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눈 속의 사람」을 읽고
발제: 2025.3.17.월. 박은희
어떤 기억은 흐리고 어떤 기억은 선명하다. 머리에 남은 기억은 금방 흐려지고, 가슴과 몸에 새겨진 기억은 오래가는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를 배웠다. 대학교에 가서 피아노 시험을 볼 때 무사히 통과했다. 대학 4년 내내 장구를 쳤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출근하는 길에 도로 위에서 고양이 새끼가 펄떡거리는 모습을 봤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단전에서 올라오는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났었다. 학교 도착할 때까지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뛴다.
자신이 찾아낸 ‘사람이 총에 맞고 신체의 일부에 구멍이 나면서 피를 흘리며 시체가 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기억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최길남 씨는 과거의 영토에 발이 묶인 채 최소한의 힘으로만 현재를 견디며 살았다. 그를 견디게 한 것은 개가 짖었을 때 개를 저지하고 젊은이들을 살린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화자(기홍)의 꿈속에 최길남씨는 누구의 묘인지도 모르지만 보속의 기회로 삼고, 보상 없이 묘지를 돌보며 행복해했다. 화자의 바람인지도 모르지만 실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기억을 잊기 위해 술에 빠져 살다 길에서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길남씨는 조카 덕분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전쟁과 독재와 혁명의 역사를 현장에서 경험한,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언어를 1년 동안 듣고 기록한 사람은 어떻게 견딜까?
증언은 객관적일 수 없고, 증언자의 기억 속에서 선택된 언어다. 증언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구경꾼의 위치에서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럽다. 한시적으로 참여한 구술작업은 기홍과 여진을 지치게 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뻔뻔하다는 생각은 세상이 오물 위에 세워진,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이라는 환멸로 이어지게 했다. 거의 완전히 잊힌 그 전쟁을 기억하며 살게 될 거라는 예감은 끔찍하기만 했다.
둘의 관계는 멀어졌다.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지만 7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작업한 내용으로 연극이 만들어졌고 여진은 연극을 본 후 최길남씨와 종종 연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카의 연락을 받고 기홍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길남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기홍은 시간이 멈춘 듯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여진을 기다려준다. 그녀가 무심히 쌓인 눈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움직일 때까지.
직접 경험했거나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 없다. 미루어 짐작한 할 뿐. 그리고 한 번 들은 사람은 쉽게 잊는다. 소설을 통해 다시 되새기게 된다. 내가 최길남씨라면? 내가 기홍과 여진이였다면? 무의미한 것 같다.
기억은 과거다.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다른 관점으로 볼 수는 있다. 기홍은 여진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과거를 혼란스럽게 증언하는 자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여진도 환멸을 통과해서 자신의 길을 가기 바란다. 기홍이 여진을 보듯이 우리도 여진을 본다.
현재가 지나가면 과거로 기억된다. 현재를 어떤 기억으로 만들 것인지는 나와 우리의 몫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