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기 사진 중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지난 회에 올리지 않은 것으로 시그나기의 경치를 한 번 더 기억하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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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서 남쪽으로 2km 정도에 보드베 수도원이 있다.
시그나기에서 남쪽으로 2km정도를 가면 보드베 수도원이 있는데 이 수도원에 들렀다가 트빌리시로 가게 된다.
보드베 수도원은 4세기의 성녀 니노(296~332)의 유적과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9세기에 건축되어 17세기에 재건축되었다
고 한다. 성녀 니노는 조지아 최초의 선교사로 이곳은 조지아에 있는 주요 성지 가운데 하나라고한다.
보드베 수도원은 알라자니 계곡이 보이는 가파른 산허리의 커다란 편백 나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성녀 니노는 조지아인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는 것을 보고 카케티에 있는 보드베 계곡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죽었는데, 니노
에 의해서 기독교로 개종한 미리안 3세(통치. 284~361)에 의해 니노가 묻힌 곳에 작은 수도원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은 카케티의 왕들이 즉위식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1615년에는 페르시아의 아바스 1세 샤의 군대에게 약탈이 되고 파괴가 되었다
가 카케티의 테이무라즈 1세 왕(통치 1605~1648)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후 수도원으로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에 합병(1801)되고 난 후에 1924년 소비에트(공산당)정부는 수도원
을 폐지하고 이곳을 병원으로 개조시켰으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에 보드베 수도원은 1990~2000년 사이에 수도원
으로 복원을 하여 2003년에 수도원을 재개하였다고 한다.
탑이 보이는 건물은 새로 지어진 보드베 수도원이다....아치를 들어가면 왼쪽에는 니노 성녀의 유골이 있는 교회가 있다.
보드베 수도원에 도착을 하니 네시 반이다.
의지가 있는 곳은 카페이다...사람이 걸어오는 곳에서 들어온다.
300년대부터 이곳에 수도원이 있었으니...관들이 보인다.
새로 지어진 수도원
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성녀 니노의 유골이 들어 있는 관이 있는데 만지면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많
기 때문에 10명 정도 한꺼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 나온다....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종탑은 1885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보드베 수도원....내부는 들어가보지 않고 외부만 구경을 한다.
보드베 수도원에서 보는 알라자니 평원과 대코카서스 산맥
수도원에는 관심들이 없고 경치와 사진찍는데만 관심을 가진다.
정말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산책을 할 수 있게도 해 두었고...산 등성이 넘어가 시그나이이다.
경치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우리 일행 들이
보인다.
성 니노의 유골이 있는 교회
이곳에 오는 누구가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우리 일행...지금부터 찍은 사진은 갤럭시 22로 찍은 사진이다.
이곳에서 석양까지를 보고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헛된 소망이지만
가이드가 빨리 오라는 독촉을 하고...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들도 성 니노의 유골이 있는 성당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햇살은 뜨겁다.
트빌리시로 출발하는 시간이 다섯시로 이곳에 30분만 머물렀다가 간다.
【K】Georgia Travel-Signagi[조지아 여행-시그나기]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St. Nino/Coffin/Cauca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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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니노에 대해서...
성녀 니노(영어 Nino 또는 니나)는 때로는 성녀 누네 또는 성녀 닌니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설교하고 조
지아에 기독교를 전래한 여성이이다.
전승(傳承)에 따르면, 니노(296~338년경 또는 340년경)는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있었고, 일생을 처녀로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베리아(스페인의 이베리아가 아님)에서 인내와 애덕, 그리고 기적을 행함으로 존경을 받았고. 황궁으로
보내진 그녀는 왕과 왕비를 개종시켰다. 왕(미리안 3세)과 왕비(나나)는 후일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
교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니노는 조지아에 교회의 설립을 돕고 난 다음에는 여생을 기도를 하는데 바치기 위하여 은수자(隱修者)가 되었다.
성녀 니노가 병들어 죽자, 마리안 3세는 그를 당시 수도인 므츠헤타(Mtskheta)에 장사 지내려 했으나 관을 실은 수레는 2백 명이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말년에 그가 보낸 이곳에 묻고 작은 예배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현재의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이라고 한다.
성녀 니노
니노의 생애
니노는 카파도키아의 공주로 태어났다. 전쟁으로 인해 나라와 왕실이 황폐화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전쟁의 혼란을 피해 고국을 떠났고 좀 더 평화로운 조지아에 와서는 전쟁 포로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녀는 죽어가는 아이에게 그녀의 두건을 씌워줌으로 소년을 치료했고, 소년을 감싸 안고 기도해줬다.
그러한 기적적인 소식은 조지아의 왕비에게 전해졌다. 왕비 알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있었고, 니노를 불러달라고 애원했지만
니노는 "저는 노예일 뿐입니다.
저의 신분으로는 궁전에 들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비는 니노에게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기도로써 여왕을
치유해 주었다.
왕실 가문은 니노에게 어떤 보상을 바라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개종을 바랐다. 그쯤에 병에서 치유된 왕비는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으나, 미리안 왕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이 사냥을 하던 중에 미리안이 그의 수도 므츠헤타
근처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땅에 어둠이 드리웠고 왕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자신이 짐승들에게 포위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미리안이 니노의 하느님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하자 어둠과 짐승들이 물러갔고,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되었다. 325년에 왕은 조지아 전역에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그 후 조지아는 33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는데 참고로 아르메니아 301년, 에디오피아는 325년, 로마제국은 380년이다.
(위키백과)
우리는 조지아에 있으면서 성녀 니노와 관련된 곳들을 많이 들르게 된다.