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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 특별행사
명화를 만나다
근현대회화 100선 전을 다녀와서
어쩌면 내가 더 들뜬 건지도 모른다.
이 전시회가 공고되던 지난 10월부터 나는 꼭 보아야지 하는 마음을 꼬옥 품고 지내왔다.
서울, 그러나 우리는 부산에 산다. 왜 우리는 문화 불모지니, 예술 문외한이니 하는 소리에 기죽어 사는 건가, 내심 괘심한 마음이 솟기까지 한, 나름의 문화인, 예술인의 이름값이 아우성을 내는걸 참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내 분기탱천이 만들어낸 행사라고 보면 되겠다. 문인산우회가 산만 가야하는 건 아니잖은가, 명색이 문화와 예술을 답사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단체 아닌감.
그러나 그 10월 이후 나는 너무나 바빴다.
연일 신문은 문화인이, 예술인이 연일 인산인해란 보도에 열심이었고,
거기에는 우리의 허 시장님도 목하 상경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일원이 되었다는 기사도 떴다.
긴 겨울이 걷히고, 방학도 끝날 때쯤이면 그 아름다운 곳도 조금은 숙지막하여 우리에게 틈을 주겠거니 하는 얄팍한 계산으로 삼월이 시작되는 그 첫 주, 월요일은 전시관이 휴관이니 화요일로 날짜를 정하고 회장님께는 시산제가 끝난 자리에서 결재를 완료, 문산카페에 공지를 올리고 우리의 마당발 정 국장에게 SOS를 넣는다.
그리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메일을 날리고 일주일이란 말미 동안 그러모아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 일주일 동안 두 달에 걸쳐 편집한 연제문화원의 연제문화를 마무리해야 했고 그 책의 발간과 함께 출판기념회와 내가 사무국장으로 속해 있는 연제문화예술인협의회의 총회를 준비해야 했으며, 게다가 하나 뿐인 내 아이의 혼사로 상견례와 정월그믐 말馬날을 맞아 메주를 장단지에 앉혀 두 해의 식량을 준비해야 하는 일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의 연속과 지독한 감기몸살에 시달려야 하는 산 넘어 산의 형지에 있었다.
버스를 예약하고, 40명 인원을 보며 그래 역시 우리는 예술을 사랑해... 감기쯤은 너끈했다.
출발 전날, 하루를 온이 함께 해야 할 도반들을 먹이고 즐겁게 하기 위해 나 하나 죽어도 좋겠다는 결기가 보였을 게다, 아마 옆에서 봤으면 ㅋ ㅋ ㅋ
그렇게 그 아침, 떡도 있고 빵도 있고 밥도 있고 과자도 있고 과일도 있고 술도 있고, 거기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우리의 버스는 날씨는 쾌청, 바람은 잠자는 도로를 달려 12시, 서울에 입성, 덕수궁 돌담길에 우리를 부린다.
남도엔 매화가 지건만 겨울의 모습이 아직 만연한 덕수궁을 들어서자 부산에는 없는 고궁의 그 고즈넉함이 그냥 좋다. 유유자적한 마음을 불러 궁궐에 걸맞는 우리의 걸음 앞에 먼저 나타난 것은 ‘임직순’의 <모자를 쓴 소녀>가 인쇄된 배너다. 푸른 원피스에 푸른 모자를 쓴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고 넘치듯 붉고 풍성한 꽃그림을 보자 얼른 실물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바빠진다.
덕수궁 석조전 기둥에는 운보의 <아악의 리듬>이 길게 작은 바람을 맞고 있다.
제1관에 들어서자 근대적 표현의 구현이라는 큰 제목아래 1920~30년대 작품들 중
‘이마동’의 <남자>가 우리를 반긴다. 1930년의 남자라기엔 너무나 멋진 모던보이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고 한 손은 잡지를 구겨 잡고 우뚝한 코와 짙은 눈썹이 요즘의 김수현 못잖은 낭만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리고 ‘김환기’의 피난열차- 너무도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을 작은 바퀴로 달리는 피난열차가 이리도 선명한 모습이라니, 암울한 전쟁바닥에서 이러한 색감으로 채색한 빽빽한 사람들이 영판 깎아논 연필자루 같다. 해군 종군기자였던 화가는 아마도 전쟁판의 아수라장도 예술로 치환하는 힘을 지니고 있나보다.
김환기는 내가 제일 보고 싶어 했기에 다음 관에서 다시 만날 명화를 기리며 시인 ‘이상’을 그린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앞에 선다. 분방하고 힘센 붓질에서 박제된 천재 이상은 그 시대의 표상처럼 어둡고 냉철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저 강렬한 인상이 과연 27년을 살다간 청년 이상이란 말인가. 그리고 저렇듯 붉고 강한 색감을 그린 화가가 곱추로 평생을 변방인으로 살다간 구본웅이라니....놀랍고 반갑다. 아마도 더 많이 놀랍고 반가울 명화들이 속속 우리들 앞에 나타나리니...
그리고 제 2관 새로운 표현의 모색-1940~50년대 ‘김환기’의 <산월>앞에서 그가 즐겨 쓰는 푸른색의 혼곤함에 취해 발을 뗄 수가 없다.
언제나 등장하는 그의 달은 그가 인좌도라는 섬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있어 특별한 의미의 푸른색과 함께 하늘과 바다는 모두 같은 공간이며 자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달은 언제나 하늘이 아닌 아래에 있고, 그것은 바다나 호수나 강이 품고 있다.
뒤에 추상미술의 전개에서 다시 김환기는 나를 전율케 했고,
<산월>은 추상으로 가기 전 그 경계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수근과 이중섭은 그야말로 일러 무삼하리오라 할 밖이다.
<빨래터>는 그 시대 여인들의 고달픈 일상이 그녀들의 뒷모습에 묻어 있는 듯 다섯 여인 모두가 뒤태를 보이며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농악>과 <행인>에서 그림 속의 모든 사람들은 발이 놓인 모습으로 갈 길을 예시하는 등 동적인 모습을 그렸으나 그들 모두도 박수근 개인의 일상처럼 어둡고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지 싶게 그려져 있다.
<골목안>은 모처럼 색상이 밝고 선도 선명하게 그려져 아마도 화가가 좀은 안정된 시점에 그리지 않았나 상상을 해 본다.
<절구절하는 여인>은 그의 아내가 큰 딸을 업고 절구질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도슨트의 설명, 아마도 그것 역시 고단한 일상의 한 단면일 테다. 모두들 힘든 생활을 하던 시절, 화가는 아마 더 더욱 고단한 삶을 꾸리고 있었든지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노동이 주제다.
그리고 ‘이중섭’의 코너에서 힘의 상징이며 노동과 희생, 선량한 눈빛의 소를 만난다.
등이 휘고 유난히 긴 꼬리가 휘이 앞으로 감긴 <소>는 크게 부릅뜬 눈과 광기어린 야만성, 폭발할 듯한 힘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붉은 바탕에 노란 색으로 머리를 강조한 <황소>는 그 눈이 투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도슨트는 설명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쩐지 우리들의 아버지 같이 슬프게 보인다. 뒤의 배경은 구름문양과 당초문을 회화한 것으로 이중섭이 고구려 벽화가 많이 있던 평안남도 출신으로 벽화그림에 해박하고, 스스로도 대형 벽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고 실제로도 1945년 미도파백화점 지하에 벽화를 제작한 바도 있어 <황소> 배경의 벽화에 실재하는 무늬를 썼을 것이라는 게다. 그리고 2년 머물며, 가장 평온한 삶을 누렸다는 <통영 앞 바다>풍경과 <가족>과 <길 떠나는 가족>에는 언제나 그리워했던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철철 넘치고 있다.
제3관 전통의 계승과 변화(수묵채색화)- 한국화의 섬세함과 수묵의 향취가 넘쳐나는 공간에서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운보와 아내 ‘박래향’의 <노점>과 ‘이응노’의 <수壽>,서양화에 비해 엄청 큰 대작 속의 붓 자국이 감탄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그 정숙함과 고요 속의 해학을 발견하고 예인들의 재치에 미소가 절로 흘러나온다.
‘변관식’의 <금강 삼선암 추색>은 거대한 바위덩이를 앞에 세우고, 뒤의 만물상을 위에서 보는 듯 그리고 아래의 산길과 사람들은 올려다보는 화법으로 한 화면에 다른 시각을 가져와서 보는 이를 신비 속으로 내몬다. 그리고 <내금강 보덕굴>은 크고 섬세한 필치 뒤에 사람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여 한 순간 긴장을 해제하거니와 사람들의 팔과 발의 방향을 한 방향으로 그려 그 또한 해학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웅장한 자연 속에 인간이란 얼마나 작고 미미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림마다 화제가 있는데 보덕굴에는 소정 자신의 시 「내금강 보덕굴」이 올려져 있다.
나더러 왜 청산에 사냐고 해서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편안하네
복사꽃 시냇물이 아득히 흘러가니
속세가 아닌 별도의 세계라네
다시 들어선 방의 처음에 노란 황금바탕을 펴고 가만히 정면을 주시하는 여인- 길례언니,
너무나 보고 싶었고 너무나 반가웠지만 그 크기에 조금 실망을 한다. 작다. 생각보다...
길례언니의 그 긴 눈과 긴 입술, 긴 손가락 그리고 흰 모자와 붉고 푸른 화관은 늘 곁에 있는 우리 언니 같고 우리 이웃 같고 우리 친구 같아서 마음에 들앉아 수다라도 나누고픈 그런 사람이었는데 만나서 반갑고 좀 작아서 놀랍고, 그러나 내가 모사한 작품으로 지니고 있던 엽서 속의 길례언니와는 비교도 안될 색감과 붓 지난 자리가 사르르 마음을 녹인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청춘의 문>앞에서 예술가의 아픔은 아름다움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본다.
제4관 추상미술의 전개-1960~70년대
색상부터 화들짝 나를 깨운다. 유영국이다. 한 때 그의 색감에 빠져 인쇄물을 모으고 인쇄된 손수건을 화방에 맡겨 액자 속에 가두어 지금껏 감상하고 있으니, 그의 진품 앞에서 내 오감이 깨어나는 건 자명한 이치일 터, 그 강한 색감은 적·청·황·녹·흑 등 다섯 가지 오방색으로 태극과 음양오행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이상하게 홀리곤 한다.
<무제>의 중앙의 노란색과 <지형>의 초록, <산>의 붉은 빛은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적당한 질서와 규칙은 동양적인 감각과 절대자연에 대한 경외와 서정성을 담고 있다한다.
그리고 다시 김환기의 추상화 앞에 선다. 1970년대 점면점화를 추구했던 김환기의 <우주 05-Ⅳ-71#200>와 <12-Ⅴ-70#172>는 특유의 푸른색을 벗어나 노랗거나 좀은 다른 푸른빛으로 조형요소의 점, 선, 면으로 시작된 점화로 빛의 울림을 나타내면서 내면의 모두를 쏟아 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6-Ⅳ-70#166>앞에 서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동통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느낌에 그만 슬퍼지고만다.
저 점 하나, 저 선 하나, 저 면 하나가 모두 우리 일상이리니, 아픔도 있겠지, 아니 슬픔도 있겠지. 더러는 기쁨도 있으련만 그냥 아스라한 상처 같기만 한 이 느낌. 그리고 이 오묘한 푸른색.
그러나 화가는 절친했던 가수 김광섭의 시「저녁에」에서 영감을 받아 뉴욕의 꺼지지 않은 야경, 그리운 고향의 바다 등의 이미지로 재해석,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는 천재시인 이상의 아내였던 김향안과 불륜으로 만나 아내와 이혼한 후 재혼했다.
김향안의 일생 역시 변동림이란 이름으로 3개월 동안 이상의 아내였으며,
뉴욕에서 김환기의 아내가 되기까지 순탄치 않은 예인의 길을 걸어와 이상의 주검을 손수 거두어 묻었던 그 손으로 김환기 사후, 그의 작품과 유품을 모두 모아 서울로 돌아와서 환기미술관이란 이 나라 최초의 사설개인미술관을 세운 여인이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가 이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처럼 그들의 사랑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으로 미술관을 나와 덕수궁을 거닌다.
미술이란 무엇일까? 단순한 무엇을 그린 그런 것, 보여지는 예술이기만 한 걸까?
아름다움을 삶에 가져와 고단한 삶을 채색하며 일궈간 사람들의 노력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으로 아름다운 뜰, 고궁을 걷는다.
그 옛날의 궁궐은 이제 고궁이 되어 우리에게 역사와 영욕을 안기고 기억 속에 쟁여진다.
마침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궁궐 앞을 지키는 수문군들의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행해지는 진풍경을 보고 버스에 올라 인사동으로 이동.
인사동에서 삼삼오오 진미를 찾아 고픈 배를 채우고 다시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박수근 탄생100주년 기념전>을 찾아 4층을 오르내리면서 유화90여점, 수채화 및 드로잉 30여점으로 사후 50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살아난 박수근에 빠진다.
초등학교 교육 밖에는 공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지만 그림 속에서 아픔과 인내 사랑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작가의 모두를 섭렵하고 눈도 마음도 한껏 부자가 되어 인사동을 배회한다. 조각보전도 보고 작고 앙징스런 악세사리도 만져보고 쌈지길을 걸어 운현궁에는 대원군의 매화가 피었을까 가늠하며 운현궁의 수직문을 들어선다.
고아한 기와의 선과 나무의 질감이 주는 한옥의 고풍스러움에 이것도 예술이구나 싶은 마음을 추슬러 매화등걸을 찾았더니, 매화는 상기 일러 피지 아니하고 망울망울 꽃망울이 탱탱하다. 이제 곧 겨울 볕 속에 들어 있는 봄볕이 매화꽃망울을 터뜨릴 터, 한껏 한량의 걸음으로 노락당 앞을 지나 기다리는 버스에 오른다. 이제 부산으로 직행이다.
하행 버스 속에서 이응노와 수덕사의 응노미술관 얘기, 그 얘기 속의 일엽스님과 나혜석을 얘기하고, 김환기와 이상, 그들의 여인 변동림, 즉 김향안을 얘기하며 선각자였던 여인의 삶과 예술, 이상을 향한 김향안의 얘기를 나눈다.
이상은 죽으면서 결혼생활 3개월의 아내 변동림(김향안)의 품에서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마지막 말을 했으며,
“이상,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라고 회상했다는 변동림의 일화를 내가 전한다.
그리고 <친구의 초상>으로 이상을 그린 구본웅의 딸 구근모의 딸이 유명한 발레리나 강수진으로 그녀는 구본웅의 외손녀라는 얘기도 양념으로 함께 버무려 진다.
이렇듯 예술은 얘기를 낳고 얘기는 얘기와 이어지고, 예술과 예술가는 연결되어 우리는 그 안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하루를 만끽한다. 또 하루 아름다움을 추구한 문산의 특별행사가 차창을 적시는 빗줄기처럼 싱그러웁게 접혀간다.
이 비는 부산의 매화를 져내리게 하고 이제 곧 ‘이대원’의 <과수원>에 만발한 그 붉고 화사한 도화를 키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