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靑鶴洞)
- 이인로(李仁老)
지리산은
두류산(頭留山)이라고도 한다. 북쪽 백두산으로부터 일어나서 꽃봉오리처럼 그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어져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러서야
수천 리를 서리고 얽혀서 그 테두리는 무려 십여 고을에 뻗치었기에 달포를 돌아다녀야 대강 살필 수 있다. 옛 노인들의 전하는
바로는 "그 속에 청학동(靑鶴洞)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 리를 가서야
허광(虛曠)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엔 모두 양전(良田) 옥토(沃土)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으나, 거기엔 청학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고 한다.
연전에 나는
당형(堂兄) 최상국(崔相國)과 같이 옷깃을 떨치고 이 속된 세상과는 등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 우리는 서로 이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고리짝에 소지품을 넣어 소 두서너 마리에다 싣고 들어가 이 세속과는 담을 쌓기로 했다. 드디어 화엄사(華嚴寺)로부터
출발하여 화개현(花開懸)에 이르러 신흥사(新興寺)에 투숙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가 선경이었다.
천암(千巖)은
경수(競秀)하고 만학(萬壑)이 쟁류(爭流)하며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니 거의 인간 세상이
아닌 듯하나 찾고자 하는 청학동은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만 바윗돌에 남기고 돌아왔다.
두류산은 드높이 구름 위에 솟고
만학 천암(萬壑千巖) 둘러보니 회계(會稽)와 방불하네
지팡이에 의지하여 청학동 찾으려 했으나
속절없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숲 속에서 들리네
누대(樓臺)는 표묘( )한데 삼산(三山)은 안 보이고
써 있는 넉 자가 이끼 끼어 희미하네
묻노니 선원(仙源)은 어데인가
낙화 유수(落花流水)만이 가물가물
어제 서루(書樓)에서
우연히 오류 선생집 (五柳先生集)을 훑어 보다가 도원기(桃源記)가 있기에 이것을 반복해 보니, 대개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그윽하고 깊어 궁벽진 곳을 찾아 산이 둘렸고 시내가 거듭 흘러 초동(樵童)도 갈 수 없는 험한 곳을 찾아 여기에
살았던 것이다. 진(晋)의 태원(太元) 연간에 어떤 어부가 다행히 한 번 그 곳을 찾았으나 그 다음엔 길을 잃어 그 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세에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와 시로 전하여 도원(桃源)으로써 선계(仙界)라고 하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였으나
아마도 그 기록을 잘못 읽었기 때문일 것이니 사실은 저 청학동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유자기(劉子驥)와 같은 고상한 선비를
만나서 나도 그 곳을 한 번 찾아가 볼 것인가.
파한집(破閑集)'에서
지리산은 두류산(頭留山 :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북쪽 백두산으로부터 일어나서 꽃봉오리처럼 그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어져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러서야 수천 리를 서리고 얽혀서[북쪽 백두산으로부터∼얽혀서 : 지리산의 웅대한 규모와 수려한 봉우리의 자태가 묘사되어 있다] 그 테두리는 무려 십여 고을에 뻗치었기에 달포(한 달 이상이 되는 동안)를 돌아다녀야 대강 살필 수 있다. 옛 노인들의 전하는 바로는 "그 속에 청학동(靑鶴洞)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狹窄) : 몹시 좁음.]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 리를 가서야 허광(虛曠 : 텅 비어있음. 탁 트여 넓게 펼쳐짐)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엔 모두 양전(良田) 옥토(沃土)[(良田沃土) : 농사를 짓기에 매우 비옥한 땅.]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으나, 거기엔 청학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고 한다. - 청학동의 지형과 유래
연전[몇 해 전]에 나는 당형[(堂兄) : 사촌, 종형제지간을 말함.] 최상국(崔相國)과 같이 옷깃을 떨치고 이 속된 세상과는 등지고[은둔] 싶은 마음이 있어 우리는 서로 이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고리짝[대오리 따위로 엮어서 상자같이 만든 물건 주로 옷을 넣어 두는 데 쓴다]에 소지품을 넣어 소 두서너 마리에다 싣고 들어가 이 세속과는 담을 쌓기로 했다. 드디어 화엄사(華嚴寺 : 전남 구례군 지리산 노고단 서쪽에 있는 사찰)로부터 출발하여 화개현(花開懸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방의 통일 신라 때 행정 구역)에 이르러 신흥사(新興寺)에 투숙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가 선경이었다. - 청학동으로의 출발
천암(千巖)은 경수(競秀 : 빼어남을 다툼)하고 만학(萬壑 : 첩첩이 겹쳐진 깊고 큰 골짜기)이 쟁류(爭流 : 다투어 물이 흐름)하며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니 거의 인간 세상이 아닌 듯하나[천암(千巖)은∼아닌 듯하나 : 수많은 바위가 서로의 빼어남을 다투고 수많은 골짜기의 물이 흘러 내리며, 산과 계곡의 웅장함과 평온한 인가를 감싸는 꽃의 기운이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구절로 선경과 다름없는 지리산의 경치를 이상적으로 묘사한 부분] 찾고자 하는 청학동은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천암은 경수하고 ~ 찾지 못하고 말았다 : 바위와 산, 계곡이 아름답게 펼쳐진 곳은 다 보았으나 청학동은 결국 못 보았다는 뜻이다. 청학동의 현실적 부재(不在)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는 수 없이 시만 바윗돌에 남기고 돌아왔다.
두류산은 드높이 구름 위에 솟고
만학 천암(萬壑千巖) 둘러보니 회계(會稽 : 중국의 지명)와 방불[거의 비슷]하네
지팡이에 의지하여 청학동 찾으려 했으나[지팡이에 의지하여∼했으나 : 사람 발길이 드문 험한 곳이라는 것이 '지팡이에 의지하여'라는 표현에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청학동'은 청학이 서식하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속절없는[어찌할 도리가 없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숲 속에서 들리네[원숭이 울음 소리는 산이 깊다는 말로 일종의 관용어임]
누대(樓臺 : 누각과 대사)는 표묘(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모양. 아득하고 어렴풋함)한데 삼산(三山 :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세 개의 산)은 안 보이고[삼산(三山)은 안 보이고 :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세 개의 산으로써,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신선의 지경이 보이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적은 보이나 신선의 지경은 보이지 않고]
써 있는 넉 자가 이끼 끼어 희미하네
묻노니 선원(仙源 : 신선 세계, 곧 청학동)은 어데인가[결국 갈 수 없는 곳이 선원이라는 뜻이다]
낙화 유수(落花流水 :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여기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뜻함)만이 가물가물 - 선경에 대한 감상
어제 서루(書樓 : 책을 넣어 두거나 서재로 쓰는 다락)에서 우연히 오류 선생집 (五柳先生集)을 훑어 보다가 도원기(桃源記)가 있기에 이것을 반복해 보니, 대개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그윽하고 깊어 궁벽진 곳을 찾아 산이 둘렸고 시내가 거듭 흘러 초동(樵童 : 땔감을 하는 어린 나무꾼)도 갈 수 없는 험한 곳을 찾아 여기에 살았던 것이다. 진(晋)의 태원(太元) 연간에 어떤 어부가 다행히 한 번 그 곳을 찾았으나 그 다음엔 길을 잃어 그 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무릉도원의 고사]
후세에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와 시로 전하여 도원(桃源)으로써 선계(仙界)라고 하고 장생불사(長生不死 :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아니함)하는 신선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였으나 아마도 그 기록을 잘못 읽었기 때문일 것이니 사실은 저 청학동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유자기(劉子驥 : 진(晋)나라 남양 사람. 물욕을 떠나 산수를 즐기며 은일한 생활을 함)와 같은 고상한 선비를 만나서 나도 그 곳을 한 번 찾아가 볼 것인가.[유자기(劉子驥)와∼볼 것인가 : 나도
한번 이상향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표현한 구절로 산수를 즐기며 은일한 생활을 한 유자기처럼 살고자 하는 심경을 노래하고
있으며, 이것은 찾지 못한 이상향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큼을 나타내 줌과 동시에 결국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섞여 있다.] - 청학동 전설과 지향성
이 작품은 이상향인
지리산 청학동을 찾으려 한 작자가 결국 찾지 못하고 바윗돌에 시만 남기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담은 기행 수필이다.
어원상 유토피아(utopia)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땅'을 의미한다. 인간의 현실 세계를 살면서도 유토피아를 꿈꾼다.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 대한 열망은 간절한데, 그 간절함은 유토피아를 지극히 이상(理想)적인 공간으로 해석하게 마련이다. 성서에 묘사된
'에덴 동산'이나 서구 신화상의 '아르카디아(Arcadia)', 동양의 고전에 묘사된 요순 시대의 공간은 모두 이러한 유토피아를
향한 동경의 표현이다.
인간은 현실 세계에
살면서 이상적인 세계를 늘 꿈꾸는 존재이다. 그 이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 까닭에 유토피아일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상 세계가 현실에 존재할 때 그것은 이미 이상 세계가 아니며,
이상 세계로서의 청학동은 그대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작자의 고집과 믿음이 어우러져 있는 한문 수필이다. 결국 이상향이란 현실과
대립적 성격을 가지면서 현실 속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이 글 안에 담겨 있으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상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