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풍류도를 언급한 신라의 유학자 최치원이 사용한 ‘동방의 등불’이란 말을 어떻게 타고르가 사용했을까.
【유동식 교수】
“1922년 3.1운동 여파로 한국인들이 침울하던 때, 당시 동경에는 한인 유학생 400명이 있었다. 이 때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다. 인도도 영국의 식민지여서 한국의 3.1운동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또 헐버트가 1905년에 낸 <한국역사>라는 영어 책과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문 등을 통해 타고르도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도쿄 와이엠시(YMCA)에 조선인유학생사무실이 있었는데, 그곳에 타고르를 초대했더니 타고르가 와주고 가면서 그 ‘등방의 등불’이란 시(쪽지)를 적어 건네 줬다고 한다.
일제시대 일본은 일등국민이라고 하고, 우릴 멸시해서 얼마나 심한 열등의식 속에서 살았는지 모른다. 그 땐 영어도 잘 못했지만,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방의 등불만은 다 외웠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의해 속국이 되어도 직접 지배를 받는 식민이 되어 우리말도 마음대로 못쓰고, 성씨도 못쓰게 한 건 일제시대 밖에 없었다.
지금 아무리 시대가 힘드니, 나쁘니 해도, 그 멸시를 당한 왜정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 때는 도저히 당당할 수가 없었다. 어떤 세상도 왜정시대보다는 낫다.”
▶동방자출(東方自出)
최치원(崔致遠)
빛이 왕성하고 실하여
온 누리를 빛나게 하는 것으로는
새벽에 뜨는 해보다 고른 것이 없고
기가 온화하고 무르익어 만물을 기르는 공으로는
봄바람보다 넓은 것이 없다.
이 큰바람과 아침 해는 모두 동방에서 스스로 나온 것이다.
光盛且實而有暉八紘 四方四維 之質者。莫均乎曉日。
氣和且融而有孚萬物之功者。莫溥乎春風。惟俊風與旭日。
俱東方自出也。<四山碑銘 :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중>
▶ 동방의 등불(The lamp of East) – 타고르(Tagore)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 대한민국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i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동방의 등불’의 원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타고르가 네 번째 일본 방문을 마치고 캐나다로 떠나면서 건네준 작은 쪽지 글이다. 시인 주요한이 편집장으로 있던 동아일보는 타고르가 조선에 부탁했다는 기념비적인 문장을 엄연히 메시지라 일컬으며 ‘빛나던 아세아 등촉 켜지는 날엔 동방의 빛’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