 경사지게 했고, 좌석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경기를 가까이서 생생히 볼 수 있어 높은 신분이 앉았어요. 지하 공간 ' #히포게움 ' 엔 검투사 대기실과 맹수 우리 등이 있었어요. 검투사와 맹수는 승강기를 타고 경기장 위로 올라와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답니다.
로마의 '빵과 서커스' 정책
로마 제국의 정책을 ' #빵과서커스 ' 라고 불러요. 국가가 시민에게 제공한 식량과 오락거리를 빗댄 말인데, ' #포퓰리즘 ' (인기영합주의)을 이르는 말로 쓰여요. 콜로세움은 ' #서커스용 ' 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콜로세움을 통해 제국의 건재함을 대외에 알리고 시민들이 열광할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황제에게 충성하도록 했어요.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있었고요. 황제는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 타조·악어·하마·표범 등 이국적인 짐승을 구해와 보여주기도 했어요.
콜로세움은 80년부터 #서로마제국 이 멸망(476년)한 이후 523년까지 사용됐어요. 이후 #지진 등으로 파괴되고 #게르만족 의 #약탈 을 거치며 방치됐어요. 지금은 원형의 3분의 1만 남아있어요. 콜로세움 복원 작업은 1790년 보수 공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오줌세'
콜로세움을 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독특한 #세금제도 로도 알려져 있어요. 그는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 수입을 늘리려 했는데, 그중 ' #오줌세 ' 도 있었어요. 이는 #공중화장실 이용자에게 부과한 게 아니라, 공중화장실 소변을 가져가서 암모니아 성분으로 양털 기름을 제거하는 데 쓴 #양모가공업자 들에게 매긴 것이에요. 이 사실이 시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아들 티투스도 반대했대요. 그러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금화 한 줌을 아들 코앞에 들이대며 "맡아봐라. 오줌 냄새가 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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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지하공간 이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됐어요.
로이터 연합뉴스
출처: 프리미엄조선|[정효진·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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