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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축복해요!(딤전5:1-8)
1. 서울말보다 경상도 사투리가 더 간단합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을 갑자기
방문해서 며느리가 놀랐을 때, 시어머니가 말합니다. "내가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서 왔다가 손자도 볼겸 들렸단다. 갑자기 와서 많이 놀랐니?" 이 긴 서울말을
여덟 자로 하면 "근처 왔다가 들려데이!" 이것은 부드러운 말이고 좀 거친 말
은, "와 내가 못 올 데 왔나?" 이 말을 듣고 며느리가 어머니도 오셨으니까 나가
서 장 좀 봐 올게요!"하니까, 시어머니가 "번거롭게 무슨 장을 보러 가니 집에
있는 것 대충 먹으면 되지 그냥 집에 있거라!" 이것을 아홉 자로 하면 "고마 됐
다 그냥 있그라!" 이 말은 매우 신사적이고, 거친 말은 "잠시도 내랑 있기 싫나!"
부모님이 아들 집을 방문했는데 아들이 아침에 빵을 먹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애미야 애비 출근하는데 빵을 먹어서 힘나겠니? 밥
을 차려줘야지!" 이것을 열 글자로 하면 "빵 메겨 되나 밥을 메겨야지." 이것은
부드러운 말이죠. 속에 있는 말은 "이랄라꼬 나가 산다 캤나!" 이 말을 듣던 시
아버지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아침밥을 해 먹나 다 이렇게 먹지?" 며느리
편을 듭니다. 시어머니가 "애들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한 얘기인데 당신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 서운하네요." 이것을 열한 자로 하면 "당신한테 쪼매 서운하네
예." 이 말은 그래도 부드럽고 직접화법은, "이 집에 내만 없으믄 되겠네!"
2. 요즘 이런 시어머니가 있겠습니까마는 사람이 사는 알콩달콩한 얘기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른들이 자녀들-다음 세대를 축복
했습니다. 오늘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축복해요. 가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
신 귀한 선물입니다. 가족은 단지 두 남녀가 결혼하여 이뤄진 것이 아니에요.
결혼제도는 사람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에요. 창세기에 인류 최초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죠.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
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었지만,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만드셨어요. 하나님께서 여자-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주례자가 되어 두 사람을 결혼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해주
셨기에 결혼은 거룩하고 소중합니다. 천주교에서는 결혼을 일곱 개의 성례 가운
데 하나로 지키고 있습니다.(혼례성사) 현대인들과 같이 결혼을 가볍게 여겨서
는 안 됩니다. 에덴동산에는 세 가지 큰 축복이 있었어요. 첫째가 노동의 축복
입니다. 에덴에서는 노동이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었어요. 노동은 언제나 축복
입니다. 일하지 않고 놀아보세요. 특히 남자들은 견딜 수 없습니다. 자존감이
상하고. 둘째는 안식일의 축복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안식일을 없애보려고 했지
만 효율성이 떨어져 결국 다 지키고 말았어요.
3. 셋째는 결혼의 축복입니다. 가족을 구성하여 행복하게 사는 축복이 에덴에서
시작되었어요. 세 가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축복입니다. 하
나님께서 결혼한 부부에게 자녀들을 낳게 하십니다.(잉태의 복) 양권사님이 친
손자를 8년 만에 보셨어요. 외손들은 벌써 많이 컸지요. 아들이 결혼을 늦게
했는데 오래 기다렸다가 감격스러운 일이 지난 주중에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들을 키우는 재미를 맛봅니다. 또 자녀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그들도 결
혼하여 또 다른 가정을 세워가지요. 이렇게 해서 가정이 가문이 되고, 가문이
모여 민족이 되고, 민족이 모여 세계-열방이 됩니다. 가정은 인류 공동체의 최
소 단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정에 비유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정이라고 말씀해요.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
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산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신앙은
신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대단한 신비체험을 한 사람이에요. 주님이 부르실
때부터 시작해서(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주님이 임하심), 선교 사역을 하면서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각종 병을 고침, 귀신 쫓음은 물론) 하지만 신앙의 내용
을 보면-하나님의 말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신앙이 상식과 맞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신앙을 말하며 도덕성에 어긋나는 경우를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은 항상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덕을 세웁니다. 성령의 은사도 그렇고요.
고전14:3,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4. 신앙을 빙자하여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대개 이단 사이
비들이 그렇지요. 신천지처럼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부모 자녀 관계를
끊게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교회 공동체 내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대해
야 하는지 교회의 법도를 가르쳐줍니다. 1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이(어른)를 꾸짖
지 말고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어른들에게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대하라고
합니다. 자기 아버지와 같이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게 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를 대할 때도 남 보듯 하지 말고 자기
형제와 같이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2절,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
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늙은 여자(어른)에게도 자기 어머니에게 하듯 하라. 지
극히 상식적인 교훈이에요.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정욕으로 대하지 말고 친자매와 같이 대하라는 말씀이에요. 교회 내에서
성적으로 성결하라고. 3-4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
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홀로된 과부를
존대하라. 그 과부에게 후손들이 있으면 그들이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
라.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에요.
5. 5-6절,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가족이 없는 외
로운 과부는 항상 기도하라. 그렇지 않으면 향락을 좋아하고 살았으나 죽은 자
가 된다고. 이렇게 해야 그들이 세상에서 책망을 받지 않게 될 것이고, 덕이 된
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고 향락을 좋아하여 세상에서 책
망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뉴스에 종종 나옵니다. 물질 문제, 성문제, 자
살 등으로.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
렇습니다.
이런 일들이 전도의 문을 막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빛을 가리는 것은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이에요. 오늘 한
국교회의 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실제 그 삶의 중심에는 예수가 없어요.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책이 있습니다. 제자반에서 함께 읽는 책이에요. 내 마음이 진정 그리
스도의 집이 되어 살아갈 때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에요. 내 마음이 그리
스도의 집이 되지 않고 빈집이 되면 그때 위기가 옵니다.
6. 우리 마음이 빈집이 되면 하나님을 떠나 살아요. 복음을 말하지만, 복음과
상관없이 살아요. 교회와도 점점 멀어져요.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다시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집으로 만들면 돼요. 주님을 내 안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십니다. 구주만이 아니
라 내 삶의 주인으로.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
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자연히 빛을 발합니다. 소금이 됩니다. 복음을 가리
지 않고 복음의 빛을 발합니다.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됩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부모와 어른들을 공경하고 섬깁니다. 예의 바르게 대합니다. 성경은
신구약에 골고루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해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축복
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는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축복과 저주(형벌)이 분명해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 약속하십니다.(장수의 복, 출20:12) 사도
바울도 엡6:3에서 이 말씀을 인용해서 전하고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인류
최고의 복인 장수를 허락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부모
공경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하나님께서 장수의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7.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예의도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
씀합니다.(출21:15,17) 또 이런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합니다.(신27:16)
신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재판장소)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악한 자이기에 그들을 공동체 가운데 두지 말고 제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서운 말씀이지요. 공동체의 쓴 뿌리이기에.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부모공경이 몸에 배도록 하였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기 위한 독특한
화법입니다. 예수님도 부모공경을 가르치시고, 친히 부모공경의 본을 보이셨습
니다. 유교보다 성경이 효도를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주님은 30세까지 홀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섬기셨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어서. 요셉에게 배운 목수
의 일을 하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며 세상을 떠날 때는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어요. 끝까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돌보셨습니다.
8. 부모공경이 이처럼 엄격한 율법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모공경이 예나 지금이
나 쉽지 않은 일임을 발견할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이 그만큼 악하고 죄에
물들어 있다는 증거에요. 우리는 저주와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부모공경을
하지 않아요. 이런 신앙을 율법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유교적 사상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한층 높은 차원의 믿음 생활을 누립
니다. 우리의 새 신분-하나님의 자녀에 맞는 행함으로서 부모를 공경합니다.
공경이란 말은 가치나 가격을 높이는 것이에요.
부모 공경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
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고 또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기에 자연
스럽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부모공경은 마음으로 행동으로 그리고
기도로 해야 합니다. 마음만이 아니고 행동이 따라야 해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 1절
과 같이 부모에게는 말도 잘해야 합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또 부모의 마음
을 상하지 않는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부모를 향한 존경심과 올바른 언어
생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근본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에요.
9. 행동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필요한 물질을 채워드리고(4절), 외로워하시지 않도록 전화를 드리고 또 방문합
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적당히 가져야 해요. 부모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여행을 함께 하거나 시간을 같이 가지면 기뻐하십니다. 외로워하시지
않고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행복은 큰 것에만 있지 않고 사소하고 작은 일로부
터 감지하고 누리지요. 부모공경은 마음과 행동으로만이 아니라 기도로도 해야
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기도하되, 보통 하지 말고 뜨겁게 기도합시다. 우리가 남을 위해
중보 기도하듯이 부모를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합시다. 부모는 평생 자식을 위해
서 기도하십니다.(종교를 떠나서) 하지만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역할 바꿈이 필
요해요. 부모의 건강이 점차 쇠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공경의 내용은 어려운 것
이 아닙니다. 부모가 내게 해주신 대로 그것을 돌려드리는 것이에요. 내게 해주
신 것만큼 다 돌려드리지 못해도 돼요. 이상하게도 우리는 내 자식에게 하는 만
큼 부모에게 해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물질
로 우리에게 쏟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마음으로 물질로 부모님께 돌려드리고요.
10.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력이 약한 부모님을 대신해서 이제는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서 엎드려야 합니다. 새벽기도 및 저녁기도회에서 기도합시다.
어버이날, 장인 장모님께 감사 전화를 드리며 아내에게 귀한 영적 유산을 잘
물려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드렸어요. 목회자가 새벽과 저녁에 기도한다고 사모도
기도합니까? 모두가 그렇지는 못해요. 그런데 저와 함께-저보다 더 기도하는
아내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우리가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되, 부모
를 위한 기도를 항상-아침과 저녁으로 합시다. 저도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할 때
우리 삼남매와 더불어 장인 장모님을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
가 포항에 오기 전에 별세하셨기 때문에. 부모를 위한 기도 응답은 다른 기도의
응답보다 신명나고 힘이 납니다.
제 일생에 최고의 부모를 위한 기도 응답은 예수님을 영접하신 것입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무렵 어머니가 모든 우상 섬김을 멈추셨어요. 아들이 예수를 믿으
니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 결단이 늘 고마웠
고 평생 잊지 못합니다. 이후 7년 만에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가기 전에 아버지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시어 고난 가운
데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저희 장인 장모님은 원로장로 및 은퇴 권사이신데
지금도 새벽기도를 하시며 저희를 위해 중보기도하십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성령체험을 하고 성령님을 통해 목회 및 선교사역을 하게 된 것은 어
른들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 부부도 어른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요.
제가 가장 잊지 못하는 장인 장모님을 위한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11. 하나는 장인께서 기침이 심하셔서 전화로 기도를 해드린 것입니다. 다른 일
로 전화를 하고 끊었는데, 장인의 기침 소리가 제 마음을 아프게 했고 기도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기도 후 놀라운 일이 일
어났습니다. 전화 기도로 장인의 기침이 그쳤습니다. 전화 기도 응답을 듣고,
지금도 저녁마다 하는 전화 기도가 시작되었어요. 또 한 번은 장모님의 발가락
이 오므라드는 현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는 제가 서울의 장신대에
강의를 하러 다닐 때. 장모님의 발가락이 낫기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제가
강의를 마치고 인천 동서네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던 장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가서 동서 부부와 장모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동서부부를 축복하고 장모님
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어머니 양말을 벗으시라고.
사위가 장모의 발가락을 붙잡고 하나님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내
어머니의 고통으로 다가오면서 이 고통을 제거해달라고. 장인의 경우와 마찬
가지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이전에 신장 투석을 하시다가
하시지 않게 된 기적도 있었습니다. 보통 일어나지 않은 경우이죠. 부모를 위한
기도는 응답 여부를 떠나서 평생 이어져야 합니다.
12. 치유 기도만이 아니라 부모의 필요를 따라 우리가 간구하는 제목이 지속
적으로 응답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로 부모님이 기도 응답을
누리면 이보다 큰 효도가 없습니다. 인생 문제가 해결된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어른들이 발견합니다. 어른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여생을 사
실 수 있습니다. 부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며, 부모를 사랑하며 기도하는
제목을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세요. 이러한 응답의 축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