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3종 인간과 3관이란
불설칠처삼관경(佛說七處三觀經)
【3】 3종 중생, 3관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부류의 사람이 있나니, 무엇이 세 부류인가? 첫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둘째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며, 셋째는 두 눈이 다 있는 사람이다. 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給孤獨園。佛告比丘:“有三輩人。何等三?一輩眼不見,二輩一眼,三輩兩眼。
어떤 사람을 눈이 없다 하는가?
비구여,
세간에 이 눈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나는 아직 살아갈 방도[治生]가 없으니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며, 이미 얻은 것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無有眼爲何等?世閒比丘有人無有是眼因緣,我當爲未得治生,當爲治生,無有是意已得,亦復妄用
또한 이러한 안목도 없는 데다가,‘나는 마땅히 보시를 하고 복을 지어 이 인연으로 후세에 선(善)을 좋아하고, 이 인연을 좇아 천상에 나리라’ 하는 계획도 전혀 없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눈이 없다 이름한다. ,亦無有是眼,我當爲布施,我當爲作福,令我從是因緣後世善樂,亦從是上天無有計,是名爲無有眼。
어떤 사람이 눈이 하나만 있는 사람인가?
비구여,
세간에 눈이 하나인 자는 다음과 같은 눈만 있나니, 즉 ‘얻지 못한 재물은 얻게 하고, 이미 얻은 재물은 감소되지 않게 하리라’라고 하는 다만 이러한 눈만 있을 뿐이고,‘나는 마땅히 허깨비이니 보시하여 마땅히 이 인연을 좇아 하늘에 나리라’ 하는 눈은 없는 이를 하나의 눈만 가진 이라 이름한다. 一眼人名爲何等?世閒比丘一眼者,有如是眼,令我未得財當爲得,已得財當爲莫折減,但有是眼無有是眼,我當爲幻布施,當從是因緣得上天,無有如是眼,是名爲一眼。
두 눈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비구여,
세간에 다음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인데, 즉 ‘나로 하여금 아직 얻지 못한 재물은 얻게 하고, 이미 얻은 재물은 감소되지 않게 하리라’라고 하는 이러한 눈이 있고, 또한 ‘내가 보시행을 하여 이 인연을 좇아 하늘에 나리라’ 하는 눈도 있는 사람을 두 눈 다 가진 이라 이름한다. 兩眼名爲何等?世閒比丘有人有是眼,令我未得財產當爲得致,已致得當爲莫折減,有如是眼,亦復有是眼,令我行布施,令從是因緣上天,亦有是眼,是名爲兩眼人。
이 뒤에서는 생각이 다한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접촉이 다한 것이 생각[思想]이 다한 것임을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생각이 다한 것을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생각이 다하는 행을 받들 줄 아는 것인가? 從後說想盡識,栽盡爲思想盡識,如是爲思想盡識。何等爲思想盡受行識?
이것은 8행(行/8正行/8정도; 제견(諦見) · 제념(諦念) · 제어(諦語) · 제치(諦治) · 제구(諦求) · 제행(諦行) · 제의(諦意) · 제정(諦定)을 아는 것이니, 바른 견해[諦見]로부터 바른 삼매[諦定意]까지 여덟 가지가 됨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생각이 다하는 행을 받들 줄 안다고 한다. 是爲八行識識,諦見到諦定意爲八,如是盡思想受行識。
어떤 것이 생각의 맛[味]을 아는 것인가?
작위(作爲)하는 바 생각의 인연으로 즐거움이 생기고 마음이 기뻐지게 되나니, 이와 같은 것이 생각의 맛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思想味識?所爲思想因緣生樂得意憙,如是爲思想味識
어떤 것이 생각의 괴로움을 아는 것인가?
작위하는 바 생각은 항상함이 아니고 없어짐이며 괴로움이며 변천하는 법이니, 이와 같은 것이 생각의 괴로움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思想惱識?所爲思想不常盡苦轉法,如是爲思想惱識。
어떤 것이 생각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인가?
생각이 탐욕하는 것을 잘 알아 탐욕하는 것을 능히 끊을 수 있으며 탐욕하는 것에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생각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思想要識?所思想欲貪能解,欲貪能斷,欲貪能自度,如是爲思想要識。
어떤 것이 생사를 아는 것인가?
여섯의 몸이 생사임을 아는 것이니, 눈으로 접촉하여 생사함을 알고, 귀ㆍ코ㆍ입ㆍ몸ㆍ뜻이 접촉하여 행하게 되니 이와 같은 것이 생사를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識?爲六身生死識,眼栽生死識,耳鼻口身意栽行,如是爲生死識
어떤 것이 생사의 원인인가?
접촉의 원인이 생사의 원인임을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생사가 다함을 아는 것인가? 접촉이 다한 것이 생사가 다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習?栽習爲生死習識。何等爲生死盡識?栽盡爲生死盡識。
어떤 것이 생사의 욕망이 다하는 행을 받들 줄 아는 것인가?
이는 여덟 행으로 바른 견해로부터 바른 선정까지 여덟 가지가 됨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생사의 욕망이 멸하는 행을 받들 줄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欲盡受行識?爲是八行識,諦見至諦定爲八,如是爲生死欲滅受行識。
어떤 것이 생사의 맛을 아는 것인가?
작위하는 바의 생사 인연으로 즐거움이 생기고 마음이 기뻐지게 되나니, 이와 같은 것을 생사의 맛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味識?所爲生死因緣生樂喜意,如是爲生死味識
어떤 것이 생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인가?
모든 생사는 항상함이 아니며 없어지고 괴롭고 변천하는 법이니, 이와 같은 것이 생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惱識?所有生死不常盡苦轉法,如是爲生死惱識。
어떤 것이 생사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인가?
만약 생사의 탐욕에서 탐욕을 길들이고 끊을 수 있고 벗어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이 생사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生死要識?所爲生死欲貪隨欲貪能斷欲能度,如是爲生死要識
어떤 것이 식신(識身)의 6쇠(衰;6경)를 아는 것인가?
눈으로 접촉하여 식(識)이 생기고 귀, 코, 입, 몸, 뜻으로 접촉하여 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식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識身六衰識?眼栽識,耳鼻口身意栽識,如是爲識識
어떤 것이 식의 원인[習]인가?
명자(名字)의 원인이 식의 원인이니, 이와 같은 원인이 식이 된다.
어떤 것이 식이 다하는 행을 받들 줄 아는 것인가?
명자가 없어진 것이 식이 다한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식이 다한 것이다. 何等爲識習?命字習爲識習,如是習爲識。何等爲識盡受行爲識?命字盡爲盡識,如是爲識盡
어떤 것이 식이 다한 행을 받들 줄 아는 것인가?
여덟 행으로 바른 견해로부터 바른 선정까지 여덟 가지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식을 다하는 행을 진리 그대로의 아는 것이다. 何等爲識盡受行爲識?八行,諦見至諦定爲八,如是爲識盡欲受行如諦識。
어떤 것이 식의 맛을 앎[知]인가?
식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즐거움과 기쁜 마음이 생기나니, 이와 같은 것을 맛이 생긴 것이라 하고, 맛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識味知所識?因緣故生樂生喜意,如是爲味生爲味識知。
어떤 것이 식의 괴로움을 아는 것인가?
식은 없어짐이고 괴로움이며 변천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식의 괴로움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識惱識?所識爲盡爲苦爲轉,如是爲識惱識。
어떤 것이 식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인가?
식의 탐욕을 끊을 수 있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식에서 벗어남을 아는 것이다. 何等爲要識?所識欲貪能活欲貪能度,如是爲要識。
비구는 이와 같이 7처(處)를 깨달아 알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색(色)과 원인과 없어짐과 도(道)와 맛과 괴로움과 벗어남이다. 如是比丘!七處爲覺知。何等爲七?色習盡道味苦要。
이 5음(陰)에도 각각 일곱 가지의 일이 있다. 어떤 것이 3관(觀)인가?
식에도 역시 일곱 가지 일이 있어 5음을 이루기도 하고 6쇠(衰)를 이루기도 하는데, 是五陰各有七事。何等爲三觀?識亦有七事,得五陰成六衰
몸을 관찰함이 첫 번째이고
색이 5음임을 관찰하는 것이 두 번째이고
6쇠를 관찰하는 것이 세 번째이다. 그러므로 3관이라고 말한다. ,觀身爲一色,觀五陰爲二,觀六衰爲三,故言三觀。
비구여, 7처를 잘 알고 또한 3관을 할 수 있다면 오래지 않아 도를 닦아 결박을 끊을 것이고, 결박이 없어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하여 슬기롭게 도를 보고 진리를 본다. 比丘!能曉七處亦能三觀,不久行修道斷結,無有結意,脫黠活,見道見要,
한번 증득하면 나고 죽는 생각이 끊어지고 할 일을 다 끝내 다시는 나고 죽는 이 세계에 돌아다니지 않으며 도를 얻게 되리라.” 一證受止,已斷生死意行,所作竟,不復來還生死,得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비구들이 기뻐하여 받아 행하였다. 佛說如是,比丘歡喜受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