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1. <슬픈 열대>는 구조주의 민족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1930년대 실행한 브라질 내부 지역의 민족학적 탐사를 1950년대에 기록한 작품이다. 1930년대는 이미 과거의 수많은 탐험가들에 의한 탐사로 인해 새롭게 발견되는 지역이 점점 줄어드는 시기였다. 저자는 최초의 발견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방문한 곳 모두에서 서구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무너지고 황폐되어가는 원시적 사회의 파멸만을 관찰했을 뿐이다. 탐사의 과정은 엄청난 물자를 투입하고 끝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다. 험준한 밀림 지대를 뚫고 지나거나 고원지대의 황폐함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달한 곳에서의 활동은 결코 매력적인 작업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 다만 원주민들과 접촉하고 만나고 가까워지면서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것일 뿐이다. “탐험이라는 것은 널리 걸어다니면서 구경을 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지점을 발굴하는 것이다. 우연히 빼놓고 보지 못한 경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장면, 비행 중에 생각한 일, 이러한 것들만이 거친 원시적 상태 그대로의 견문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2. 저자는 브라질 중부 내륙에서 만났던 4개의 원시부족(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을 중심으로 탐사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는 과정이면서도 인간이 지닌 동일한 문화적 속성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분명 외형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원리의 동일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두베오족들이 얼굴에 그린 기하학적 문양을 통해서도 인간의 특별한 속성을 표현하기 위한 인간 고유의 본질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관습들이 모여 사회적 체계를 구성한다는 기본적 원리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3. 보로로족의 부족 구성이 혈연 중심의 관계와 계급 중심의 관계가 서로 맞물려 이루어졌고, 결혼은 서로 다른 혈연과 이루어지면서 상호간의 균형과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대규모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각각은 일종의 계급적 위계를 갖추고 서로의 영역을 준수하고 있는 점은 사회운영에서 위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의 장례식은 다른 혈족에 의해 진행되며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댓가로 자연의 동물을 제물로 사용하는 점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은 오직 우리들이 자연의 자리를 인식하고 그 권위에 따른 숙명이 진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할 때만이 정복될 수 있는 것이다.”
4. 남비과라족과 투피 카아이브족과 관련해서는 ‘족장’의 권한과 의무 그리고 그와 관련된 결혼 제도의 문제가 제기된다. 족장은 부족의 모든 일을 책임지는 존재이다. 족장의 권력은 구성원들의 ‘동의’에 의해 형성되며 그는 ‘관대함’을 통해서 부족원의 지지를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족장의 삶은 피곤하다. 마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먹을 것을 구해 배분해야 하며 사람들의 대립을 화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훌륭한 족장은 솔선수범하는 능력과 기술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족장의 어려움을 보상하기 위한 방식은 그에게만 허용되는 일부다처제이다. 족장은 본처 이외에도 마을의 젊은 여인들을 아내로 둘 수 있다. 대부분 이들은 족장의 정서적 즐거움을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보상으로 주어지고 묵인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결혼상대의 불균형은 다른 방식을 통해 해결된다. 남비콰라족이 젊은이들의 동성애를 허용하는 방식이라면, 투피 카아이브족은 일처다부제의 형식을 통해 젊은이들의 성적 욕구에 대한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5. 이러한 부족들의 생활방식을 통해 저자가 발견한 것은 외형적인 차이가 아니라 제도나 관습이 이루어지는 근본적 원리의 동일성이다. 제도와 관습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환경적 어려움과 집단 구성의 불균형은 어쩔 수 없이 차별이나 비인간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외형적 차이가 반드시 야만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조상을 기억하기 위해서 또는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식인풍속’이 서구에서 벌어지는 인간을 감금하고 고립시키고 추방하는 방식보다 결코 더 야만적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어떤 행위가 어떤 의도나 목적으로 행해지는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개인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자질의 중요성을 찾아낸다. 족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갖는 책임감에 주목한 것이다. “족장들이 존재한다는 모든 인간 집단에는 자기의 동료들과는 달리 중요성 그 자체를 사랑하며, 그것을 책임지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동료들이 회피하는 공적생활의 부담, 그 자체에서 충분한 보상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6. 저자는 브라질 원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적 속성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 공통적인 의미를 추적한다. 원주민들의 열악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차별적 행위를 통해 ‘정치조직이 사회의 생존형태를 결정하기는커녕, 생존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인간들이 인구증가나 그밖에 심각한 문제를 직면했을 때 특정 집단을 제거함으로써 안정을 찾으려는 시도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나치의 인종청소에 대한 인간의 잠재적이고 근원적인 태도를 짐작하게 할 수 있다.
7. 우리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찰은 결국 우리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민족학적 탐사의 결과로 알게 된 것은 “완전한 사회란 없다. 각 사회는 그것이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그 자체 내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 불순물은 구체적으로는 숱한 양의 잔인, 부정, 그리고 무감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행위는 거의 동일한 유형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과업을 수행하였고 동일한 목적을 부과하였으며 오직 그 변천 도중에 방법만이 변했다는 것이다.”
8. 이러한 성찰은 결코 서구의 세계가 미개 사회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근본적인 동일성은 비록 다양한 얼굴을 한다할지라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화와 문명을 이유로 수많은 원시사회는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전파된 전염병은 수많은 원주민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들의 문화는 단지 흥미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부드러우면서 무력한 희생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라지게 한 운명을 이해하는 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탐욕스런 대중 앞에서 사라진 그대들의 모습을 대신하는 총천연색 사진첩을 자랑스레 흔들어대는 요술, 당신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요술을 부리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9.< 슬픈 열대>는 브라질 지역의 민족학적 연구에 대한 보고서이며, 신비스런 세계에 대한 탐험기일 뿐 아니라 뛰어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저자의 기록은 단지 사건의 전개와 관찰된 것들에 대한 객관적 묘사를 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관찰과 찬사 그리고 감각적인 표현들로 넘쳐난다. 현란한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사는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묘사를 능가할 정도이다. 내용에 대한 흥미 뿐 아니라 형식적 아름다움에 탐닉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슬픈열대>는 문명비평서이다. ‘슬픈 열대’에는 브라질 원주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중동에 대한 인상과 관찰도 등장하는 데, 특히 그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슬람교이다. “이슬람은 몇 가지 배제(사회생활로부터의 여성의 배제, 정신적 공동체로부터의 비신도도의 배제)를 담보로 해서 그것(평온)을 손에 넣었다. 이에 반해서 불교는 그 평온을 하나의 융합, 즉 여성과의 융합, 인류와의 융합으로서, 그리고 신격의 무성적적인 표상 속에서 포착하려 한다.”
10. <슬픈 열대>는 낭만적인 탐험의 흥미로움과 문명의 침투로 인한 자연적인 세계의 종말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문명의 복합성에 대한 감각과 성찰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현란한 문체로 표현되는 우리 세계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인류적인 통찰과 함께 사라져 가는 존재에 대한 슬픔과 만나게 될 것이다.
첫댓글 - 문화인류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생존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과업을 수행하였고 동일한 목적을 부과하였으며 오직 그 변천 도중에 방법만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