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관성이 있다. 나이가 쌓일수록 높아지는 고집의 벽도 있다. 그 벽이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가 배신감에 치를 떨거나 살아온 연륜이 서글퍼지는 때도 있을 것이다. 모두 화석화하는 자신의 관념에서 비롯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했다. 60에 이순耳順이라고, 70에 종심소욕從心所欲이라도 불유구不踰矩라고도 했다. 공자孔子시대는 큰 그릇의 기준에 통과하면 대인大人이었다. 연륜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군자君子를 칭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회자膾炙되니, 그래서 공자였다/
대기도 유구도 대인도 군자도 퇴색한 시대에 오늘의 우리는 살고 있다. 보상없는 인생에 보답없는 연륜이 못내 서글픈 시대가 서서히 압박해온다. 다음 생이 있으니 도전하랴 했을 떼 선뜻 예스Yes라고 하기 어려운 시대는 이미 자신을 엄습하고 있다/
인과因果와 응보應報는 이미 합종合縱의 테두리를 벗어던졌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인과론적 연횡連橫은 이제 막을 내리려는 모양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누에고치처럼 자신을 감싼다/
파발擺撥이나 봉수烽燧가 정보를 전달할 때는 슬로 모션Slow Motion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무선통신은 모르스부호Morse code와 신호기라는 눈에 보이는 인과가 있었다. 추론의 논리적 근거를 뇌가 파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대수함수의 세계였다/
그런데 빛이란다. 파동이건 입자건 빛이면 족했던 어제가 있었다. 오늘은 전파요, 통신이고 전파+통신이란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빛에서도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빛Li-Fi이란다. 아직은 전파가 끼어있지만 내일은 빛의 독립자존의 날이 오리란다/
허어...이게 웃을 일인가. 아니면 울어야할 일인가...그렇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날이 오면 인솔깃발을 든 레밍Lemming 쥐가 되어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햐나...일상의 초월함수 앞에서 호곡號哭하랴, 그 내일이 오면...//
-제 글은 꽁꽁 묶고서 삼천 자씩이나 쓰란다. 그랑깨내 한 줄도 못 채우면서 3000앞에서 뻔뻔한 뺀질이들도 설레발을 친다. 그게 오늘이라면 내일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하랴...무한추락하랴...
이하: 뻔뻔 뺀질 기사의 사전적 의미와 그 야유의 수사법을 까발김-발췌 혹은 인용을 표방하는 다음카페의 미관정화 포맷에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임
기사: 가린다고 가려도 보일 건 다 보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식블로그를 포토샵으로 빌림
이미지: 일곱겹으로 가려도 보려고 맘만 먹으면 다 보이는데 ‘머땀시’ 뭐 주고 뺨 맞을 짓을 하는지 투덜거리게 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식블로그에서 포토샵으로 베낌
-저작권이라는 꼴볼견을 쥐어 흔들거나, 눈으로만 보고 침은 그냥 삼키라는 배째라 기사는 나중 상업적 이용이나 무단전재에서나 짤짤 흔드는 게 국민건강에 좋을 텐데...와그라능기요넘사시럽꾸마...
-斜體Italic은 한글맞춤법에서 규정하는 표준어가 아닌 비표준국어를 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